강원도 철원군 최전방 농촌마을 ‘대마리’

19일 오전 11시께 총탄을 맞아 폐허로 변한 옛 북한노동당사를 지나 지뢰 표식판이 매달린 철조망 사잇길을 내달리자 농촌마을이 등장했다.
‘향군 재건마을’인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아래에 자리잡은 대마리는 6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숨을 죽인 듯 고즈넉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새벽부터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이북에 있는 철원평야로 농사일을 하러 떠났기 때문이다.209가구 650여 명이 사는 마을은 현대식 주택이 들어서고 제비와 여름철새가 넘나들어 평화롭게 보이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개척과정에서 지뢰 등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대가로 만들어진 보금자리다.
 


■ 지뢰밭에 건설한 보금자리

대마리 재건촌이 탄생한 것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과 관련이 깊다.
6.25전쟁 당시 철원은 철의 삼각전투로 쑥대밭으로 변했고 대마리 뒷편에 있는 백마고지에서는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3년 간의 포성이 멈추자 마을 뒤편으로는 비무장지대(DMZ)가 들어서는 등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선으로 변하면서 민간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방치됐다.

정부는 전쟁 이후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허술한 휴전선 목책 사이로 북한 간첩들이 넘어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6년 국무회의에서 접적지역 개발 방침을 세웠다.

이어 1967년에는 전역한 군인 가운데 반공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대상으로 신원조회 등의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150가구를 입주시키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를 모델로 삼아 식량증산과 대북 심리전 강화, 간첩신고를 통한 국방력 강화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재건사업을 추진했으며 입주민에게 1만9천800㎡씩 땅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스쳐간 ‘킬링 필드’는 불발탄과 지뢰가 도처에 널려 있는데다 길과 수리시설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군부대 천막에서 잠을 자고 물에 불린 국수를 먹어가면서 15개조로 나눠 공동으로 개간을 하며 농사를 지었고 밤에는 보초까지 서는 고단한 생활을 하다 1968년 8월 30일 입주식을 가졌다.

초기 입주민들은 입주식 후에도 3년 동안은 공동으로 영농을 하다 그 뒤부터 개별적으로 농사를 짓게 됐다. 이처럼 맨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폭발사고로 25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오늘도 마을에는 목숨을 걸고 보금자리를 개척한 입주민 150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개척비가 서 있다.



■ 민통선 통해 출입영농, ‘청정 오대미’ 유명세

폭발물이 널려 있던 황무지에서 시작된 대마리는 주민들이 피땀흘려 일한 덕분에 지금은 살기 좋은 농촌으로 변모했다.

농가소득도 높은 편이어서 30~40대 젊은이들도 도시로 떠나지 않고 마을에 남아 불굴의 개척정신을 계승하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해가 뜰 때 마을 인근의 군부대 초소를 통해 철원평야로 들어갔다 해질 무렵 나오는 방식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철원평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이어서 야간에 민간인들이 민통선에 머무를 경우 군 작전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가구당 7만~10만㎡의 농경지를 갖고 있는 주민들은 최근 쌀값이 하락하면서 농업외 소득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모색 중이다. 삶의 터전이 민통선 이북에 있다보니 민통선 초소를 운영하는 군부대와의 유대관계는 떼놓을 수 없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주민들의 군부대로부터 심한 통제를 받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대민지원 등을 통해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박민록(47) 대마2리 이장은 “농가소득이 괜찮은 편이어서 젊은이들이 외지로 나가 일하는 것보다 마을을 지키는데 자부심이 크다.”면서 “과거 군부가 힘이 넘칠 때에는 억압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 소득높은 우수 농촌마을로 변신 중

이처럼 대마리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지만 잘 사는 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민들은 최근 새농촌건설 우수마을로 선정되면서 정부로부터 받은 5억원을 투자해 마을 입구에 지상 3층, 연면적 700㎡ 규모의 농산물판매소를 건립하는 등 농촌관광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이 건물은 인근의 옛 북한노동당 철원당사 건물을 본 떠 설계한 것으로, 층수(3층)나 건물 외관이 비슷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는데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천연기념물인 두루미가 겨울마다 도래하는 청정지역 특성을 널리 알리고 이를 통해 오대미 판매를 늘리기 위해 도시민 모내기 체험행사를 갖는 등 농촌관광을 통해 농산물 판매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은 최근 천안함사태 후 정부가 2004년 중단했던 심리전을 다시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동요없이 새벽 5시가 되면 민통선 안에 있는 농경지로 일을 하러 나갔다 오후 7시께 귀가하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근용(54) 대마1리 이장은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북한이 변해서 서로 교류하고 더 나아가 통일이 되면 바랄 것이 없다.”면서 “그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지역을 아름답고 소득이 높은 우수마을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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