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업 과한 사랑에, 경제사업 갈 곳 잃어가”


금융사업 집착… ‘관치’’낙하산’ 임원선출도 서슴없이 단행

경제 지주 백지화 소문, 경제 사업연합회 모델 대두





신경분리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새 진용이 짜여졌다. 지난 10일 임시대의원회를 빌어 전무이사, 농업경제대표, 상호금융대표, 조합감사위원장을 새로 뽑았다. 다음날인 11일엔 임종룡 금융지주회장의 취임식을 마쳤다. 중앙회장과 축산경제대표만 남겨두고 수뇌부들이 모두 바뀐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농협법 개정에 따라 지주회사 형태로 분리된 농협중앙회의 부자연스런 조직운영이 개선될지에 대한 주위 의혹은 여전하다. 정부의 매끄럽지 못한 자본금 지원문제,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어긋난 지주회사 형태 등 기대치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농협중앙회의 현주소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계속되는 인사…“만사 아니다”

‘리스크 관리체계 선진화, 생산성 개선을 위한 조직시스템 개선, 수익성 위주의 영업문화 정착, IT체계 구축 및 금융소비자보호를 통한 고객신뢰 회복’.
지난 11일 3대 금융지주회장으로 취임한 임종룡 회장이 내건 핵심 경영비전이다. 1년3개월동안 회장이 세 번씩이나 바뀌는 등 혼란스런 취임 배경에 서 알 수 있듯이 임 신임회장의 경영비전에는 상당한 저의가 내포돼 있다.

신동규 전 회장 퇴임에서 불거진 농협중앙회와의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게 우선 중책이다. 이번 회장 인선에서도 임 회장의 기획재정부 차관시절이나 국무총리실장 때 조직 융화력을 충분히 발휘했던 점이 인사추진위에서 높이 평가됐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임 회장이 취임사에서 “부당한 외부의 경영 간섭은 단호하게 대처해 계열사의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평이다.
또한 5대 금융지주로 까지 꼽히는 농협중앙회 금융사업이 수익을 못내고 있다는 점도 신임 회장에게는 해결 과제로 떠 넘겨진 상태다. 여기에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전산사고로 금융회사로서의 신뢰가 약해진 것도 풀어야할 숙제다. 이러한 여러 과제를 안고 경영비전을 밝힐 수밖에 없는 임 회장의 초임 행보는 그만큼 관심대상이다.

이번 임회장 선출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것도 문제다. 우선 관료출신 낙하산 인사라는 점은 임회장 활동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내부적인 구조개선과 이를 통해 철저한 독립 재활을 이뤄야 할 농협중앙회 금융사업에 관료출신을 재임용한 것은 ‘관치운용’으로 바람막이를 만들고, 정부의 통제아래 활동하는 등의 수세적인 방향을 암묵적으로 밝힌 처사라는 게 일반적 여론이다.

또한 금융사업의 성패와 책임 소지를 인사에서 찾고자 하는 ‘꼬리자르기 인사’도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농협법에 의거한 농협중앙회의 지배구조체제는 독자적 특성을 내세우는 금융지주회사와 부합될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에도, 중간 평가나 여론은 무시한 채 금융지주회장만 교체하는 폐단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밑빠진독 물붓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총사퇴로 공석중인 농협중앙회 내부 수뇌부 인선도, 최원병 회장을 위한 ‘보좌진’ 만들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부회장격인 전무이사에 김태영 전 신용대표, 농업경제대표에 이상욱 홍보상무, 상호금융대표에 김정식 기획조정본부장, 조합감사위원장엔 김사학 농협은행 리테일고객본부장 등의 임원 선출은 ‘그나물에 그밥’이란 혹평이다. 임원진이 총사퇴할 때 “농협 쇄신과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물러난다”는 이유였던 만큼, 합당한 인물 쇄신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게 주위의 여론이다.

