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지진아들의 팍팍하고 힘겨운 삶의 행보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40이 가까운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부모 밑에 얹혀서 살고 있는 고학력 백수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님과 지루한 농촌 생활에 불만이 가득하다.
게다가 다른 소보다 엄청나게 먹고 싸는 소, 한수(먹보) 때문에 쇠똥만 치우다 남은 청춘 다 보낼 처지다. 어느 날 선호는 홧김에 한수를 팔기 위해 부모님 몰래 길을 떠나고 만다.
소는 쉽게 팔리지 않고, 도중에 옛 애인(공효진)에게 자기 남편이 사고로 죽었다는 전화까지 받은 선호는, 마음이 어지러워진다(그 옛 애인의 남편은 자신의 친구이기도 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현수는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는 선호와 달리 여전히 담담하고 자유로운 모습. 선호는 아픈 옛 기억과 현수에 대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괴로워하던 선호는 현수를 남겨두고 한수와 길을 떠난다. 선호는 추억의 장소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다시 현수를 만나게 된다.
결국 선호는 가는 곳 마다 나타나는 옛 애인 현수와 자신의 답답한 속사정도 모른 채 되새김질만 하는 한수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의 사연 많은 7박 8일 여행이 시작된다...
‘소’! 소의 숨은 의미들!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소’와 여행을 떠나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영화에서 소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불교에서 소는 수행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인공이 소와 함께 여행을 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찾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수행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소를 팔기 위해 집을 나선 주인공이 소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고 마음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는 불교에서 견성(見性)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심우도’의 구조와 닮아 있다. 심우도는 동자승이 소와 함께 하는 모습을 그린 10장의 그림으로, 수행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소는 불교적인 상징뿐 아니라 선호의 절친한 친구이자 현수의 남편이었던 죽은 친구로 해석될 수도 있다. 7년 전 아픈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호를 위해 죽은 친구가 한수의 모습으로 나타나 함께 여행을 하면서 미움, 원망의 감정을 털어내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소를 팔려고 했던 선호가 점차 한수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함께 길을 가면서 친구와 같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모습에서는 생명 존중에 대한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공효진과 연극배우 김영필의 연기 호흡!
<미쓰 홍당무>, <가족의 탄생>, 드라마 ‘파스타’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공효진. 그런 그녀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통해 1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공효진은 느닷없이 옛 남자를 찾아온 여주인공 ‘현수’ 역을 맡아 특유의 쿨한 매력과 함께 한층 성숙해진 연기를 선보인다. 7년 만에 옛 애인에게 연락해 계속해서 그의 여행길에 나타나는 현수의 독특한 캐릭터가 공감을 얻는 것은 공효진이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효진과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남자주인공 김영필은 연극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배우다. 극단 ‘골목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김영필은 임순례 감독이 선택한 배우인 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김영필은 섬세한 눈빛과 부드러운 중저음 목소리로 옛 상처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를 대변하고, 공효진은 남자와 달리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쿨한 여성의 심리를 절제된 연기로 풀어냈다. 연기 색깔도 매력도 전혀 다른 두 배우 공효진, 김영필의 신선한 조합과 독특한 연기 호흡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소가 나타났다!
먹보를 이끌고 전국을 돌았지만 가장 어려운 촬영은 복잡한 서울에서의 촬영이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조계사와 종로 길거리 장면은 먹보에게도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촬영현장에 익숙한 베테랑 배우 먹보에게 조차 수많은 자동차와 인파는 큰 부담이 되었던 것. 한번도 운 적이 없는 먹보는 서울 촬영에서는 울면서 힘들어해서 제작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한다. 게다가 긴장한 탓인지 먹보의 배변 활동은 더욱 활발해 졌고 연출부는 아스팔트 위에 싼 먹보의 똥을 치우느라 진땀을 뺐다.
시골에서 먹보가 똥을 싸면 흙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모두 손으로 닦아 내야 하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고생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한수를 보고 놀라는 시민들의 반응은 실제 촬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이서 소를 본 시민들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카메라에 먹보의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고, 외국인들도 도심 속 소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한 듯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서울 한복판의 소, 그리고 그의 흔적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스태프들의 모습은 매우 진귀한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노영심 음악감독이 전하는 감성적인 음악!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푸근한 시골, 시원한 바다, 한적한 절, 소박한 국도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잔잔한 풍경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상미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노영심 음악 감독이 참여한 영화 음악이다. 영화 속 배경음악들의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멜로디는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소박한 영상미와 잘 어울린다. 노영심 음악 감독은 본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멜로디에 어쿠스틱 기타와 다양한 타악기를 이용해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특히 영화에서 내포하고 있는 불교적인 색채를 잘 표현하는 동양적인 멜로디는 노영심 음악 감독의 감성이 묻어나 더욱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됐다.
노영심 음악 감독이 전하는 감미로운 음악과 전국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득한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이 가을, 관객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채워줄 예정이다.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이미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이 가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오래된 사랑의 고통을 치유하고, 바쁘게만 몰아치는 인생 여정을 한번쯤 여유 있게 돌아보는 그런 여행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