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살아야 농촌이 산다

  
 
  
 
충남 서천의 합전마을. 논길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언덕이 나오고 차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꼬불꼬불한 산속의 오솔길을 지나 들어가 보면 그제서야 건물들이 보이고 농장과 건물, 잔디밭이 보인다.
이곳은 서천여성농업인센터 최애순 소장이 운영하고 있는 체험농장 ‘아리랜드’. 그 옆에 2층짜리 주택건물과 슬레이트 건물로 이뤄진 서천여성농업인센터가 보인다. 2층짜리 건물의 1층은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과 보육시설이고 2층은 여성농업인들을 위한 교육장소라고 했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로 가득한 여느 센터와는 다르게 서천여성농업인센터는 고요했지만 활기찬, 참 특이한 분위기를 가졌다.



농촌의 희망은 ‘여성’
“농촌의 희망을 찾기 위해선 여성의 모성애와 여성성을 무기로 여성농업인이 나서야 한다.”
농촌의 여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서천여성농업인센터 최애순 소장은 “힘 있는 여성농업인, 여성 CEO를 육성해 그들로 하여금 농촌을 살고 싶은 곳으로 가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최 소장의 소신은 현재의 서천여성농업인센터를 있게 했고 ‘소득이 곧 경쟁력’이라는 센터의 신조에 따라 마케팅과 비즈니스 능력을 갖춘 여성농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마케팅 비즈니스 CEO 교육’이 집중 실시되고 있다.

이를 위해 센터는 개인상담을 통해 여성농업인 각각에 맞는 농외 소득원을 찾아주어 여성농업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고추, 마늘 등 병조림를 제조해 판매하는 여성농업인의 경우 본인 이름의 명함과 특성에 맞는 브랜드를 만들어 스티커로 제작해 붙이도록 교육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농업인들은 스스로 여성 CEO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교육을 아무리 다양하고 알차게 준비해도 농사일에 바쁜 여성농업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도 있을 터. 이 때문에 센터는 수시로 농가나 마을회관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센터의 이같은 노력 덕분에 서천 합전마을의 여성농업인들은 모두 농외소득원을 갖게 됐고, 그 특징을 살려 서천 합전마을은 ‘팜스테이’마을로 변신, 서천군의 ‘찾아오는 농촌만들기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최 소장은 “처음엔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분들도 많았고, 여자가 나서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많았지만, 지금은 전국 팜스테이마을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농촌관광마을로 지정될 만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합전마을에서 만난 한 여성농업인은 “서천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되고 발전이 더뎌 불만이었는데 센터와 최 소장 덕분에 지금은 도시민이 늘 왕래하는 활기찬 서천이 되어 너무 좋다”고 자랑했다.

서천은 여성농업인센터와 함께 2003년 정보화 시험마을로 지정돼 마을 홈페이지와 전자상거래 시스템을 만들고 외부지원이 전혀 없이 주민들의 힘으로만 동백꽃 축제도 열어 수천여명이 관광객도 유치하고 있다.

특징없는 사업에 예산도 부족
지역사회의 신뢰와 자부심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센터이지만 올해 센터 존립에 대한 큰 위기가 있었다. 올해 10월 예산심사에서 탈락돼 센터가 없어질 뻔 했던 것. 다행히 추가예산 재심사를 통과해 그 위기는 넘겼지만 이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 소장은 “지자체의 센터 지원사업이 1년 단위의 사업이라 매년 심사를 받아야하는 불안감과 불편함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러다 보니 직원들의 복지는커녕 고용안정조차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예산 부족도 큰 문제지만 센터 운영상의 문제점도 많다는 지적이다. 지자체가 센터를 지원할 때 필수 사업을 모두 이행해야만 예산지원 승인이 나는데, 현재 대부분의 센터들이 어린이집 운영과 공부방 운영만 매달려있는 실정으로 이를 제외한 다른 사업은 이름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마저도 농촌의 고령화로 인해 아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 제대로 된 운영이 힘든 실정이다. 서천여성농업인센터의 실정도 다르지 않는데, 그나마 다른 지역의 센터들보다 보육사업과 공부방의 비중이 적다.
최 소장은 “어린이집 운영상 아이들을 나이별로 반을 나눠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실시해야만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 숫자로는 생각도 못 할 일일뿐더러 보육교사를 보충할 예산도 없다”고 울상이다.

보육시설 인증기준 맞추기 힘들어
여성농업인센터의 어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부터 ‘보육시설평가인증제’가 실시되고 있는데, 여성농업인센터도 인증대상자로 포함돼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센터의 운영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그러나 여성농업인센터는 초기 시설 지원시 건물이나 시설에 대한 지원이 전무했고, 지방이양으로 예산도 줄어들어 현재 인증제에 맞는 시설을 갖추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다.

서천여성농업인센터의 한 교사는 “요즘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조금 여유있는 농가의 학생들은 사설 학원으로 가기 때문에 센터로 찾아오는 아이들도 거의 없어 명목상 존재 할 뿐만 아니라,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센터 공부방을 이용하는 저소득가정 아이들 사이에 위화감도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애순 소장은 “농림부의 방침상 어린이집과 공부방, 여성농업인 고충상담, 여성농업인 교육의 필수 사업을 모두 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고 토로하고, “센터가 여성농업인을 위한 종합복지시설이 되기 위해선 지역특성에 맞게 필수사업 중 원하는 사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내실화와 지속성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성화·차별화 된 센터운영 절실
이곳 센터 시설은 최 소장이 사비를 털어 여성농업인 교육장과 어린이집이 있는 건물을 지어 다른 센터에 비해 공간도 넓고 환경도 좋은 형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센터를 찾아오는 길이 너무나 열악해서 교육이 있을 때마다 직원이 시내로 나가 교육받으러 오는 여성농업인을 하나하나 태우고 와야만 한다.

서천여성농업인센터는 9천만원 정도의 지자체 예산 지원과 저소득아이들 보육비 지원, 그리고 1,650만원의 자부담 등 모두 1억여원으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 정도 예산으로 실효성 있게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선 여성농업인CEO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이곳 센터처럼 지역특색에 맞는 사업을 선택해 차별화된 센터 운영이 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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