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의 구제역 사태가 40여일 가까이 축산농업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10일 현재 구제역 감염 지역은 152건의 의심신고가 접수된 가운데 인천·경기·강원·충북·충남·경북 등 6개 시·도, 52개 시·군, 115곳으로 급속히 늘었다.

방역당국의 늑장 대처와 강추위는 전례가 없는 한겨울 구제역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심신고만 무려 113건이 접수됐고 82건이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았다.

매물처분 대상 가축도 급증해 지금까지 134만두가 살처분됐다. 소 2천632농가 10만7천487마리, 돼지 554농가 122만8천147마리, 염소 116농가 2천820마리, 사슴 56농가 933마리가 땅속에 묻혔다. 정부는 가축전염병으로는 처음으로 구제역이 국가적 재난으로 선포됐다.

정부가 뒤늦게 백신 접종 지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구제역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구제역 백신 예방접종 대상이 10만392농가의 215만1천998마리로 증가했고, 예방접종 대상지역도 8개 시도, 103개 시군으로 크게 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2곳, 인천 5곳, 경기 31곳, 강원 18곳, 충북 12곳, 충남 16곳, 전북 6곳, 경북 13곳이다.

그러는 와중에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슬픈 소식도 들려왔다. 구제역 방역을 담당하던 여성 공무원이 제대로 쉬지 못해 유산을 하고, 방역차를 운행하다가 사고로 숨지는 등 방역 현장마다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도 안동에서 방역에 나선 금찬수씨(53·안동시 행정7급)가 과로로 순직하기도 했다.

축산 농업인의 충격과 공포는 더 크다. 하루아침에 자식같이 키우던 소, 돼지를 묻는 심정은 눈물 이상이다.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농업인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이번 구제역 사태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바로 ‘구제역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는 충격적 경험을 한 후 찾아오는 정신적 후유증으로 텅 빈 외양간을 겨우내 바라봐야 하는 농업인, 참혹한 매몰 현장을 경험한 공무원과 봉사자들 모두 피로와 식욕 부진, 구토, 불면에 시달린다.
경험 없이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일선 공무원들이나 애지중지 키우던 소, 돼지를 파묻어야 하는 농업인들의 정신적 충격은 생각보다 클 수 있어 자칫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농업인들에 대한 보상은 단순한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닌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까지 도울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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