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보호’ 대가 지불후 고통감내…개혁 성공

세계 3위 부국(富國)에 안주, 과도한 국내 산업 보호 정책과 이에 따른 재정부담으로 국가 부도 위기 상황으로 추락했던 나라.
다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며 구조조정을 단행, 결국 수출 주도형 농업 선진국으로 부활한 나라.

1950년대까지 농축산물 수출국으로의 위상을 떨쳤던 뉴질랜드가 과도한 농업 보호정책을 펼치면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후 겪은 고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펼친 농정개혁 추진과정을 보면 한국 농업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보조금 지급과 같은 보호정책은 과연 농업 자생력 키우기엔 독(毒)이 될 뿐인지, 우리 농업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농산물을 보호장치 없이 국제시장에 노출시키고 가격과 품질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좋은 사례 연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병률 미래정책연구실장은 “농업 보호정책에 따른 재정부담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국가 부도위기 상황까지 몰렸던 뉴질랜드가 농정개혁을 통해 오늘과 같은 농업 선진국 대열에 다시 오른 것은 개혁의 방점을 국제 경쟁력 향상에 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 농업의 추락원인은 과잉보호?

뉴질랜드는 1950년대까지 1인당 GDP가 미국의 88% 수준에 이르는 세계 3위의 부국이라는 위상을 누렸다.
하지만 이 시기 뉴질랜드가 경제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높은 농업기술력 등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너온 영국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경제와 농ㆍ축산업을 주도했고 양모와 육류, 낙농제품을 비롯한 농축산물을 높은 가격에 매입해 준 영국이라는 안정적 수출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뉴질랜드는 농업인을 보호하고 농가 수취가격을 높이기 위해 유통과 가공, 수출에 독과점력을 발휘할 수 있는 품목별 마케팅보드(일종의 위원회)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농민들에게 이런저런 혜택을 줬다.
이런 정책 덕분에 농민들은 국제 시장 가격이나 경쟁에 맞닥뜨리지 않고도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뉴질랜드 정부는 농자재를 비롯해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해 비료, 농약 등 수입 농자재에 대한 쿼터를 설정하고 높은 관세를 매기기도 했다.
결국 뉴질랜드 제조업은 국제 경쟁력을 높일 만한 유인이 거의 없는 비효율적인 산업구조를, 농업생산 부문도 농가가 고가(高價)에 생산 투입재를 구입하는 고비용 구조를 각각 갖게 됐다.

이런 와중에 거대 농축산물 수출시장이던 영국이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 뉴질랜드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영국과 EEC 가입 국가간 역내 교역이 증가한 반면, 뉴질랜드산 농ㆍ축산물에 대한 영국의 수입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가격도 급락해 당시 뉴질랜드의 주 수출품이던 양모 가격은 40%나 떨어졌다.

이전까지 세계시장 경쟁에 노출되지 않았던 농민들이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고 영국 이외의 수출시장을 찾아 나섰지만 수출 수익성 저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급해진 뉴질랜드 정부는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농산물을 증산하고 수출량을 늘리려는 정책으로 수출감소에 대응했다.

비료 등 농업 투입재와 금융, 운송 부문의 보조를 늘리고 1978년부터 농산물 가격지지제도인 추가최저가격보전정책(SMP : Supplementary Minimum Price Scheme.정부에서 가격지지를 위해 저비용기금을 생산자보드에 지원해 생산자의 수출차액이나 국내가격을 보조해 주는 것)을 펼친 것이다.
심지어 외채 차입금으로 수익성이 낮은 대규모 에너지, 철강 프로젝트에 과다 투자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한 가격ㆍ자재ㆍ이자보조와 조세감면 등은 국제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수출부진과 과잉생산, 가격하락, 소득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덩달아 물가도 치솟았고 정부의 재정 부담은 더욱 가중돼 1980년대 들어 국가 부도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1938년 미국의 92% 수준이던 1인당 GNP가 1980년대 50%로 떨어진 반면 실업률은 1974년 0.2%에서 1984년 4.9%로 높아지고 1976〜1984년 실질소득 증가율이 연평균 1.1%에 그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 고통스런 구조조정으로 소득ㆍ땅값 반토막…

1984년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은 이전 정부와 달리 시장 지향적 경쟁이 경제성장을 이끌수 있는 최선책으로 판단하고 강력한 농정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따라 시장 자유화 정책과 반 인플레이션 프로그램을 도입해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규제와 통제를 해제하고 정부와 민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비료와 제초제 보조 예산 폐지(1984년), 추가최저가격보전정책 및 수출 인센티브제 폐지(1984년),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던 농산물 마케팅보드 폐지(1984-1988년), 변동환율제 실시(1985년), 관세감축 4개년 계획 발표(1987년)가 이어졌다.

여기다 국영 농촌은행 매각(1989년), 철도 등 일부 부처 공기업화, 은행, 석유, 해운, 보험 전신 등 민영화(1980년대 후반), 중앙은행 독립(1989년) 등 농업은 물론 금융, 통화, 재정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개혁을 단행했다. 중앙정부 인원을 8만5천명에서 4만명으로, 지방정부 인원을 18만명에서 3만8천명으로 줄이는 등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뉴질랜드 농민들은 이후 3년여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농업 보조금 철폐로 농지와 가축의 가치 급락과 함께 농가소득이 감소했고 땅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을 상환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1976년을 100으로 볼때 양과 육우 농가의 실질 순 농가소득은 1985년 83.2, 1986년 32.9로 떨어졌고 실질 농지가격은 1982년을 100으로 봤을 때 1985년 70.2, 1987년 46.2로 급락했다.
구조조정에 불만을 가졌던 농민들은 1986년 대규모 대정부 시위까지 벌였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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