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말 많던 미산 쇠고기가 드디어 국민들의 식탁에 올라가는 첫날. 전국 롯데마트 53개 매장에서 일제 판매가 시작된 날, 10여 곳의 매장에서는 판매를 반대하는 NGO(농민·시민·소비자단체)와 유통업체인 롯데마트의 신경전과 물리적인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판매 전날인 12일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로부터 “내일 10시에 롯데마트 서울역지점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있습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예상대로 판매 당일 벌어진 ‘미산쇠고기 판매 파문’과 관련된 현장 표정을 스케치 한다.

■ 10:05 ‘꼬리 문’ 소비행렬=오전 9시 50분 롯데마트 서울역지점은 개장을 앞두고, 육류코너 전시 준비작업을 완료했다. 판매대 이외에 별도의 배너광고물까지 코너 옆에 설치하는 등 여느 때보다 화려한 치장이다.
10시 개장 시간을 알리면서 평소 보다 많은 주부들 중심의 소비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10시 5분경에는 벌써 15명 정도의 고객이 줄을 섰을 정도. “평소보다 약 10배 정도 사람이 많다고 보면 되겠네요.” 판매를 담당하는 안경희(47세)씨도 놀라는 표정이다.

■ 10:10 “팔지마세요” 기자회견=같은 시각 매장 밖에서는 농민단체들이 속한 범국본,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국민감시단(이하 국민감시단 총칭)등의 NGO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광우병 위험 미산쇠고기의 무차별 유통으로 인해 국민건강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면서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국민과 기업들이라도 나서서 미산 쇠고기의 유통과 판매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감시단은 덧붙여 “롯데마트가 향후 판매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미산 쇠고기에 대한 3불운동(팔지도 사지도 먹지도 맙시다)은 물론 롯데마트 전국 매장에 대한 불매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 10:54 “국민여러분! 광우병쇠고기 사지마세요.”=경찰병력이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70여명의 범국본과 국민감시단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매장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매장에 대한 영업방해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진입 성공.

‘미친소 몰려온다’는 제목의 홍보물과 함께 국민감시단은 육류매장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소비자들은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지고, 미산쇠고기를 포함한 전시코너는 시위현장으로 급변.

■ 11:11 “도저히 못 팔겠는데요.”=매장 육류코너 지배인이 등장하고, 갑자기 몇몇 남자 직원이 전시돼 있는 미산쇠고기 코너를 치운다.

“현재 상태로는 오늘 판매가 어려울 듯 합니다. 상부의 지시대로 철거하는 중입니다.”
지배인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상품이 치워지고, ‘오늘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산쇠고기를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코너를 대신했다.

시위대 철수 문제를 놓고 시위 진행자와 경찰 관계자의 말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매장의 총책임자의 공식 답변을 듣는 선에서 상황을 종료키로 했다.

■ 11:29 “지금은 안 팔겠습니다. 앞으론… 글쎄요.”=롯데마트 서울역점 김영수 지점장이 미산 쇠고기 판매 1시간 30분만에 국민감시단 앞으로 나왔다.

“오늘 미산쇠고기 판매를 중단하겠습니다. 본사에도 건의해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지점장의 짧은 멘트를 끝으로 국민감시단도 매장에서 철수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황엽 사무국장은 “일단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홍보한 것 같지만, 의외의 변수가 소비자들이다. 소비자들이 이렇게(소비량이 예상보다 많음) 반응 할 줄 몰랐다”며 향후 대응책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 12:10 “물리적인 시위가 얼마나 버틸지…”=이날 국민감시단이 집계한 전국 7개 시위현장(매장)에서는 미산 쇠고기가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필두로, 경기 안성점, 충북 충주점, 광주광역시 상무점·월드컵점, 충북 청주점, 서울 영등포점 등이다. 일부 매장에서는 ‘분뇨 살포’시위와 ‘지점장 각서’ 유인 등도 벌어졌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이날 시위나 판매 중지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롯데마트를 시작으로 뉴코아와 홈에버가 8월 시식행사를 계획하고 있고, 기타 할인매장들도 저울질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 12:30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먹겠다는데.”=기자회견이 끝나고 경찰병력과 국민감시단이 모두 해산한 시각.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판매중지’안내문을 보고 매장 직원과 실랑이가 한창이다. “당초 홍보대로 판매해야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다.

비슷한 때 육류 코너에서 이런 볼멘소리는 20여명이 넘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60대 주부는 “얼마나 위험한지도 검증되지 않았고, 한우보다 훨씬 싼데다 맛도 좋은데 왜 사지 못하게 하느냐”고 되레 기자에게 따져 물었다.

50대 남자 고객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한우고기를 대중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말은 ‘그림의 떡’을 먹으라고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국산 쇠고기가 비싸서 싼 수입 산을 먹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정책과 홍보의 잘못=롯데마트는 지난 15일까지 사흘간 20톤, 4억5천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히고 있다.
인기부위인 냉장육 윗등심과 꽂갈비살은 이미 만 하룻만에 동났고, 나머지 확보 물량도 추가 물량을 수입하기 전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호황으로 치닫고 있고, 그 결과는 예측하지 못할 지경이라는 것. 국민의 생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소비자의 판단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과, 홍보 내용도 초점을 잘못 겨눴다는 것이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국민은 똑바로 알지 못하고 있고, 정부나 축산관련단체는 무조건 애국심에 호소했다는 게 어긋난 관계로 발전했다.

이와 관련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3년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안이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크게 충격적이지 못했다”면서 “현재의 미산 쇠고기에 대한 인식도 광우병보다는 수입산을 멀리하자는 계몽운동쯤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 정책과 캠페인을 잘못 진행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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