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하루 종일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해 어스름 때 집에 오니 집사람이 마루 끝에 앉아 있는데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약간 얼이 빠진듯했습니다. 일어나서 반갑게 맞이하지는 않는다 해도 “이제와?” 말 한마디는 건넴직한데 그것조차 없었습니다. 감춰진 속마음은 하여간에 겉으로 드러나는 아내의 심기조차 살피지 못할 정도로 무디다고는 생각지 않는 제가 그러나 그날은 피곤하기도 해서 모른 척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제가 또 남의집일을 해주고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는데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평소하지 않던 짜증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저한테 짜증을 부리는 게 아니라 짜증이 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무엇이 그리 짜증이 나냐고 물었더니 우리 사는 모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잇기를 방바닥 종이 장판이 찢어져서 흙먼지가 풀썩풀썩 나는 것, 어둑신한 방안에 사시장철 이부자리가 깔려 있는 것, 냇가에서 끌어다 먹는 수돗물이 젤젤거리면서 나오는 것 따위 어느 것 하나 짜증나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이것 참 속으로는 큰일 났더군요.

무슨 큰일도 아닌 이런 사소한 일이, 그리고 여태껏 그렇게 살아 왔으면서 이제 그것이 짜증이 난다니 이런 병에는 특별한 약도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갑자기 인생관이 변해서도 아닐 것이요. 틀림없이 어떤 신종바이러스가 머리와 가슴에 침투해서 벌이는 장난일 터인데 저로서는 당장 처방전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좀 세심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그 이튿날도 일을 갔습니다. 그리고 해넘이가 되어서 또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방안이 좀 이상했습니다. 어떻게 이상했냐구요?

글쎄 방 윗목의 꼭 그 자리에 있어야할 아버지어머닛적 압다지가 어울리지 않게 방 아랫목에 떡하니 옮겨와 있고 짝을 이루고 있는 문갑 한쪽이 방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밖에는 아직 겨울에 버금가는 꽃샘추위가 한창인데도 이불은 죄다 걷어져 있어 썰렁하기만 하고요. 몇 십 년 변하지 않던 방안에 일대 모진 소용돌이 꽃샘 광풍이 휘몰아친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건 정말 아닌 것이어서 갖은 구변을 다해 제 아내를 설득, 문갑만은 겨우 그 자리에 원상회복을 시켰습니다.

이튿날은 제가 집에서 하루 쉬면서 아내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부엌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저희 집 부엌은 삼면이 빙 둘러서 알루미늄섀시 창문과 출입문이 있는데 불을 때는 까닭으로 늘 그을음이 들러붙어있습니다.

그 창문과 출입문 큰 것을 죄다 떼어서 수돗가로 끌어다 놓고 씻고 닦느라 난리가 난 것이지요. 아하! 그래서 저는 제 아내의 마음속에 봄이란 놈이 장난을 친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정지뿐만이 아닙니다. 장독대고 어디고 온 집안을 빙빙 돌아가면서 닦고 불고 쓸어냈습니다. 덕분에 집안은 봄단장을 잘 마쳤습니다.

하지만 제 보기에 사람 마음은 깨끗이 닦이고 정리되어 평상심을 찾은 것 같지가 않아 보였습니다. 집안을 대강 정리 했어도 구조적으로 꾀죄죄할 수밖에 없으면 얼마가지 않아 도로나무아미타불이 되듯이 사람 마음도 근본적인 성찰이 없으면 외부의 어떤 요인이나 생리적인 것에 의해 흔들리게 돼있는 것이지요. 꽃을 가꾸느라 화단에 늘 가서 앉아 있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저의 노파심인지는 모르지만 심리적인 갈등과 그로 인한 위기 같은 것을 보곤 하니까요.

딴엔 그런 제 아내를 위로한답시고 그사이 목욕탕을 두 번이나(?) 데려다주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자주 사다주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냉수마찰을 해버릇해서 일 년에 기껏 목욕탕 세 번가면 많이 가는 사람입니다만, 같이 목욕탕 안 가는 것도 짜증이겠다 싶어서 그리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요? 모른 척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기야 하겠습니까만 매사에 이런 식의 응급처방에 제 아내의 피로도는 되려 높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걱정이 됩니다.

가만히 돌아보니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수십 년 같은 자리에서 개미 쳇바퀴 돌리는 것만 일삼는 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 텐데요. 늘 입으로는 변화를 바라면서도 그 자리를 맴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탄식이 저도 모르게 나옵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치유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솔직히 말하면 실은 저도 누군가의 피보호자가 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앞서도 얘기했다시피 근본적 처방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발기 집어서 흐르는 냇물에 맑은 물이 나도록 짤짤 빨고 헹구고 햇빛에 널어 말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나 제 아내나 꼭 오십의 한 중반을 넘어가는 이 봄이 유달리 괴로운 것은 시절의 하 수상함 때문도 있겠지만 타성적 생활이 가한 역습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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