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에 인물이 하나 있군”


황준량은 성균관에 첫 직책을 얻었다. 그것도 학생 선발 감독 및 유생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성균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다. 이황의 맏 제자로 멀리 영남지역 학자로서 가슴속 깊이 묻어나는 강인한 선비의 자부심이 성균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준량은 우선 성균관에 적을 둔 과거급제자 부터 파악했다. 관직을 받고 지방에 내려가지 않고 녹을 받는 20여명을 상부에 보고했다. 그 내용이 조정에 보고되자 과거에 눈감아 주던 관리로부터 압력이 왔다. 조용히 처리하지 문서로 만들어서 보고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질책이 있었다. 준량은 추가로 20여명의 명단을 더 추려 올렸다. 정면 반박하였다. 갑자기 식사 인원이 반으로 줄었다. 마치 이웃집 사랑방 드나들 듯 하던 인원이 빠져 나간 것이다. 준량은 벽보를 붙이면서 앞으로 수 일 안에 임지로 떠나지 않고 성균관에 얼씬 거리면 조정에 직소를 올린다는 직격탄을 날렸다.

준량은 27세에 교수가 됐다. 상당이 빠른 것이다. 그가 작심하고 학생들을 정리하고 나서자 일부는 준량이 눈에 가시였다. 또한 도성에 고관 부호에 명문자제는 이 를 갈았지만 준량은 완고했고 할 수 없이 몇 명씩 사랑방을 만들어 나갔다. 허엽이 드디어 급제를 하여 준량을 찾아왔다.
“자네가 낙엽을 쓸어내서 내가 급제를 했네.”
허엽이 진반농반 인사를 하면서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준량은 학록 이라는 직책이다. 성균관에서 학생을 지도 관장하는 요직이고 행정이며 학자로서 타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이다.
“준량 우리 집에 가끔 올 건가”

허엽은 성균관에 다시는 안 올 사람처럼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초당 왜 내가 있어서 오기 무서운가? 다들 나 때문에 못 온 다고 소문이 장안에 났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허엽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이 갓 끈을 타고 흰 저고리에 스며들고 있었다.
준량은 얼마 전 정신적 스승이며 처 외조부 농암 이현보 선생께서 운명하시기전에.. 선비가 너무 지나치게 맑으면 오히려 화가 미칠 수 있어…. 깨끗하고 맑기로 소문난 농암이 마치 타이르듯 손을 잡으면서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성균관 학생은 매일 식사시간을 출석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판서의 자제가 출석 미달로 과거 시험 자격이 박탈되었다. 한번 자격 미달이면 5년간 시험을 칠 수 없는 엄청난 일 이었다. 성균관이 또 한 번 크게 요동을 쳤다. 있으나마나한 출석일이 한번 잣대를 들이 밀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사대부 유생들에게 늦가을 찬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휘몰고 지나갔다. 수십여 명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3할에 해당되는 오십 여명이 수 년 뒤를 기약해야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번 과거는 지방 출신 과거 합격자가 절반을 넘었다. 그것은 시골출신 유생들은 대개 도성에서 겹방살이 하면서 어렵게 글공부를 해서 입신 하지만 도성 출신들은 유유자적 어두운 곳에 칼날을 들이민 엄청난 사건 이였다. 한마디로 오래 된 기득권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누구도 감히 하지도 할 수도 없는 일을 애송이 준량이 선뜻 칼을 대고 확 후벼 낸 것이다. 비난의 화살이 황준량을 지나 성균관 전체를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준량은 불타는 숲에 기름을 더 얹었다. 관행처럼 내려오던 신참학생 신고식의 폐단을 과감하게 뜯어 고치면서 벌칙을 내렸다. 실로 많은 파장을 불러 왔다.
몇 몇 학생들에겐 퇴학 조치가 내렸다. 준량도 전에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경험이 있었다. 추운 겨울 같은 유생들끼리 차가운 개천에서 고기를 잡으라는 얼토당토 않은 일이 비일비재 했다. 선배 유생의 명령은 혹독했다. 돈이 많은 재력 유생은 기방이란 기방은 모두 섭렵하는 그야말로 부잣집 기둥뿌리 빠지는 돈을 써야했다. 가난한 선비는 온갖 잡무에 심지어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적 학대도 있었다. 준량은 그것을 꾹 참고 공부에 전념하였던 것이다.

얼마 전 지방 선비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학업을 포기한 그는 눈물을 머금고 준량을 찾아 하소연했다. 제법 괜찮은 학생이라서 말렸지만 성균관을 나와 고향으로 가버렸다. 허엽 또한 그러한 고통을 준량과 같이 유생 때 겪으면서 동지애를 키웠다. 토정 지함은 그것이 싫어서 성균관에 가끔 얼굴을 내밀었다. 성균관 교수들은 그 내용을 알면서 묵인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생들이 대개 도성의 유력자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성균관에 맴도는 한마디로 불량한 선비들 이었다.

그들 몇 몇이 전체를 그르치고 있었다. 준량이 일단 유생들의 학칙을 강화하자 불만이 폭등했지만 작심하고 나서자 규율이 잡혀 나갔다. 또한 심한 신고식도 아주 간소하게 할 것을 요했다. 처음에 너무 반발이 심해서 위로부터 준량에게 자제도 해달라는 요구였다. 퇴학 조치는 후에 두고두고 준량에게 보복이 되어 돌아 올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왕 할 바에는 아주 크게 저질러서 사회 공분을 유발시켜서라도 뜯어 고치고 싶었다.

문제는 성균관 유생이 준량보다 나이가 위인 학생이 많았다. 그들은 젊은 황준량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준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지 멀리 시골에서 올라 온 선비들은 준량의 조치에 아주 환영이었다. 도성 학생들은 우회적으로 준량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퇴학에 자격정지 특히 과거시험 자격 박탈을 당한 유생은 준량의 적으로 돌아섰다. 드디어 성균관 지사가 어전에 불려갔다. 성균관 최고 책임자의 학자이다.

“우리 성균관에 대해서 여러 말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온당한 조치입니다.”
정 2품에 당당한 벼슬이다. 육조판서는 되기 쉬워도 성균관 대지사가 되는 것은 어렵다. 더군다나 종2품의 동지사를 2명이나 거느린 막강한 조직이다. 그 수장이 준량을 두둔하고 나섰다. 여러 대신들이 이구동성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순 멈칫해 졌다. 하지만 반발도 드셌다.

“이보시오 지사, 평생 공부해서 입신 하고자 하는 선비를 하루아침에 쫓아내면 되겠소. 그것도 관행처럼 여겨졌던 법을 이제 와서 꼭 준수해야 한다고 사전에 알리고 해야 하는 것 아니요.”
“네,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균관 학생이면, 더 나아가 합격자라면 굳이 사전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까?”  

조정대신을 거쳐 임금에게로 올려 졌고 어전 회의에서 갑론을박의 논쟁으로 번졌다. 드디어 임금이 한마디 했다.
“성균관에 인물이 하나있군”
 중종의 노안에 옅은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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