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일반 가정에서 파자마가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였다. 하기야 내복 한 벌을 형제·자매간에 물려 입던 시절이었으니, 잠자리에 들기 위해 파자마를 입는다고 하면 와~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도 했었다. 지금이야 파자마 따위야 거추장스러워 벗고 자는 사람이 많지만 그 시절에 동네부자들이 어떻게 하면 파자마를 자랑할까 몸 달아 파자마 위에 양복입고 양복바지 밑으로 파자마가 나오게 해서 일부러 거리를 활보했다면 믿기는 믿을까?

오죽하면 시골면장 파자마 자랑하듯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니, 그저 보통사람보다는 관직도 있고 동네유지 급이 되니 뭔가 자랑거리를 만들 궁리 끝에 이런 말이 나왔으리라 짐작한다. 면장이라는 직책이 갖는 의미는 때론 행정단위 상 끝단에 있는 우두머리란 개념을 넘는 상징성이 있다. 그래서 면장은 언제나 뒷짐 지고 헛기침이나 하는 면의 어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오늘날 면장은 지역민을 위한 경영자로서의 역할이 보다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었고, 그만큼 할 일도 많아졌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경우를 보면 면장실을 ‘화악산 잡동사니의 집’으로 바꿔 면민들을 위한 벼룩시장으로 내놓았다고 하는데, 이는 오늘날 면장의 역할이 어떤 식으로 진화되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행정이 절차를 위한 요식행위가 아님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준 사내면의 경우에 면장의 파자마는 주민을 위한 기부품목으로 올라가고, 그래서 주민들은 행정과 실생활이 혼연일체가 되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좋은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난관을 극복할 힘을 갖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레 되새겨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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