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대변 ‘세 박자’ 조직, 농협ㆍ농업회의소ㆍ농민은행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업국가, 30%에 이르는 국토 대비 농지비율, 유럽 최대의 밀 생산지이자 와인과 샴페인 수출국.유럽의 농업대국 프랑스를 설명해주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랑스 농업이 있기까지는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지대한 역할을 해온 3개의 농민단체가 있다.
프랑스 농업회의소와 농업협동조합, 농민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creditagricole) 등 3대 조직이 농민들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 농업의 활로를 찾아본다.


■ ‘요플레’ 프랑스 농협의 히트작

전세계 50여개국에 프랜차이즈 형태로 진출한 요플레(Yoplait)사는 프랑스의 지역농협들이 공동으로 자본을 출자해 만든 연합사업체인 소디알(Sodiaal)의 자회사다. 소디알은 우리나라에서 ‘떠먹는 요구르트’의 대명사로 알려진 요플레와 치즈 등 유제품을 팔아 2005년 기준 20억 유로(3조1천39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프랑스 농협 ‘빅 7’ 가운데 3번째로 높은 것이다.
1천500개 자회사를 포함한 프랑스 전체 농협의 매출은 무려 770억 유로(120조8천630억원). 전국 3천100여개에 이르는 프랑스 농협이 한국 농협과는 달리 신용사업은 전혀 하지 않고 100% 경제사업만을 수행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더 정확하게는 지역 농협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수집과 기초적인 판매활동에 역량을 집중하고 연합사업체는 농산물을 가공하고 유통, 연구개발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비즈니스 조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1964년 지역단위의 6개 낙농조합이 공동 출자, 공동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설립한 연합사업체인 소디알은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기보다는 지역 농협을 통합함으로써 외형성장을 이뤄나갔다.
소디알은 또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민간기업 인수나 자본 참여를 통해 사기업의 효율성을 결합, 민간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당당히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사업과 경영 측면에서 효율성 확보가 어려운 협동조합의 문제를 자회사를 통해 보완하고 수익을 얻고 있는 점은 한국농협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합원에 대한 배당금 역시 공동자산 적립 원칙을 기준으로 했으나 조합원 배분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한 것도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 프랑스 농민의 ‘언덕’, 농업회의소

정부가 인정하고 법률로 설립이 보장된 프랑스의 공식 농민대표기구인 농업회의소는 프랑스에서 농업 혹은 농민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구다.

농업회의소는 농업정책이 농업 및 농촌 현실과 어긋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농민들의 지속적인 농정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기구이자 공식화된 농정자문기구다. 실제 농업회의소는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 농업회의소는 전국 94개 도 농업회의소를 기초조직으로, 연합체 성격의 21개 지역 농업회의소, 도 농업회의소 의장으로 구성된 상설의회(APCA)로 구분된다. 지방조직인 도 농업회의소는 각종 농정자문활동을 비롯해 농업 전문인력 교육훈련, 농촌관광사업의 개발과 홍보, 농민 단체교섭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토목건설공사나 농업재해시 보상문제 등 농민들의 단체교섭력이 필요할 경우 농업회의소가 전면에서 분쟁 소지를 사전 점검, 예방하고 있다.

주요 현안이 발생될 경우 농민과 정부가 완충장치 없이 바로 정면충돌하는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업회의소 상설의회의 경우 농업 관련 기관과 농업재해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대한 공식참여가 보장돼 농민들의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다만 도-지역-중앙 3단계 조직인 농업회의소는 모호한 역할분담과 비대한 조직으로 인한 인건비 과중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농업회의소는 농민단체를 포함한 농업관련 NGO의 실질적 대표 자격으로 농정참여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정책결정과정이나 집행과정에서 농민의 참여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도 프랑스식 농업회의소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농민을 위한 은행’ 크레디아그리콜

정부의 농업정책자금이 농협 등으로 내려가 집행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별다른 정부 지원없이 농민이 예금한 자금 등으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농민은행이 바로 ‘크레디아그리콜(creditagricole)’이다.

프랑스 제1의 은행이며 세계 5위권의 거대금융그룹인 크레디아그리콜이 농민을 지원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19세기 후반에 설립된 크레디아그리콜은 1980년대까지 정부의 농업정책자금을 독점해 왔지만 이후 농업정책자금 비율이 줄어들면서 지난해엔 전체 농민 대출금 64억 유로(9조5천여억원) 가운데 정부지원금은 5억 유로로 10%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디아그리콜은 오랫동안 농업자금을 취급해왔고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에 농민들은 대출은행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농민들로부터 이 은행이 계속 신뢰를 받고 있는 요인은 대출제도에 있다. 기존 대출금이 적고 신용도가 높을 수록 대출심사가 간단하게 이뤄진다는 점은 다른 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대출 심사과정에서 객관적인 지표보다는 인간관계와 평판을 더 중요하게 반영한다는 점은 이 은행만의 큰 차이점이다.

대부분 농민들로 구성돼 있는 크레디아그리콜의 이사회는 대출자의 사람 됨됨이를 더 중요하게 여겨 대출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고 평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류를 갖춰도 거절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디아그리콜 농민대출의 연체율은 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적인’ 대출심사 관행을 통해 농민들 스스로가 크레디아그리콜을 농민이 만든 은행이라고 애정을 갖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또 이자율 조정시에도 대출신청자와 이사회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있으며 대출금을 갚지 못한다고 해서 성급하게 담보를 처분해버리지 않는 것도 농민과의 신뢰를 쌓은 중요한 노하우다.
크레디아그리콜은 이렇게 농민들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보험 등 다른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게 해 농민 대출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는 부분을 뛰어넘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 프랑스 농업의 시사점은?

현재 우리나라의 농민단체도 농민들의 이해관계를 직접 대변하는 압력단체 수준을 벗어나 점차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여론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농민단체의 농정참여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지만 아직 형식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먼저 프랑스의 농업회의소 같은 다양한 농민단체들과 농업관련 조직들을 대표, 대변할 수 있는 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농업경제연구원 김수석 연구원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 농업회의소와 같은 법적기구를 만들어달라고 주장하고 있고 현 정부도 도입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농업회의소가 구성돼 농민들의 대의단체로서 농정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서 농협에 과도한 역할이 부여돼 있어 적절하게 분리하자는 주장도 있다.
농협경제연구소 최재학 수석연구원은 “일단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서 농민의 경영규모에 맞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며 “프랑스 농협의 연합사업체에서 보듯 가격변동성이 큰 원료농산물의 판로개척과 소비 뿐만아니라 농산물 가공산업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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