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생산 지역소비’ 운동 큰 성과, 정부 적극적

일본은 대외적으로 외국의 농산물 수입 압력에 시달리고 내부적으로 농촌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등 한국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사료용 곡물을 제외한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1960년 79%에서 1993년 37%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기준으로 40%까지 회복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농정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겨우 버티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체적으로 한국보다는 다양한 방법으로 농업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최근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하는 등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자 2015년까지 식량자급률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있다. 아직 식량자급률에 관한 큰 틀의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해 국가 차원의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 일본판 신토불이 ‘지산지소’, 정부가 적극 나서

일본 농업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나마 생명력을 얻는 이유는 농민과 농협,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농업기반이 흔들리자 정부 차원에서 농민과 농업을 살리려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2003년 식품안전기본법에 이어 2005년 식육(食育)기본법을 제정해 지산지소(地産地消)와 식생활교육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다.

세계화, 개방화에 대항할 방법은 지역화란 점에 착안한 것이다.
지산지소운동은 말 그대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활동으로, 로컬푸드운동 또는 신토불이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지산지소운동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1981년 식생활 개선운동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 지산지소란 말을 처음 사용해 정착시킨 인물은 시노하라 다카시 농림수산성 산하 농림수산정책연구소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역생산ㆍ지역소비란 말이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 사이에 널리 사용된다는 점에 착안해 1987년 지산지소란 말을 탄생시켰다.

이 운동은 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니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신뢰도가 높아진다.

여기다 중간 유통과정을 줄이다 보니 농민과 소비자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지산지소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는 농민들이 산지직판장을 만들어 직접 판매하거나 소비자가 운영하는 산지직송센터로 농산물을 보내 학교 급식 등에 사용하는 경우다.
일본은 지역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만 최근에는 채소나 과일상점에서도 지산지소 농산물 코너를 따로 마련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일본은 식생활교육에도 초점을 둬 학교에서도 정규수업 과정에 식육수업시간을 둬 농민 초청 강의나 농산물 교육 등을 진행하면서 지산지소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전국 초.중.고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먹을거리 교육과 쌀농사 체험학습을 하고, 전국 농협에서도 학교 체험학습과 연계해 식생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효고현 산다(三田)시에 있는 JA(일본 농협) 효고롯코 산다1번관 네기시 노리오(根岸則男.34) 부점장은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학교 등이 지산지소운동을 홍보하다 보니 많은 소비자가 직판소를 찾고 있다”며 “운동도 중요하지만 직판소의 물건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라고 강조했다.

■ 생산+가공+관광ㆍ판매  농업은 ‘6차산업’

일본 농업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문은 농업을 1차 산업에 묶어두지 않고 2차 가공업과 3차 서비스업까지 조합한 ‘6차산업’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6차산업은 1차산업과 2차산업, 3차산업을 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6차 산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농업법인도 더러 있지만 일본은 상당 수준에 이르고 있다.
1차 산업으로만 인식돼온 농업을 6차 산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1차 산업과 2차 산업이 발달하더라도 농민에게 직접적인 수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최근 배추 값 폭등 상황에서도 상인에게 밭떼기로 배추를 넘겼던 농민은 아무런 추가 이득을 못 본 채 중간상인만 이득을 독점했다는 사실이 이를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한국의 식품산업의 경우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고, 대기업은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산물을 가공ㆍ유통하는 식품산업이 발달하더라도 국내 농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에 따라 농업과 농촌 활성화를 위해 부가가치가 농업.농촌에 직결될 수 있도록 생산과 가공, 유통을 통합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약 20년 전부터 이런 6차산업 활성화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히로시마현에 있는 히라타(平田) 관광농원은 10㏊의 밭에서 과일을 주로 재배해 연간 20만명이 찾는 6차 산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봄에는 딸기와 버찌, 여름엔 복숭아와 포도, 가을엔 사과와 밤, 고구마를 재배해 수확하고 이를 가공해 판매한다.
농사짓기 어려운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수확하고 저장한 사과를 판매한다.
물론 관광객이 찾아와 직접 수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에게 잼이나 과자 등 가공품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얻고 있다.

한국에도 이 같은 관광농원이 도입됐지만 대부분 잠시 눈길을 끌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한 번 가보면 다음엔 가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히라타 관광농원은 이런 문제점을 없애고자 재배한 농작물과 바꿀 수 있는 티켓을 발행하거나 계절별로 와서 즐길 수 있는 티켓을 판매,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오게 만들었다.

히라타관광농원의 히라타 가츠아키(平田 克明.70) 대표는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먹는 것보다는 즐거움을 찾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벚나무를 심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소비자의 발길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 고령화…후계자 양성 “어렵네”

일본 농업이 다양한 방법으로 살 길을 찾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이 줄어드는 문제만큼은 쉽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농촌의 소득이 도시에 비해 적다 보니 이농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농촌 고령화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 역시 농업후계자를 찾는 일에 고심하고 있다.
효고현만 해도 취농지원센터를 통해 도시 회사원을 대상으로 농업강좌를 열고 농협도 퇴직한 사람을 중심으로 1년간 농업교육을 진행해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농촌정착 프로그램이 은퇴자 중심이다 보니 젊은이가 농촌에 정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효고현 종합농정과 히가시우라 마코토(東浦實.48) 과장보좌는 “농사를 지어야 농토를 취득할 수 있어 젊은 사람이 농촌에 정착하고 싶어도 농가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쉽지 않다”며 “농민 절반 이상이 노인인데, 그들이 죽거나 농사를 그만두면 농업을 이을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연합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