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본격적 개방에 대비한 농업 부문 보완대책의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는 고령농에게 은퇴 유도 차원에서 농사일을 그만 둘 경우 매월 일정액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전업농의 경우 안정적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까지 소득을 메워줄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 ‘퍼주기’ 논란이 예상된다. 관계 부처들간 의견 조율과 도시민 및 다른 분야 종사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은퇴고령농 매달 생활비 지원
농림부가 29일 농촌경제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소개한 ‘한미 FTA 농업부문 보완대책안’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의 경영이양직불제를 확대, 개편해 일정 기간 이상 농업에 종사하다 은퇴하는 고령농에게 달마다 일정액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이번 대책에서는 은퇴 후 75~78세까지 최장 10년동안 지원하고, 대상 농지도 현행 ‘농업진흥지역내’에서 전체 농지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은퇴 가능 시점은 65~70세 사이에서 결정되고, 0.3ha 이하 면적의 텃밭가꾸기 수준 영농도 인정될 전망이다.

또 정부는 실효성 차원에서 이번 고령농 생활안정자금 지원 수준을 경영이양직불제보다 높일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시행 초기에는 고령농에게 생활안정자금 지원과 쌀소득보전 등의 직불제 지원 가운데 선택권을 주겠지만, 제도의 근본 목표 달성을 위해 점차 고령농에 대한 다른 직불금 지원은 중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업농 일정 수준 소득 보전
반면 하나의 산업으로서 농업을 지탱할 70세 미만 준·전업농, 후계농, 창업농 가운데 희망자에게는 농가 단위의 소득안정직불제가 적용된다.

농가 주요품목의 소득(조수입)의 합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 경우, 감소한 소득의 80% 정도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것으로, 기준 조수입은 농가에서 생산하는 주요 품목의 직전 5개년 단위면적당 평균조수입을 품목별 재배면적을 곱해 산출된다.

다만 이 제도에 참여하는 농가도 기준 조수입을 기준으로 일정액을 납입토록함으로써 책임있는 경영을 유도한다. 또 영농 규모에 따른 소득불균형과 저소득 도시근로자 가구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농가당 지급 상한선 설정이 검토되고 있다.

또 정부는 전업농의 영농 규모 확대를 돕기위해 농지은행을 통한 농지 임대차를 적극 알선하고 채소나 화훼, 축산 등 시설형 농업의 경우 시설 및 장비구입 자금과 컨설팅 등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같은 ‘맞춤형’ 농정은 개별 농가의 경영주체나 소득 규모, 주소득원 등이 정확히 파악돼야 가능하다. 따라서 농림부는 올 하반기부터 ‘농가 등록제’를 시범 실시하고 2009년 전체 농가로 대상을 확대해 필요한 데이터를 구축한다.

한미FTA로 농가 ‘생산액’ 줄어야 소득보전
중장기적 대책들과는 별도로 직접적, 단기적 대책으로 ‘피해 보전 직접지불제’도 마련된다. 한미FTA로 수입이 크게 늘고 가격이 떨어져 국내 관련 농가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직접 정부가 현금으로 소득 감소분의 일부분을 메워주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번 한미FTA 피해 보전 직불제의 경우 단순 가격이 아닌 조수입(생산액)을 기준으로 직불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수입량이 일정비율 이상 늘면 직불제를 발동하되, 단순히 예전처럼 쇠고기, 돼지고기, 감귤 등의 가격 하락 폭만 따져 차이를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생산액 기준으로 가격 하락은 없더라도 생산량이 줄면 소득보전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져도 생산량이 늘면 해당 농가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기준가격을 ‘과거 5개년 평균의 80%’로 유지하는 반면, 피해 보전 비율은 현행 80%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할 방침이다. 피해 보전 직불제 대상 품목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한미FTA 수입 증가로 피해를 입는 품목에 적용한다는 기본 방향만 있을 뿐, 피해 여부 판정의 근거가 될 구체적 조건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한미FTA로 피해 농가가 완전한 폐업을 원하면 한·칠레
FTA 때와 마찬가지로 5년동안 폐업지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보상 수준과 조건 등은 지금보다 까다로워진다.

재원 마련이 최대a 난제
전문가들은 일단 ‘전업농 중심의 농업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안의 뼈대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현재 우리 농업 종사자가 가치 창출 능력에 비해 너무 많다는데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우리나라 농업 총 생산액은 수년째 31조원대에 갇혀있다. 더구나 2015년 농업 총 소득 추정치는 대략 13조원 정도에 불과해 가구당 농업 소득을 4천만원으로 가정하면 약 30만가구에 돌아갈 수준이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우리나라 농가 수는 120만호가 넘는 실정이다.

그러나 실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데는 여러가지 갈등과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책안의 큰 축 가운데 하나인 고령농 생활안정자금 지원책과 관련, 농촌경제연구원 김정호 박사는 “소요 재정 규모가 커 농림부가 예산을 배정받는 과정에서 재경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규 농림부 구조정책과장은 “생활안정자금 지급 수준 등에 따라 필요 재원 규모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현재까지의 분석 결과로는 지급 수준을 최대한 높게 잡아도 한해 몇 천억원 수준을 넘지 않을 것이나, 재원 마련을 위해 관련 부처와 향후 긴밀히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물붓기’ 비난 없도록 설득해야
임정빈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비농업인 가운데는 그동안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 각각 40조가 넘는 농업 투융자를 했지만, 나아진게 뭐가 있느냐,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러나 분명히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던만큼, 정부는 정확한 사실 홍보를 통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농업 개방 대책 관련 비용 집행의 당위성을 설득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임 교수는 우리나라 농가 수가 너무 많아 농가등록제 시행에 막대한 행정비용이 필요하다는 점, 정책 집행의 최전선 창구인 지방자치단체의 농정 기획 능력이 미흡하다는 점 등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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