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 집안에 경사야!

준량의 소문은 순식간에 장안에 퍼지고 있었다. 이제는 과거 낙제가 아니라 출석 낙제가 더 무서웠다. 더군다나 주상의 칭찬이 있자 대놓고 준량을 힐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훗날 몇 몇의 관리들이 준량을 끝내 비방하는 기회를 주고 말았다. 준량은 학유에서 학정으로 승진했다. 정 8품 업무 총괄이다. 한 통의 서신이 준량 앞으로 왔다. 풍기군수 주세봉이 보낸 반가운 편지였다.

 “황준량 교수가 풍기에 왔다 간지도 벌써 일 년여가 지나가고 있소. 일찍이 명성이 자자하니 너무나 훌륭하오. 풍기가 내 고향은 아니지만 선생 향리에 군수로 있으면서 조그마하게 서원을 세우니 잠시 짬을 내어 한 번 이라도 강론을 해주면 본인은 물론이요, 어린 학생들에게도 큰 영광이라 생각하오. 서두를 필요 없소. 향리에 올 길이 있으면 잠시 짬을 내어 주면 감사하겠소”풍기 군수 주세봉서. 준량은 편지를 접었다. 풍기 얘기만 나와도 가슴이 뛰었다. 거기에 향교를 세우다니 그것도 소학에 준하는 서원을 세워 후학의 기회를 제공한다니 참으로 기뻤다. 언젠가 내려갈 길이 있으면 들러보리라 생각이었다. 준량은 서랍에서 편지를 꺼내들었다.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다. 동지사(정2품)에게 사직서를 올렸다.

“뭐라고! 풍기 서원으로 내려간다고? 더군다나 주상께서도 칭찬한 자네가!”
동지사는 너무 어이없어 했다.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가까운 곳도 아닌 멀리 충청도를 지나 경북 풍기라니, 그것도 잠시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표를 쓰고 낙향한다니, 삽시간에 성균관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이 돌았다. 준량은 이번 겨울 휴강에 성균관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다. 

 “풍기에 좀 다녀와야겠소”
준량의 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지난 가을에 들은 얘기를 아직도 잊지 않고 되물었다.
 “정말 성균관에 사직서를 올리셨습니까?”
 “그렇소”
어린 딸을 안고 있는 준량의 처는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어느 덧 혹독한 추위도 지나고 정초가 되자 준량은 풍기 본가에서 부모님께 큰 절을 올렸다.

험준한 죽령을 넘어 어둠이 깔리기 전에 고향집에 도착했던 것이다. 부모는 지난 번 준량이 보낸 편지에서 고향에 잠시 내려와 있으면 한다는 내용에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모든 일에 뛰어난 아들이었지만 옳은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백운동 서원 건물이라고는 본당 서채 초가로 이은 별채가 다였다. 성균관하고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초라했다. 풍기군수 주세봉이 황준량을 소개했다.

 “학생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 고장의 뛰어난 인재이며 과거 급제에 성균관 최연소 교수로 이름이 알려진 분이다. 우리 풍기 서원을 세워 유학을 수학하는 이곳에서 영광스럽게 황준량 선생이 교수직을 사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했으니 모두 매진하기 바란다.”

교수지만 백운동 서원의 유생들과 별반 나이차가 나지 않았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쟁쟁한 황준량이 학생을 가르친다고 하자 인근은 물론이요, 멀리 있는 지역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한양에 수년간 머물면서 부모에게 다 하지 못한 효도를 하고 싶었다. 준량은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어느 날 풍기군수가 준량을 불렀다. 군수가 준량 앞에 서찰을 건네어 주었다. 성균관 인장이 찍힌 봉투속의 편지를 읽는 준량의 표정이 어두웠다. 바깥을 내다보니 벌써 진달래꽃들이 동헌 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양을 내려 온 지 여러 달, 금계천에  한가로이 노닐 던 꿈이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군수가 입을 열었다.

 “편지를 읽고 있는 자네의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내용인가? ”
 “성균관에 복직하라는 내용입니다”
군수 주세봉의 얼굴이 활짝 핀다. 늘 모가 난 일을 벌이는 준량의 소문을 듣고 있었는데 다시 복직하라는 편지는 곧 준량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다.
 “곧 올라가야지 ”군수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말했다.
 “두어 달 더 머물다 올라가겠습니다. ”

준량은 퇴계 이황을 만나기 위해 다시 안동을 찾았다. 얼마 전에는 스승인 이황이 백운동 서원을 찾아 특별히 준량과 함께 학생들을 위해서 강론을 해주었다. 같이 계속 후원하기 위해서 서원에 위원으로 등록하고 서명했었다. 그리고 또 예천의 처부모를 찾아뵈었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처 외조부 농암의 묘소도 참배했다. 준량은 성균관 지사에게 편지를 썼다.

 “지사께 인사 올립니다. 잊지 않고 복직하라는 말씀 너무 고맙습니다. 공부하는 일에 매달려 여러 해 동안 부모님께 효를 다하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향리에 계신 보모님은 연로하여 아침저녁으로 효를 조금이나마 행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글을 좋아하여 근처 주세봉 풍기군수께서 서원을 세워서 유생들에게 이제 막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다시 교수로 한양에 올라간다면 진정의 뜻을 전할 수 없어 외람되지만 두어 달 더 머물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준량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싶지만 한양에서의 살림도 어려웠다. 향리에서는 너무 빈곤하여 아침저녁으로 늘 조촐하기 그지 없었다. 풍기관아에서 조금씩 도움을 주는 것이 소득의 전부였다.

준량의 부모도 조상도 늘 책과 같이하여 대대로 선비로 살아온 집안이라 재물은 축적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 있었어도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삼판서 황유정의 후손이지만 재산이라고는 금계의 조그만 집에 초가인 사랑채가 전부였다. 흔한 노비도 없는 그야말로 빈손의 선비집안이었다. 공부해서 입신하여 출세를 바라는 부모에게 덜컥 성균관 교수직을 사직하고 시골 서원에서 강론하는 준량을 어찌 생각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준량은 어린 유생들에게 진심으로 강론하고 싶었다. 단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여 며칠 강론하고 떠나기는 싫었다. 진정한 학자의 생각이었다.
병풍처럼 우람하게 둘러쳐진 소백산 자락의 녹음이 짖게 펼쳐지고 한 낮의 볕이 제법 따가워졌다. 풍기군수가 저녁에 집으로 찾아왔다. 

 “ 이보게, 준량! 서울에서 또 서찰이 왔네. 자네 집안 대단하네.”군수는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실상 그랬다. 성균관이 어떤 곳인가. 당대 최고 교육기관이며,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가. 선비라면 성균관 편지를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꿈이 아닌가.
준량에게 온 서찰의 내용은 그를 성균관 박사로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넘겨 받아 읽어보는 준량 부모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풍기군수 주세봉이 드디어 한마디 했다.
 “ 허허, 황씨 집안에  경사야. 성균관 역사상 최연소 박사가 됐어”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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