이번 임원 선출은 내부 인사 승진 이외에 별다른 의미 부여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개편 이후 불거진 문제에 대한 책임소지를 무마하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권력유지를 위한 ‘꼬리자르기’라는 분석이다.
농협노조 관계자는 “당초 농협 사업구조개편이 여론수렴없이 진행된 모순투성이였던데다, 이를 주도한 최원병 회장의 책임이 분명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그때그때 책임전가가 가능한 밑에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흔들리거나 흔들어야 하는 사업구조”

지난 13일 기획재정부는 농협금융지주에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 주식 5천억원어치를 현물출자키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약속했던 2조원 현물출자에서 1조원규모로 줄인 것인데, 여기서 유동화가 어려운 비상장 주식 5천억어치만 출자하겠다고 확정한 것이다. KDB금융지주 주식의 현물출자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4조5천억원을 농협이 자체 발행한 채권으로 충당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이차보전(이자차액보전)만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유분없이 빡빡하게 살림을 시작해야 하고, 어쩌면 살림이 망할 수도 있는 형편이 된 것이다.

한 협동조합 전문가는 “농협중앙회와 정부는 가장 오래 버틸만하고 ‘돈 벌 수 있는’ 금융사업에 대한 걱정만 하고 있다”면서 “경종농업과 축산업, 농업상호금융 등 단위조합, 조합원인 농민 등과 직접 상관되는 협동조합의 신경세포를 복원해야 하는 대수술을 단행하면서 수술중에 혈액이 모자라고 수술비를 급조해야 하는 상황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농협 경제지주 백지화 위기’라는 언론보도는, 농협중앙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최근 일부 언론과 농협노조에 따르면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부문에 대한 사업구조개편 절차를 농협법에 따른 신경분리를 접고, 사업연합회로 묶어 중앙회 직할조직으로 남기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연구용역결과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 경제적 효율성을 따져봐도 사업연합회 형식의 운용이 적합하기 때문에 근시일내 새로운 조직 개편안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는 전언이다.

특히 출자총액 제한 등 농협법 제한 탓에 출자과정에서 법인세 등 1조3천억원 가량이 필요한 상황이고, 사업실익도 보장할 수 없다는 부연설명도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부까지 나서서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을 잃고 있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업경제와 농협금융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상호출자가 불가능해짐은 물론, 경제사업의 활성화 또한 보장할 수 없는 구조로 흐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MB정권 때 가락동 발언으로 촉발된 농협법 개정작업은 완성됐다고 보기보다는, 다시 한번 실패를 맛봤다고 판단하는 게 현실적인 시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뒷전인 경제사업… "금융놓고 경제 신경써라”

농협중앙회의 금융사업에 대한 관심은 거의 신경쇠약증으로 까지 표현될 만큼 경제사업은 뒷전이다. 임원 총사퇴라는 일련의 사태와 농협중앙회장의 거듭된 대국민사과 등은 모두 금융사업에서 비롯됐다. 농협중앙회 모든 임원진이 ‘올인’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듯 싶다.
최원병 회장의 금융사업에 대한 관심 정도는, 거듭된 금융지주회장 교체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금융회장이 세 번째 바뀌면서 나타난 농협금융의 지배구조 문제가 공통된 문제였다.
법적으로 허용된 농협중앙회의 잦은 간섭에, 인사문제까지 중앙회장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조직 특성은 최원병 회장의 금융사업에 대한 애착 정도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금융지주회장직은 협동조합이라는 공익성을 유지하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두 개의 멍에를 엎고 있기 때문에 더욱 버티기 힘겨웠으리란 예측이다.

금융사업에 대한 관심은 집착으로 표현됐다. 관치와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에도 불구, 최원병 회장의 금융지주회장 인선은 불도저란 평이다. 그만큼 하루빨리 조직을 안정화시키고 수익구조를 창출하는 게 급선무였다는 전언이다.

허나 농협금융지주의 올 1분기 순이익은 1천438억원. 이는 신한금융 4천800억, KB금융 4천100억, 하나금융 2천900억, 우리금융 2천100억 등과 비교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농협중앙회장의 조바심을 더욱 부추기는 지렛대 역할이었고,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내새끼’였다.

그동안 경제사업분야는 현상유지에 급급했다. 오히려 정부 주도의 경제사업 활성화 계획은 농민조합원의 실생활과 별개로, 유통구조개선이란 명분을 단 중앙회 수익사업에 불과했다는 비판이다. 투자 계획으로 청과물유통센터 건립이나 식품업체 인수 등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현재 농협중앙회가 직면한 경제사업 문제는, 각 사업분야를 자회사로 이관하면서 투자되는 자본금과 수익구조를 어떻게 셈하느냐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경제사업이란 것이 금융사업처럼 고정되고 계획된 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라는 것. 이쯤되면 농민조합원의 경제사업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남의 얘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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