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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송인숙 청지원 대표
귀농 13년 이젠 ‘땅의 여자’
2007년 07월 25일 (수) 10:54:59 여성농업인 fmaster@nongupin.co.kr
  
 
  
 
송인숙 청지원대표 | 1993년 귀농. 1998년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2회 정보사냥대회 특별상. 컴퓨터정보화 영농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농민신문 생활수기 가작. 1999년 음식물 사료와 유기농으로 환경보호 강릉시장상. 1999년 음식물 사료와 유기농으로 환경보호 공로상 강원도지사상. 1999년 정보사냥대회 농림부장관 우수상. 첨단농업기술연수센터 농업정보화반 강사. 아피스 농업 주부모임 초대회장. 2002년 한국여성농업인회 강릉지회 부회장. 2005년 농림부 신지식인상. 2005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상 수상.


도시의 외로움과 농촌의 적막
1993년 인천의 용접공이었던 남편과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다섯 살배기 아들과 4개월 된 딸을 안고 강원도 강릉 오대산 자락으로 이사를 왔다. 1993년은 국내에도 우루과이라운드가 체결되었던 해, 그나마 농사짓던 사람들도 땅을 떠나던 시절이었다.

아내는 곧 까만 고무신에 헌 작업복, 파마기 없는 머리와 화장 안 한 얼굴이 어울리는 영락없는 시골 아낙으로 변신했다.
남편과의 관계도 변했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거두는 진짜 동반자의 삶을 그제서야 찾은 느낌이었다.

13년 전, 도시 출신 이방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텃세와 편견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죽 못나서 시골로 농사나 지으러 낙향 했겠냐’는 주위의 시선은 인숙 씨를 무척 힘들게 했다.
이방인 취급과 푸대접에 할 수 없이 전액을 다 주고 농기계와 관리장비를 구입했다. 스러져가던 집을 고치고 사료 건조장과 창고를 새로 지으려 하자 국립공원 안에 건물을 짓는 것은 불법 용도변경이라며 면 직원 남자 셋이 찾아왔다. 힘없는 도시 출신 이방인들을 공무원 말 잘 듣는 농민으로 길들이고 싶어 몇몇 공무원들은 사사건건 꼬투리 잡고 시비를 걸어왔다.

“공무원들과 싸우며 싸움닭 다 됐지요”
땅보다 사람이 더 척박한 것에 분하고 외로워 이사를 결심하고 짐을 꾸렸던 어느 날, 산림청 공무원이 다가와 공무원을 고발하는 신문고가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주고 갔다. 억울함을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에 며칠 후 감사원에서 감사들이 찾아왔다.

감사들은 상황을 조사하고 즉각 시정명령을 내렸고, 억울함이 해소되자 인숙 씨 가족은 해당 공무원을 처벌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 지역에서의 마찰을 해소하고 이웃으로 받아들여진 긴 싸움의 첫 승리였다.
인숙 씨 가족은 그제야 이웃들과도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하게 되었다. 산 아래 할머니는 인숙 씨네 밭 수확하는 날에 자기 밭일 제쳐두고 올라오시기 시작했다. 주민들도 인숙 씨네 농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13년의 농사 생활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일은 열심히 재배한 채소를 사주는 사람이 없을 때였다. 도매시장에 내다 팔 때는 모양이 예쁘지 않고 무게가 적게 나온다는 이유로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인숙 씨는 농촌에서 살아 남을 방법을 궁리했고 운전학원에 등록해 면허부터 땄다. 다음엔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오대산 자락이 관광지인지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식당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농사일과 병행하며 밤잠 설치며 공부해 1년 만에 합격했다. 컴퓨터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통신을 하면 다른 농가의 노하우나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시 모뎀도 달고 프로그램도 깔았다.

곧 하이텔 대화방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수소문했고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가 운영하는 소모임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농민·낙농 동호회에 가입하고 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동호회 정보는 엄청났고 전국의 도매시장 가격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시행착오와 고생의 결실로 인숙 씨는 2001년부터 토종닭을 전자상거래 하는 독자사이트도 만들었다. 입소문이 퍼지자 단골손님도 차츰 늘어갔다.

청지원의 순환적 생산방법
인숙 씨는 식당에서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가져다가 건조시켜 사료를 직접 만든다. 메주를 만들 때 부패되기 직전에 발효시키듯 음식물 쓰레기의 수분 함량을 줄인 뒤 막걸리 찌꺼기를 넣어 발효를 시키고 이 사료를 닭에게 먹인다.

이 사료를 먹인 닭들은 닭장에서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 게다가 이렇게 키운 닭은 양계장에서 가둬 키운 닭과는 다르게 쫄깃쫄깃한 육질의 씹는 맛이 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은 닭이 질기고 맛없다고 환불을 해달라는 경우도 있지만 사육 방법을 알고 육질의 이유와 맛을 알고 나면 태도가 180도 달라져 금방 단골로 변모한다.
닭의 똥은 다시 밭에 거름으로 쓰인다. 닭똥과 풀을 섞어 만든 이 거름은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은 상추, 케일, 방울토마토로 열린다.

감자 한 알도 유기재배를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단순히 감자 키우는 과정 뿐 아니라 씨 뿌리기 전 농장의 토양 관리가 우선이다. 적어도 10년 이상 살충제 및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고 흙에 미생물이 살아있어야 한다. 밭에 첨가하는 인공적 거름까지 생태적으로 만들었으니 이러한 꼼꼼한 의지 덕에 1999년 유기농 재배와 음식물 사료로 환경보호에 앞섰다는 공로로 강원도지사상까지 수상했다.

한 발 앞선 걸음, 열 걸음 가까워진 미래
“컴퓨터는 어느 농기계보다도 쉬운 농기계입니다.”
인숙 씨는 1997년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에서 주최한 정보사냥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은 이후로 정보화 영농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강원도지사로부터 유기농산물 생산으로 인한 환경보존 공로상을 받았다.

<청지원>의 성공은 경제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송인숙 씨 가족은 아직도 대출 받아 들여온 농지에 대한 이자를 갚기 바쁘다.

하지만 송인숙 씨의 성공은 척박한 땅을 일궈 삶의 터전으로 삼은 뒤 농사의 가능성을 발견해 낸 한 인간의 성공이다. 그녀의 삶은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그대로 하나의 기록이다.


송인숙 대표 성공 4계명

1. 결과에 연연말고 과정을 중시하라
농사짓는 과정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 것.

2. 재투자는 하되 생활은 검소하게 하라
농사를 위한 투자는 과감하되 일상은 검소해야 한다.

3.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라
문화와 문명적 소외지역인 농촌에 사는 사람일수록 새로운 것을 포착하는 레이더를 도시인보다 두세 배 높게 세워야 한다.

4. 땅이 내게 정직했듯 정직하게 소비자에게 보여줘라
정직하게 키운 채소를 정직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오해로 유기농산물의 설 길은 더욱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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