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제 김매기는 이제 막바지로 치닫습니다. 넉넉잡아도 이틀이면 마무리가 될 것 같군요. 하지만 돌아서서 눈에 띄지 않고 며칠만 지나면 다시 또 한구석에선 삼대처럼 일어설 것입니다. 적어도 이 여름이 계속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가까운 터라 고맙게도 곡식들이 밭에 가득해져서 풀들은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김을 매다 말고 덥고 목이 메어 밭에서 나와 잠시 밭둑에 서있는 감나무 그늘에 들어앉습니다. 물도 몸의 열기를 조금 식혀서 먹어야지 그냥 벌컥벌컥 들이키면 좋지 않더군요. 목이 마렵다고 생각하자 저는 아까부터 자꾸만 옛날에 길어다 먹던 우리 동네 방죽샘물이 생각납니다.

열아홉 살에 시집간 큰누님의 삼베적삼 입은 그 조그마한 팔로도 스무 발이나 두레박줄이 들어간다는, 돌로 확을 짠 방죽 논 위에 있는 샘물 말입니다. 아침에 김매러 나가실 때 물동이 속에 두레박을 담아서 가져갔다가는 점심 먹으러 집에 올 땐 밭 아랫두리에 심어두었던 오이 몇 개 따서 샘물에 씻은 다음 두레박질로 남실남실하게 길어낸 물동이속에 동동 띠워오는 그 샘물! 그 물은 어찌나 차던지 집까지 이고 오는 동안 함석으로 만든 물동이 몸에는 물방울이 송알송알 맺혔습니다.
지금 냉장고 속에 든 물이 그때 그 샘물보다야 더 시리고 차겠지만 저는 이게 싫어서 자꾸만 옛날의 그 샘물이 생각납니다.

개구리참외도 생각나고 먹고 싶습니다. 당산나무 옆에 있는 담뱃집 사위는 해마다 당산나무 그늘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밭에 참외를 심고 원두막을 지었는데 사흘거리로, 아니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보리를 싸들고 참외를 사먹으러 다녔습니다. 그때는 죄다 겉이 푸르스름하면서도 노르께한 개구리 참외였습니다. 참외를 고를 땐 노르끄레한 색깔의 정도를 눈으로 먼저보고 고른 다음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는데, 그 향긋하고 다디단 냄새가 지금도 잊히질 않습니다. 칼로 깎을 새도 없이 참외를 덮어놓은 풀에 썩썩 문질러서 원두막 밑에 앉아 먹던 그 맛을 다시 한 번만 맛보고 싶어집니다. 굳이 황순원의 <소나기>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원두막을 찾아간 무더운 여름날엔 금세 검은 구름이 몰려와 한 줄금 소나기를 퍼붓기도 해서 잠시 어떤 감상에 젖기도 했습니다.

저녁이면 어머니와 누님은 함께 수제비를 끓이고 간혹 송편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즈음 빚는 송편은 모시와 삼을 많이 심는, 고개 넘어 십리 가까이 가야하는 이웃동네에서 뜯어온, 모싯잎을 넣고 빚은 송편입니다. 모싯잎은 쑥보다 더 연하고 새파라니 색이 우러나는데 일찍 심어거둔 개포리동부 콩을 소로 박은 송편은 꼭 초저녁 하늘 한중간에 박힌 칠석달을 닮았습니다.

수제비는 앞 개펄에 나가서 캐온 까아만 모시조개를 넣고 끓입니다. 이 모시조개는 단단한 펄에 한 뼘 정도의 깊이로 들어있어서 이들이 눈을 뜬 구멍을 알아야 파기가 쉬운데 저의 셋째 누님은 귀신같이 잘 찾아냈습니다. 밀가루 반죽 떼어 넣은 모시조개 장국에 뒤란 울타리에서 따낸 애호박 채 썰어 넣은 수제비는 늘 마당 한 귀퉁이 한데에 걸린 큼지막한 백철 솥에 끓였습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두리반에 둘러앉아 수제비를 먹을 때면 아버지는 부채질을 해주시고 가끔 일어나 모깃불이 벌벌 타지 않고 뭉근하게 연기를 내며 타도록 덜 마른 쑥대를 위에 올려놓기도 하셨습니다. 지붕위엔 어김없이 박꽃이 새하야니 피어나고 박각시 주락각시나방 붕붕 날던 때의 그 송편과 수제비가, 오늘은 왠지 못 견디게 생각이 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감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들이노라니 차가운 물 생각이 없어져 다시 콩밭에 들어가 김을 맵니다. 메주콩보다 늦되는 서리태는 저번에 순을 짚어준 탓에 가지마다 새순이 나오는데도 아직 꽃을 이루진 않아서 이리저리 포기사이를 헤집으며 김을 매기가 이물스럽습니다.
한참을 매다가 오금과 허리가 아파서 한 번씩 일어서면 뜨거운 햇볕이 살갗을 태워버릴 듯해도, 키가 훌쩍 자라고 가지가 벌어 고랑을 뒤 덮은 콩밭에 엎드리면 그런대로 견딜만해서 달팽이가 배밀이하듯이 풀을 뽑으며 조금씩 나아갑니다. 땀이 또 금세 온몸에서 샘솟듯이 솟아나서 옷이 몸에 착 달라붙습니다.
이때를 놓칠 새라 모기란 놈들이 극성입니다. 양말을 신었어도 어찌 그리 발등과 뒤꿈치를 물어대고 등허리를 쪼아대는지 풀매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모기를 견디는 것이 더 괴롭습니다. 땀이 흘러내려서 젖어있는 발목을 자꾸 흙 묻은 손으로 긁다가 짐승들의 모래샤워나 진흙목욕이 생각나서 발목에 흙을 일부러 묻혀보았습니다. 아하, 그랬더니 결과는 대성공! 모기가 발에는 덤비지 않는데 짐승이 아닌 한 온몸에야 흙을 묻힐 수는 없는 일, 혼자 씁쓰레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한 골 매고 또 한 골, 다시 아까처럼 그 샘물, 그 참외, 그 수제비와 송편들이 생각납니다. 올여름 땀을 많이 흘려서 몸이 허해졌는지 곡식 자라는 단정한 밭을 이윽히 쳐다보노라면 맨 옛날 생각만 나고 그럴 때마다 채워질 수도, 다스려질 수도 없는 허기가 찾아옵니다. 오늘이 칠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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