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열정…농악은 인생의 동반자


“남원농악의 전통과 신명 이어나갈 것”

남원농악의 상쇠이자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호남좌도농악 부분 기능보유자인 류명철 선생.
류명철 선생은 1942년 전북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남원농악의 1대 상쇠인 류한준 옹.
류 선생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농악에 남다른 애착이 갔다”면서 “16살 때 아버지의 제자이자 2대 상쇠인 강태문 선생께 본격적으로 남원농악을 전수받았다”고 말했다.

농악을 즐기며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는 남원춘향제 전국농악경연대회 등 여러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휩쓸며 농악계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그는 돌연 농악계를 떠났다.
후대 남원농악을 이을 그가 농악판을 떠나고, 그의 스승인 강태문 상쇠가 노쇠한 몸으로 근근히 맥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강태문 상쇠가 와병으로 타계하시며 남원농악을 이을 사람은 류명철 선생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농악을 떠나 농사일에만 매진하려했지만 농악을 아예 떨칠 수 없었다”면서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설득과 사라져가는 남원농악을 일으키고자 다시 한 번 남원농악에 미쳐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떠나면서 남원농악도 세상에 빛을 벌하지 못했지만, 그의 복귀로 남원농악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가 복귀하면서 심혈을 기울인 것은 제자양성이었다.

류 선생은 “남원농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다”며 “1997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에서 좌도 남원농악 판굿 발표회도 성황리에 마쳤다”고 전했다.
발표회 이후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1998년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 7-4호 남원농악 상쇠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리고 1997년 남원농악보존회를 결성해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고, 1999년 남원시립농악단이 창단돼 류명철 선생이 부단장으로 취임하면서 남원농악이 다시 올바른 제자리를 찾게 됐다.
류 선생은 “잊혀져가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남원농악의 맥을 잇는다는 큰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남원농악을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해 그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디든지 발 벗고 나섰다. 그는 “3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남원에서 서울로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다”며 “힘든 여정이었지만 제자들과 함께 ‘서초교육문화회관’에서 많은 관객들 앞에서 발표회를 개최했을 때의 그 뭉클함은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농악에는 서민의 희노애락이 담겨있어 더 애착이 간다는 류명철 선생.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공연장에서 그의 모습은 어느 누구의 열정에 뒤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평생을 남원농악과 함께 했고 앞으로도 남원농악의 발전을 위해 앞장설  것”이라며 “남원농악의 깊은 전통과 신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공연과 전수활동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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