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FM>은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는 DJ와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은 미치광이 살인마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생방송 라디오를 진행해야하는 2시간 동안 스튜디오를 떠날 수 없다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 한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범인과의 사투, 영상통화와 전국 생방송이라는 장치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며 진행되는 DJ와 살인마의 치열한 싸움은 기존의 스릴러와는 다른 출발점이다.

5년간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영화음악 방송을 진행한 DJ 선영(수애). 완벽주의자적인 성격으로 높은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악화된 딸의 건강 때문에 마이크를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오늘이 마지막 방송이다.

9시 뉴스를 그만두고 심야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던 선영은 담담하게 마지막 방송을 준비하지만 방송은 시작과 함께 꼬이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청취자로부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방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

목소리의 주인공은 연쇄살인마 동수(유지태). 선영이 진행하는 방송의 오랜 팬이었다고 고백한 그는 선영의 딸과 여동생을 인질로 잡고 있다며 자신이 시키는 대로 생방송을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방송을 멈추어도, 누군가에게 알려도, 자기가 원하는 음악이나 멘트가 나오지 않아도 가족을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선영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방송을 멈추지 않으면서 동수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동수는 선영의 아이를 데리고 마지막 장소로 선영을 유인한다. <심야의 FM>은 열혈 라디오 청취자 동수가 방송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인에 빠져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릴러는 스스로 장르의 패착에 함몰되기 쉬운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속도감만 밀어붙이다가 정작 단단해야 할 스토리 얼개가 헐거워지거나, 반전에 대한 지나친 강박으로 설득력 없이 뚝 떨어진 후반부가 멋대로 나뒹굴기 십상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심야의 FM>은 그 어떤 패착에도 빠지지 않은 영리한 스릴러다.

르가 가진 여러 함정을 피해갈 요량으로 선택된 소재는 ‘라디오 생방송’.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지옥 같은 두 시간을 보내는 여자의 이야기다. 방송은 멈출 수 없고, 살인마에게 붙잡혀 있는 가족을 구해야만 하는 숨 가쁜 상황이다. 동수가 설계해 놓은 위험한 덫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는, 후반부 선영의 어떤 ‘선택’이라는 핵심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사실 <심야의 FM>은 핸디캡으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오픈해 두었다. 범인은 이미 드러나 있고, 선영의 딸이 인질로 붙잡혀 있다는 것도 감춰져 있지 않다. 심지어 사건은 ‘가족을 구해야 하는 여자와 연쇄살인마의 사투’로 간단하게 요약되기까지 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무엇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줄까’에 방점을 찍는다.

‘리얼 타임 스릴러’라는 문구가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라디오 생방송은 소재인 동시에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장치가 된다. 범인이 제시하는 게임을 풀어야만 하는 선영의 두 시간은 관객의 러닝타임과 동시에 흐른다. 생방송이라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채 마음껏 스릴을 즐기는 게 가능한 것이다.

동수와 선영의 대결이 더욱 치열할 수 있는 건, 광기와 집착이 부딪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반전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고 출발하는 영화이니만큼, 캐릭터를 얼마나 힘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지 역시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두 주연배우가 보여 줄 놀라운 에너지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

살인마를 연기한 유지태나 DJ를 연기한 수애는 모두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실제 라디오 진행을 해도 어울릴 것 같은 수애의 낮은 목소리는 매력을 더 하고, 감정을 폭발하고 내지르는 수애의 연기 도전은 성공적이다. 또 극중 말 못하는 수애의 딸의 등장은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다소 전형적으로 표현된 유지태의 모습은 매력적인 악역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인상을 남긴다.

유지태는 <올드 보이>(2003)의 우진 캐릭터에서 비롯된 기시감 섞인 우려를 가볍게 불식시킨다. 익숙했지만 동시에 너무도 새로운 두 배우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똑떨어지는 엔딩까지. 아무래도 이 영화, 참 잘빠진 스릴러로 기억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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