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제 편집국장
여성농업인신문



중년의 여성농업인들 치고 소싯적 냇가나 다리 그늘 아래서 삼겹살 구워먹던 기억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당시 야외에서 삽겹살 굽기에 흔히 쓰이던 것이 슬레이트 조각이었다.

기름을 잘 빨아들일 뿐 아니라 고기가 잘 타지도 않으니 불판으론 제격이었다. 그 슬레이트가 석면덩어리라는 사실을 그땐 몰랐었다. 알았다고 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석면(石綿)은 한때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여겨졌는데 불에 타지 않고 가벼운 데다 썩지도 않으니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이런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면서 오늘날에는 재앙으로 바뀌어져 있다. 석면가루를 마시면 대략 3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이나 악성중피종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특히 악성중피종은 몸에 들어온 석면 먼지가 조직을 뚫고 늑막이나 복막까지 들어가 일으키는 암인데, 진단을 받으면 거의 1년 안에 사망하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특히 농촌에는 1960~70년대 석면 슬레이트로 지붕을 입힌 건축물 수십만채가 거의 방치된 상태다. 슬레이트 지붕 철거와 개량에 많은 돈이 들지만 정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해 대다수 여성농업인들은 불안 속에 그냥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농촌주택 지붕개량사업에 석면슬레이트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당시에는 석면 사용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가 없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석면가루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았다.

마모가 잘 되지 않고 단열 효과가 좋다는 장점으로 천장재와 단열재 등에 사용되면서 1995년까지 우리나라 석면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997년부터 석면의 위해성이 알려지면서 사용이 점차 줄어들다가 2009년에 이르러서야 석면함유제품 사용이 금지됐다.

석면이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물질이라는 공식적인 연구 결과가 처음 나온지 80여년만이었다.
특히 2009년 환경부가 조사 발표한 ‘농가건물의 석면함유물질 사용 실태’ 결과는 충격적이었는데 우리나라 농가 주택 약 123만채 가운데 38%, 즉 10채 중 4채는 발암물질인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 지붕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됐다. 축사 등 부속 건물에도 슬레이트가 많이 사용되어 1가구당 평균 슬레이트 보유량이 1.75톤이나 된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뉴타운 지역 철거작업, 지하철 역사, 지은 지 오래된 대형빌딩, 농촌 슬레이트 지붕 등 석면가루에 노출될 수 있는 공사가 산적해 있다. 30년의 잠복기를 감안하면 석면으로 인한 피해자가 앞으로 얼마나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또 비가 많이 오는 지금 상황에서 석면 조각이나 가루가 빗물에 쓸려 논이나 하천으로 유입될 우려가 있으나 이에 대한 관리는 안되고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특히 중앙정부의 예산지원 부족으로 슬레이트 지붕 철거 및 폐석면 처리비용만 지급되고 있어 지붕개량 계획이 없거나 영세한 건축주는 사업 자체를 아예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석면 슬레이트 지붕개량사업은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장기적 대책 마련과 함께 예산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노후화된 농가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제2의 새마을 운동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개량해 농촌 주민들이 석면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또 석면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처 요령 등이 담긴 매뉴얼을 하루빨리 만들어 농촌 지역에 보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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