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공장 고용창출ㆍ농산물 산지가격 안정

'강화 순무’는 인천시 강화군을 대표하는 특산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시원하고 달콤한 무 맛이 나면서도 배추 뿌리에서 나는 것 같은 알싸한 향이 있어 강화 순무로 김치를 담그면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감칠맛을 낸다.

인천이 고향인 강화 귀농인 김경호(59)씨는 강화 순무의 이런 독특한 맛과 향을 살린 순무 김치로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다.

김씨는 이곳에서 2003년 ‘강화섬 김치’라는 이름으로 김치공장을 시작했다.

강화 지역에서 생산되는 순무와 배추, 열무 등으로 김치를 만들어 주로 군부대와 식당에 납품한다. 1년 매출이 13억원에 이른다.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13명. 모두 마을 주민들이다. 남자들은 140만~200만원, 여자들은 130만~140만원을 월급으로 받아간다. 농촌 살림을 기준으로 보면 꽤 높은 수입이다. 김씨의 김치공장이 마을 주민들에게도 좋은 부업거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김씨는 지난해 국외로 판로를 넓혀 대만으로 ‘강화 포기 쑥김치’ 수출을 시작했다. 매달 5t씩 대만으로 보내 월 1천만원의 수익을 올린다. 김씨는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다른 김치공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농사짓는 주민들과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 김치도 기업형..계약재배로 농민 시름 덜어

‘강화섬 김치’ 사례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김치공장의 모습이지만, 김씨처럼 소규모로 운영하는 공장은 이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기업형 김치공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2008년 준공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전남 해남의 김치가공 공장은 첨단 김치.절임배추 가공시설을 갖추고 있다.

해남 화원농협이 화원면 영호리 2만1천970㎡의 방대한 터에 설립한 이 김치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이 일대 농산물 유통 흐름을 바꿔놨다.

과거 밭에서 뽑히는 대로 트럭에 실려 농산물공판장으로 직행했던 배추나 무 상당량이 이젠 김치공장으로 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가공식품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이 공장은 자동화 생산라인, 최신식 가공.포장시설, 저온저장시설에 김치체험관광실과 김치홍보관까지 갖추고 있다.
114억원을 투자해 건설한 이 공장은 하루 70t의 김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김치류 가운데 배추김치, 고들빼기 등 4종은 대만, 미국, 일본, 뉴질랜드 등지로 수출된다.

화원농협은 올해 총매출 예상액을 2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어지간한 중견기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규모다.

화원농협 관계자는 “이 공장에서 소화하는 배추는 연간 5만3천여t으로 해남지역 겨울 배추의 40%에 이른다”며 “해마다 급등과 폭락이 되풀이됐던 겨울 배추의 가격 안정에 이바지하게 됐다”고 했다.

역시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농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약 재배를 통해 농가의 판로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전곡농협이 운영하는 청산김치공장은 매년 6월과 10월 연천군에서 계약재배로 생산된 배추 3억원, 고추 1억5천만원 등 김치 생산에 필요한 재료 7억원어치를 사들인다.

배추는 출하 시기가 되면 전국적으로 물량이 쏟아져 가격이 하락하고 농민들은 적절한 판로를 찾지 못해 고민하기 일쑤였다.

전곡농협의 계약재배는 농민들의 이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연간 계약재배 면적이 20여만㎡에 이른다.

청산김치공장은 특히 상시근로자 140명 가운데 90% 이상을 연천지역 주민으로 채용해 이들에게 부수입을 올릴 기회도 주고 있다.

김치공장 서승일 과장은 “배추나 고추 등 김치 생산에 필요한 원료 대부분을 연천에서 공급받는다”며 “농민들은 어디에다 팔아야 할지를 걱정하지 않고 열심히 가꾸기만 된다”고 말했다.


■ 자치단체도 지원 나서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영농조합에 시설비를 지원하거나 해외 판로 개척을 돕는 자치단체들도 있다.
전북도는 수출 판로 개척을 돕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

수시로 바이어를 초청해 김치제조업체와의 상담기회를 주선하고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해외식품박람회나 국제농산물박람회 등에 참가하는 업체에는 판촉과 홍보를 지원하고 수출에 소요되는 물류비의 20~60%를 대준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도내 73개 김치공장의 지난해 총 매출이 1천34억원에 달했다.
전북도내 최대 규모의 김치업체인 ‘전라도 은총 김치맘’은 지난해 매출이 599억원이나 됐다.
강원도는 올해 정선군 백봉령 절임배추영농조합 등 10개 영농조합에 지원할 김치 절임시설비로 10억원을 책정했다.

김치를 절이는 일이 번거롭고 배추 등을 다듬으면서 나오는 쓰레기 처리도 골칫거리여서 절인 김치를 선호하는 주부들이 늘어나는 것에 착안한 지원사업이다.

이와 함께 매년 미국, 일본, 홍콩에서 김치 특판행사를 열면서 참여 업체에는 통관료와 항공료 일부를 지원한다. 김치를 전문적으로 수출하는 업체에는 물류비의 8%를 보태 주고 있다.


■ “김치 맛 표준화, 균질화가 과제”

김치공장이 농민들에게 농사 외 일거리를 제공하고 농산물의 산지 가격을 안정시키는 등 농촌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마냥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식습관이 변하면서 국민 1인당 김치 소비량이 줄어드는데다 일본, 중국 등과의 경쟁 속에 수출시장 확대 노력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산업에 닥친 이런 도전을 이겨내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김치 수요량은 2001년 162만4천t에서 200 7년 141만5천t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민 1인당 김치 소비량도 34.3㎏에서 29. 2㎏으로 줄어들었다.

김치 수출 물량도 2002년 2만9천213t에서 2003년 3만3천64t, 2004년 3만4천827t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다 2005년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지난해 2만8천506t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수출도 일본에 편중돼 있다. 지난해 전체 수출 물량의 89.3%인 2만4천390t이 일본에 수출됐다.

대만(888t), 미국(686t), 홍콩(430t), 뉴질랜드(418t), 호주(300t), 필리핀(203 t)에 수출된 김치를 모두 합쳐도 전체 수출량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산 김치 수입량이 수출 물량의 5배에 이른다는 점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들여온 김치는 14만8천100t에 이른다. 중국산은 국내산 김치의 수출단가의 5분의 1 수준으로 싸다는 점이 김치 종주국인 우리나라로 역수입되는 가장 큰 이유다.

오는 8월 5일부터 김치에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면 국내시장에서 중국산에 밀려나 있던 국내산 김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인 수출 확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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