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고을 다스리는 신령 현령이 되다

팔공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득한 뜰에 따사로운 봄바람이 불고, 들에는 벌써 보리 싹이 크고 있었다.
준량은 식솔들을 데리고 관아에 짐을 풀었다. 판서가 한양을 떠나기 전에 준량을 불러 위로했다. 몇 년 동안 3판의 좌랑을 역임한 준량이 가진 것 이라고는 말등짐 한 필이 전부라는 것을 알고 전별금을 주었다. 아마 승지로부터 받아온 것이 분명했다. 승지가 사직서를 내고 나올 때 한 마디 한 것이 아직도 귓가에 머물렀다.
“외직에 가거든 조용히 있으시오. 주상께서 크게 쓰지 않겠소.”

여러 번 만류했지만 굳이 외직을 자청해 멀리 간다고 우기는 준량을 막을 수 없었다.
육조의 정랑 좌랑이 수십 명이지만 유독 돌출행동을 하는 준량을 보면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특별히 주상께서 직접 고을의 임명장을 어전에서 임명했다. 준량은 감격했지만 밝고 온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통 임명장을 도승지가 대신 명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직접 어전에서 임명장을 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태연한 모습의 준량을 보며 도승지는 준량을 더욱 신임했고 덩달아 판서는 전별금을 만들어 전한 것이었다.

준량은 난처했다. 자신이 늘 문제라고 한 재물이 눈 앞에 거절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어전에서 나온 것이오. 우리가 조금 보탰소.”
판서, 참판, 참의 등에게 인사를 올리고 도성을 나온 지가 거의 두어 달이 지나고 있었다. 준량은 풍기 본가에 들러 잠시 머물면서 소수서원에 전별금을 기부했다. 재정이 어려워 겨울에 냉기를 참고 공부하는 서생들과 어린 유생들이 안쓰럽기 때문이었다. 식솔들을 데리고 신령으로 오면서 와룡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퇴계 선생을 찾았다. 퇴계는 가장 아끼는 제자인 준량과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한양에 비해 신령은 안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퇴계 선생에게 주자학의 강론을 듣고 싶었다.

유학의 기본이요, 당시 중국 유학의 큰 맥으로 주자선의 기본 정주론을 공부하는 퇴계 선생께 그간 궁금한 것을 질문도 하면서 서필로 적은 여러 책을 놓고 배움을 청했다. 퇴계는 준량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고 올곧은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 성품이 제자로서 기특함과 한편으로는 늘 주변과 부딪치는 아픈 상처를 마음속으로 삭이면서 살아온 젊은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퇴계는 아직 후학을 가르칠 장소를 물색하지 못했다. 준량이 찾아오자 예안 강기슭 조용한 곳에 준량과 같이 둘러보면서 그간 마음 둔 곳에 머물 것이라 말했다. 준량은 스승이 정한 곳이 꽤 좋은 곳이라 여기고 같이 하룻밤을 지냈다. 단양군수와 풍기군수를 지내고 여러 번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낙향하여 고향을 지키면서 후학 양성을 계획하는 스승을 보면서 존경과 학자로서의 품성을 깊게 우러러 보았다. 스승 퇴계는 준량을 황중거라 불렀다. 그것은 준량이 앞으로 세상의 중심 학자로 서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름대로 존경하는 제자를 가리키는 경어였다.
“황중거, 고을에 수령이라는 직은 녹록치 않네.”

준량은 나른한 신령 관사에서 지나 온 두어 달을 회상하고 있었다. 막상 업무에 임하니 난해한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전임 현감의 인수인계도 문제였다. 수십년 전 외조부가 신령현감으로 다녀가면서 조정의 과거급제 후 인사 차 하신 말씀이 신령에는 산물이 풍부하고 영남으로 가는 길목의 고을로서 현으로 치면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는 중요한 곳이라 늘 자랑스럽게 처음 지방 수령의 뜻을 펼 수 있었던 곳이다 여러 번 들었던 곳이지만 막상 와보니 기대치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전임 현감은 승진하여 타 고을 군수로 떠나고 없었다. 현 이방이 조목조목 적은 문서를 검토하는 선에서 끝내고 말았다. 현 치고는 큰 고을이라 육방의 관리와 향리들이 제법 격식을 갖추고 찾아왔다. 준량은 아직 사십이 안 된 그래도 젊은 현감이었다. 과거급제에 조정에서 요직인 좌랑을 여러 번 역임한 유능한 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 속의 관리들은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임금이 직접 임명장을 주었다고 하자 부러움과 존경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관례대로 고을 유지를 찾아 인사하고 인근 고을의 수령을 찾아 인사했다. 조금 떨어진 경주 부사와 성주 목사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그들 정 3품의 당상관으로서 국가 중대사를 논할 수 있는 지방의 수령이었다. 자신이 암행어사로 전국 순회를 할 때 감찰 받던 관리들이 이제는 자신이 우러러 받들 수령들이었다. 준량은 고을 현령이지만 부, 목의 감독은 받지 않아도 되는 중앙 직속 현이었다. 목이나 부에 속해 있는 속현은 부, 목이 직접 관리하고 임명하지만 직속 현은 임금이 명을 하여 관리하기 때문에 상당한 독립성이 보장되고 있었다.

준량은 내부 점검에 나섰다. 처음에 조세 창고부터 시작했다. 이방의 문서와 창고의 재물은 판이했다. 곡물이 창고 바닥을 겨우 채우고 있었고 허위 문서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디 한 곳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누가 책임질 관원도 없어 보였다. 이미 전임자가 결제하고 상부에 승인도 받아 있었다.
준량이 감찰할 때는 부, 목만 했지 실제 현의 창고까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이 지난날 자신의 무능이란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몇 년 전은 어땠는지 또 그 이전은 어땠는지 준량은 동현 뜰에 관리들을 불렀다.

“여러 관원은 글 꽤나 읽는 유능한 관리요. 지금 돌아보니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는 고생이 매우 많소. 앞으로 나와 같이 수년 고생 좀 해야겠소. 그렇지 않고는 고을이 피폐해져 주상의 명을 받들기 어렵겠소. 아침 일찍 나와서 늦게까지 열중하기 바라오.”
준량은 우선 관아 식솔부터 바른 자세로 임할 것을 주문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삼권을 쥐고 고을을 다스려 볼 수 있는 꿈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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