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눈꽃길…걸음 걸음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한 해의 끝에 서 있는 요즘 유난히 눈 소식이 자주 전해온다. 마치 지난 1년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들일랑 정리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하라는 듯….
펑펑 쏟아져 소복이 쌓이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아닌 게 아니라 마음마저 맑고 투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는 않지만 집안에 웅크려 있지만 말고 눈꽃과 설원의 풍경을 온몸으로 누릴 수 있는 겨울 나들이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오랜만에 쌓인 눈을 ‘뽀드득 뽀드득’ 소리내 밟으면서 신묘년 새해의 설렘과 희망을 설계해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관광공사는 1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강원도 평창의 선자령, 광주 무등산 눈꽃 길, 경북 봉화의 승부역, 제주의 선작지왓 설원 등 4곳의 ‘낭만적인 눈꽃길’을 추천했다.



■ 동해를 굽어보는 백두대간 눈꽃길 선자령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대관령과 선자령 사이의 백두대간 능선길은 국내 최고의 눈꽃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해발 1,157m의 선자령은 대관령에서 직선 거리로는 4.2㎞, 능선으로는 5㎞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고도 차이는 325m에 불과하다.

루뭉실한 산봉우리 몇 개와 평평한 들길 같은 백두대간 능선길이 두 고갯마루를 이어준다. 고갯마루를 잇는 길은 두 개가 있는데 능선길은 상쾌하고 계곡길은 아늑하다.
바람 부는 능선길은 조망이 탁월하고 나직한 계곡길은 물소리 벗삼아 자분자분 걷는 재미가 그만이다.
능선길의 풍경은 웅장한 반면 계곡길은 잣나무·낙엽송·참나무·전나무·속새·조릿대 등이 군락을 이뤄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뚜렷이 대비되는 두 개의 코스를 가진 선자령 눈꽃길의 이상적인 조합은 오가는 길을 다르게 해서 두 코스를 모두 섭렵하는 것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이 순환 코스의 총 길이는 10.8㎞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대략 4~5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종종 대관령과 선자령 사이의 백두대간 능선에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드리우곤 한다.

선자령이 가까워질수록 눈보라와 바람은 한층 더 거세진다. 선자령 정상은 ‘백두대간 전망대’라는 별명답게 동쪽으로는 검푸른 동해바다, 서쪽으로는 대관령 목장의 광활한 설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선자령 순환 코스를 찾은 김에 대관령 양떼목장도 들러볼 만하다. 눈에 뒤덮여 온통 은세계를 이룬 목장의 이국적인 설경을 감상할 수 있고 양들에게 직접 건초를 먹여주는 체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문의전화 : 동부지방산림청 평창국유림관리소 033)333-2182)


■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을 이어주는 승부역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낙동강 자락이 굽이치는 경북 봉화군 승부마을 강가에는 고즈넉한 역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영동선(영주-강릉)에 속하는 승부역이 그것으로 오지에 자리한 승부 마을도 승부역 덕택에 유명해졌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조금씩 잊혀져가던 승부역은 지난 1999년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문구가 가슴을 설레게 하고 승부역 승강장에 서 있는 자연석에 새겨진 글귀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문구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승부역을 세상에 알린 눈꽃열차 상품을 이용하면 승부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머물 수 있다. 승부 먹을거리 장터에서 국밥, 빈대떡, 숯불 돼지고기구이 등 별미를 맛보고 승부마을 특산품을 구경하면 짧지만 즐거운 여행이 완성된다.

승부역에는 전국에서 가장 작은 대합실이 있다. 눈꽃열차가 설 때마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에 젖는 대합실 안에는 승부역 방문을 기념하는 스탬프가 있다.
특히 ‘승부역에서 띄우는 편지’ 코너에는 기념 엽서를 마련해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아날로그식으로 이어준다.
(문의전화 : 봉화군청 문화체육관광과 관광진흥 054-679-6341, 승부역 054-673-0468)


■ 옛길 따라 무등산 수정병풍 만나다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동장군이 오면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는 눈과 얼음으로 한껏 치장하고 수정처럼 반짝인다. 겨울 무등산 트레킹은 광주 시내 산수오거리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소 걸음처럼 우직하게 숲길에 접어들면 속세에서 벗어난 듯 세상과의 단절을 맛보게 된다. 약속의 다리인 청암교를 건너면 연인들의 전유물인 자물통이 철조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뒤로 김삿갓이 화순 적벽강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는 청풍쉼터가 나온다. 김삿갓은 ‘무등산이 높다 하되 소나무 아래 있고 적벽강이 깊다 하되 모래 위에 흐른다’는 명시를 남겨 무등산의 절경을 칭송했다.

무등산 겨울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서석대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수직 기둥은 수정 병풍을 하고 있어 햇빛이 반사되면 보석처럼 빛난다. 서석대는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로 용암이 지표 부근에서 냉각되면서 물리적 풍화에 의해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활동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장불재 방향으로 내려가면 기묘한 바위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입석대를 마주하게 된다. 오각·육각·팔각형의 돌기둥이 줄줄이 서 있는 모습은 그리스 신전 같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문의전화 : 무등산도립공원 062-365-1187, 광주광역시 관광진흥과 062-613-3642)


■ 한라산 ‘선작지왓' 설원 속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

(제주특별자치도 애월읍 광령리)

사시사철 다른 맛을 자랑하는 제주 한라산은 이맘때 찾으면 ‘설국’으로 변신해 있다.
특히 1,700m 고지에 자리잡은 선작지왓 평원에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면 말 그대로 눈 천지다. 제주 말로 ‘선’은 서있다, ‘작지’는 돌, ‘왓’은 밭을 의미하니 선작지왓 평원은 ‘작은 돌들이 서 있는 밭, 들판’인 셈이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돌은 온데간데 없고 새하얀 눈과 세찬 바람뿐이다. 바람도 명품이다. 살을 에는 모진 삭풍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맑은 바람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산 평원인 선작지왓은 눈 없는 계절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철따라 피어난다. 평원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코스인 영실 코스는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발길 닿는 곳곳마다 ‘하로산또(한라산 신)’가 머무는 듯한 신비감이 휘돈다. 영실 코스가 끝나는 곳에는 윗세오름 대피소가 있다.

대피소 매점에는 매년 겨울 설원 트레킹을 온 사람만큼이나 컵라면이 수북하다. 가족의 손을 잡고 혹은 연인과 어깨를 의지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모습이 정답고 따스하다. 어리목 탐방로로 내려오는 길에 마주하는 만세동산과 사제비동산 역시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겨울 풍광을 자랑한다.
(문의전화 : 한라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064)713-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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