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리에 글 아는 사람 없었다

보리싹이 들판을 덮고 있었다. 제법 풍년이라 준량은 마음이 가벼웠다.
이방을 시켜서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조세를 점검시키고 한편으로는 매년 춘곤기에 구흘미로 대부곡을 따로 정리하여 조금이라도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준량은 관솔들과 고을을 한 바퀴 돌며 봄철 바쁜 농촌을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그때 난데없이 나타난 소가 보리싹을 뜯어 먹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를 몰아 보았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저 건너 건장한 하인들은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준량이 바삐 다가가 농부에게 물었다.

“거기 어인일인가?”
 농부가 땀으로 젖은 옷을 여미며 말했다.
“소떼들이 뛰쳐나와 곡식을 망치고 있습니다.”
준량은 염려스러워하며 말했다.

“아니, 소가 어찌하여 다 된 곡식을 뜯어 먹도록 둔단 말인가?”
 옆에 서 있던 이방이 송구스러워하며 나섰다.
“가난한 백성이 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 가난한 그들에겐 소라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건 저 멀리 진사댁 소였다. 진사댁에는 소가 여러 마리 있고 봄철에 가끔 야산에 방목하여 살찌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소를 모는 하인들이 일부러 고삐를 풀어 밭에 곡식을 뜯어 먹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백성들이 항의했지만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밭의 곡식을 먹은 것뿐이라고 항변하면 더 따지고 들 방법이 없었다. 몇 몇은 해마다 관청에 찾아가 하소연 했지만 그뿐이었다.

준량은 관아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난 해 문서를 점검시켰다. 여러 고을 백성들의 소장이 있었다. 한결 같은 내용이 눈에 띄었다. 다 된 곡식을 짐승에게 뜯기고 현령에 고소를 했지만 판결은 항상 흐지부지 뚜렷한 판결내용이 없었다.
오후에 팔공산 자락을 돌았다.

어김없이 소 뿐 아니라 말까지 들판을 다니고 있었다. 한쪽에선 논갈이가 한창이었다. 신령 땅에는 유난히 돌이 많았다. 오래 전부터 돌로 막을 쌓고 평지를 만들어 개천물을 끌어 오면 번듯한 논이 되어 귀한 쌀이 생산되어 고을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영남지역의 큰 고을이었고 길목이었지만 그럼에도 백성들이 줄고 원성이 자자했다. 조정이 문란해지자 먼 이곳까지 토호세력이 관과 결탁하여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들의 등을 쳐대는 부정이 일었다. 논에 볍씨를 뿌리는 백성들의 어깨에 힘이 빠져 있었다.

 생기 넘쳐야 할 농민이 힘이 빠져 논두렁을 기다시피 어기적거렸다. 고을의 수많은 백성들이 빚에 허덕이며 곡식을 거두어들이기 무섭게 세금에 이곡(장래쌀)까지 바치고 나면 남는 것은 앞마당 가득 쌓인 짚더미가 전부였다. 팔공산 약초를 캐어 밭에 심었다가 관에 끌려가 숫한 고생을 한 백성이 고을을 떠나고 비싸고 수입이 좋은 산약재 재배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몰래 팔공산 자락에 백지, 천궁, 작약 등 뿌리 식물을 심어 가을에서 봄까지 캐어다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됐는데 언제부터인가 산에 약초도 세금으로 절반을 강제 징수해서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을 백성들은 아주 깊은 팔공산속에 심었지만 타관 약초쟁이가 캐어가기 시작해 산약초 재배도 어려웠다. 힘들게 심으면 누구 좋은 일로 만들고 말았다.

관청에도 세곡미를 비롯해 귀한 약재도 없었다. 해마다 많은 양의 약재를 조세로 바치고 나면 창고는 비어 있었다.
팔공산 자락은 험하고 위험했다. 대낮에도 호랑이의 출몰이 잦았다. 목숨의 위험을 무릎 쓰고 귀중한 약재를 바위틈이나 숲속 그늘에 심어 몇 년 씩 재배하고 캐는 것 까지 세금으로 거두어가는 관리들이 야속했다. 그것은 향리들과 관이 결탁했기에 가능했다. 마을마다 향리들은 그러한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관을 대신해서 촌락을 이룬 시골마을에 책임자로 집집마다 개개인은 물론이요, 각 집안 사정을 너무 잘 알았다. 그들이 일일이 캐묻고 따지는데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글을 모르는 대다수 백성들은 법으로 다스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려운 한문은 그렇다 치고 세종대왕께서 만든 언문도 모르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글을 깨우친 자들은 마을에 향리나 양반집 선비들이었고 그들은 대다수가 일을 하지 않고 고을의 중추적 관리로서 모든 업무에 관여하면서 수많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향리에는 글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오?”
준량의 물음에 이방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략 한 둘 정도입니다.”
“그들에게 글을 가르칠 방법이 없겠소?”
준량이 알면서도 재차 묻자 형방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먹고 살기 바쁜데 글을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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