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 년에 걸친 ‘안주인’과 ‘몸종’의 혈투 스토리

  
 
  
 
종족의 모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인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여인은 누구일까? 즉, 어떤 여인이 가장 많은 후손을 남긴 ‘만인의 할머니’일까…하는 말이다.

인류에게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의 어머니로 치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나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 무함마드(마호메트)의 아내 카디자 등이 되겠지만 유전자 전파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여인이 바로 칭기스칸의 어머니 후엘룬 일 것이다

- 현존 인류 중 1/5 이상이 칭기스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
그러나 그에 절대로 뒤지지 않을 여인들이 있으니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라’와 ‘하갈’이다.


내 몸종을 취 하소서

이야기는 기원전 2천년 무렵,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아라비아 반도 동북단 해안가의 번성한 도시 ‘우르’(메소포타미아의 인류 문화 태동지)에는 대대로 각종 신상(神像)을 만들어 팔던 공예가의 아들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다.
성경과 코란에 의하면 그는 신의 계시에 의해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그가 향한 곳은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이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날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손에 거머쥐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조상 대대로 이어왔던 신상 제작의 직업을 버리고 유목인 무리의 수장이 되어 먼 길을 떠난다. 그의 가솔은 웬만한 부족 공동체만큼 대규모의 집단이었다. 아브라함의 무리는 싸움에도 타고난 소질이 있어 그들이 가는 곳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분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다.

아브라함의 재산은 날로 늘어나고 무리의 규모도 점점 커졌지만 그가 가장 갈망해 마지않는 것은 정작 없었으니 그것은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었다.
그의 아내 ‘사라’는 늙어가는 아브라함을 보며 체념하듯 말했다.
“나의 몸종 ‘하갈’과 동침하세요. 내 몸종이 나를 대신해 당신에게 아들을 낳아줄지 모르니까요.”

이미 오래전 환갑을 넘긴 사라가 아들을 낳을 확률은 생물학적으로 ‘無’였던 것이다.
당시 그 지역의 관습은 안주인의 몸종이 주인의 씨를 수태하면 그 안주인의 수고를 대신한 대리모의 개념으로 보고 안주인의 자식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짐짓 거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몸 종 하갈의 천막으로 들어가 몇 날 며칠을 함께 지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미 70대였다.

혈투의 시발점

젊은 하갈은 곧 수태했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주었다.
아브라함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아이에게 ‘이스마엘’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스마엘은 아름다운 소년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사라도 ‘자기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하갈의 태도가 점점 문제가 됐다.

사라의 입장에서 보면 하갈은 분명 몸종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교만해 지고 있었다. 이스마엘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갈의 건방(?)은 더 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건방진 년. 이젠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도 구분을 못하는구나. 아이 못 낳는 내가 죄인이지, 죄인이야…아이구 내 신세야….’

그러던 중 고목(枯木)에 꽃이 피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한 것이다. 이때는 이미 이스마엘이 청소년으로 성장해 있던 나이였다. ‘놀랍게도’ 사라는 아들을 낳았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이삭’이라 불렀다.

아들 없이 세상을 뜰 것 같았던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생겼다. 아브라함의 기쁨이 된 이 두 아들은 그러나 장차 두 민족의 조상이 되며 수 천 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시발점이 된다.

이스마엘의 홀로서기

정작 자신이 낳은 아들이 생기자 사라는 이스마엘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줄기차게 졸라댔다.

“이삭은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진정한 장자입니다. 절대로 당신의 소산을 이스마엘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갈도 사라의 눈을 피해 아브라함에게 주장했다.
“주인께 아들이 없던 지옥 같은 시절에 장자로 태어나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선물한 아이가 누구입니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님의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는 추종하는 무리들이 점점 많아졌고, 두 무리들의 다툼도 심해져만 갔다.

이에 따라 사라와 하갈의 갈등도 깊어져 사라의 아브라함에 대한 바가지(?)는 일상이 된다. “제발 저 교만한 종과 그 아들놈을 내쫓아 주세요. 안 그러면 나와 이삭이 못 살아요.”

양 진영 간의 싸움이 심해져 유혈사태까지 벌어지자 아브라함은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만다.
“이스마엘아! 어머니를 모시고 다른 땅으로 이주하라. 내 혈육들이 서로에게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구나.”

이스마엘은 피눈물을 뿌리며 어머니 하갈과 그 무리를 이끌고 아라비아 반도의 내륙으로 들어간다. 이주하는 동안, 가서 터전을 잡는 동안 이스마엘 무리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하갈은 이때마다 강인한 모성애를 발휘하며 이스마엘의 성공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가 터전을 잡은 곳은 오늘날의 아라비아 반도 중심 즉, 걸프 지역으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 인근으로 추정된다.

두 민족의 모태

이삭은 아브라함의 막대한 재산과 힘, 세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브라함은 부족장이라고는 하지만 고대 작은 나라의 왕 같은 권세를 가졌던 것이다.

그가 치른 전쟁에서 갈릴리 지역(지금의 이스라엘)의 소국(小國) 즉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 등의 소국 연합군을 격파한 것만 보아도 보통 세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힘을 충실하게 물려받았던 이삭은 큰 부족사회로 성장했다. 이스라엘 고대 기록에 따르면 그 후손은 열 두 지파로 나뉘게 되는데 이들 지파가 곧 ‘유태인’이 되는 것이다.

한편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는 훨씬 불리하고 험준한 출발을 해야 했다. 성서에는 그가 ‘바란’ 광야에서 ‘활 쏘는 자’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장수가 되었다는 말인데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갈은 그에게 자신의 고향인 이집트 여인에게 장가들게 했다.
이스마엘은 가져 온 재산을 착실히 불렸다. 그는 장수의 자질을 갖춘 타고난 무인이었다. 이스마엘은 그 나름대로 자신의 발판을 마련했고 그 자손들은 후에 페르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 그 자손들이 ‘아랍인’들이다.

이렇게 여(女)주인 사라와 그녀의 몸종 하갈에게서 나온 두 아들은 큰 민족을 이루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지금까지도 원수처럼 싸우는 이스라엘(유태인)과 아랍 민족의 조상이다.
고대 이스라엘 땅의 한 여주인과 몸종 관계였던 사라와 하갈은 그녀들의 작은 다툼과 질투에서 시작된 형제들의 갈림이 4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져 후손들의 끝없는 유혈전쟁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전설 혹은 역사
아브라함은 유태인과 아랍인 모두 공동의 조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다. 그의 존재는 성경과 코란에 모두 기록돼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그리고 몸종 하갈의 이야기는 18세기 이후에 성서와는 무관하게 쏟아져 나온 중근동(아라비아 반도와 이스라엘 인근) 지역의 점토판, 파피루스(갈대에 적어 놓은 역사 기록) 등을 연구한 고고학, 역사학, 성서학자들의 학문적 고찰에 의해 ‘명백한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그런 연구가 없었더라도 수천 년에 걸친 유대교, 기독교, 카톨릭, 무슬림 신도들에게는 신앙 속에서 명백한 진실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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