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작년에 뜯어두었던 비닐하우스를 자리를 옮겨 다시 지었습니다. 아니, 짓고 있는 중입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산 아래로 난 길을 따라서 하우스 하나 칠만한 정도의 빈 땅이 있는데 거칠고 속에 돌이 많아도 제 땅 중에서는 바람의 피해를 가장 덜 받을 곳이기에 거기에 짓는 중입니다. 그곳에 서있던 은행나무는 얼마 전에 베어내고 두 시간정도 굴삭기를 불러 나무뿌리를 캐냈습니다.

길을 따라서 배수로를 내고 대강 땅을 일구는데 생각했던 대로 돌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돌을 다 캐내고 평탄작업을 해야 제대로 하우스를 지을 수 있겠는데, 그러려면 굴삭기가 하루는 일을 더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캐낸 돌의 처리와 잔돌 골라내는 일, 낮아진 땅의 배수 문제, 거름기 있는 표토는 사라지고 질흙만 남아있을 터이므로 결국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흙을 사다가 복토를 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기에는 일이 너무 크고 버겁습니다.
그래서 약 30~40센티미터의 표토 깊이로만 땅을 일구고 평탄 작업도 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우스의 총 길이는 23미터, 너비는 6미터여서 이에 맞춰 우선 네 군데에 말뚝을 박고 줄을 쳤습니다. 그런 다음엔 철제 파이프의 개수만큼 23미터 길이의 양쪽에 약 60센티미터 깊이의 구멍을 뚫는 것입니다.

논처럼 무른 땅이라면 구멍을 뚫는 일은 일도 아닙니다만 제 땅은 속에 돌이 잔뜩 깔려 있으니 이게 가장 큰일입니다. 구멍 뚫을 자리에 돌이 있으면 파내야 되고 파내지 못할 커다란 것이면 간격은 무시하고 옆에 옮겨 뚫어야 하는데 뚫어야할 구멍의 개수는 양쪽 합해서 모두 108개, 구멍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천신만고 고행의 연속이었습니다. 30~40센티미터 깊이에 들어 있는 돌을 파내는 일도 저에게는 너무 힘이 들고, 무거운 철장을 들어 수십 번 내리찍어 돌을 깨는 것도 못할 일이라 한숨만 나왔습니다. 열에 여덟아홉 개가 이 모양이고 겨우 한두 개가 수월하니 어느 세월에 이것을 다 할 수 있을까요? 하나 뚫고 지쳐 먼 산 바라보느라 일을 시작한 첫날 겨우 한쪽편만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이 걱정되었습니다. 일꾼들을 셋이나 얻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첫날 구멍 일을 다 끝내놔야 둘째 날 파이프를 옮겨다 박는데 오늘일이 내일로 넘어가니 핀을 채우기도 바빠 양 옆 출입문까지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 혼자 해도 될 일이면 걱정도 않지만 이것들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말이지요. 저녁에 잠은 또 어찌 잘 수 있을는지. 아니나 다를까 고달프고 힘들어서 뉴스보다 말고 나도 몰래 잠들어 버린 초저녁잠 한 숨을 빼고는 거의 밤새 엎치락뒤치락, 어깨의 통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새벽에 파스를 두서너 군데 붙이고는 그길로 일어나 버렸습니다.

육십도 안 된 나이에 몸뚱이가 이 모양이니 앞으로 어떻게 일해 먹고 살 수 있을는지요. 제힘에 겨운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견디기야 하겠지만 농사일이라는 게 힘들지 않은 게 없으니 그것이 걱정입니다. 꼭 일을 한 만큼 몸이 아프니 이제는 새삼 힘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합니다.

산속에 있는 외딴 저희 집을 찾지 못해서 열시가 다 돼서야 온 고만고만한 일꾼 셋 중 하나가 힘을 좀 쓰는 것 같아서 우선 구멍 뚫는 일을 하게 했는데 서툴기는 해도 저처럼 지치지는 않았습니다. 하기는 아직 서른도 안 된 사람들이니 거의 두 곱 세월을 산 저와 비기겠습니까만, 일꾼들 나이 때의 저를 생각해보니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 까닭을 그들은 모르겠지요.

안식구는 안식구대로 하루 종일 부엌에서 바빴을 것입니다. 두 번의 새참과 점심을 준비하느라 신경도 많이 쓰였겠지요. 놉을 얻어 일을 할 때마다 제가 아내에게 강조하는 게 먹매입니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그리고 남의 집에서는 어떻게 하는가는 따지지 않고 저는 저 나름대로 제성에 찰 때까지 일꾼들을 먹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꼭 새참 때를 가리지 않고 한 가지 일이 끝날 때마다, 혹은 힘든 일을 하고 잠깐 쉴 때에도 먹을 것을 준비했다가 내놓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새참 말고도 두세 차례입니다. 이러는 것도 제가 옛날부터 들어왔던 ‘일꾼들은 먹을 것으로 잡아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몸에 새겨져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집에 와서 힘든 일을 하는데 먹을 것에 대한 기대마져 없다면 일꾼들에게 하루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지옥일겁니다.
산그늘이 일찍 지는 저녁나절은 춥기도 한지라 조금 일찍 마칠 생각으로 딴엔 바삐 서둘렀는데 짐작했던 대로 활대 새우고 핀 채우는 일까지밖에 못했습니다.

전체 공정으로 따지면 삼분의 이 정도 한 셈이지만 그래도 어려운 과정은 끝냈습니다. 멀찍이서 보니 하우스 모양이 파도치는 듯 구불구불해서 꼭 설치조형물 같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속도 모르고 주인의 솜씨 없음만 가지고 웃을 것을 상상하니 되려 웃음이 나옵니다. 어쨌든 봄 들어 가장 걱정스럽던 일 한 가지 조만간 끝이 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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