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세종대왕 때 사백여 결의 큰 고을

준량은 관사에 마주앉은 처의 수심에 가득찬 모습이 안쓰러웠다. 풍기 본가에서 단양군수 명을 전해 듣고 날아갈 듯 가벼웠던 걸음이 요새 왠지 무거운 걸음으로 집안을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혼인하고 과거급제하자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뻤으나 벼슬길로 나가고 부터는 초조와 불안으로 가슴에 병이 자리잡고 있었다. 신령현감으로 있을 때는 그리 두려움이 크지 않았었는데 단양군수로 와서는 늘 불안한 마음이 따라다녔다.

저 앞에 있는 큰 강을 넘나들어야 하고 한번 고을을 나서면 하룻밤 산속에 유숙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험준한 큰 산과 거친 물살이 넘실대는 여강의 하루도 편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로 가 있는 것이 어떻겠소?”
준량의 말에 움찔 놀라는 처를 보며 그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리 놀라지 마시오. 풍기에 있는 것이 편해 보여서 하는 말이오.”

처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준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며칠씩 나다니는 남편이 왠지 불안하고 관사에 들어와서도 반쯤 초죽음이 되어 쓰러져 자는 남편이 측은하다 못해 불쌍해 보였다.
조정에 십수 년 있을 때가 훨씬 좋은 세월이란 생각이 들자 준량에게 넌지시 말했다.
“풍기로 돌아가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준량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침이 되자 관청 앞에는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죽령을 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목상이 춘향으로 가는 날이었다.
관청의 역관 두 명이 호위하기로 했다. 관행이지만 죽령방의 초병이 그곳을 지키기 때문에 요즘은 안전한 길로 바뀌고 있었다.
역관에는 말이 여러 필 있었는데 청풍방에 두 필, 영춘방에 두 필, 죽령방에 두 필이 지역 방으로 나뉘어서 각자 임무를 띠고 나갔다.

죽령방은 노루만 나와 있었다. 역관의 집인 노루는 형 용두와 함께 역관의 임무를 하고 있었는데 간밤에는 아비의 병이 깊어 큰아들인 용두가 못 나온 것이었다.
군수인 준량이 체면상 죽령과 용두골까지 배웅하고 그곳에서 관솔들과 하루 유숙하기로 했다.
노루는 다른 역관과 같이 죽령방까지 호송하고 해지기 전에 용두골까지 오기로 했다. 어둠이 내리자 겨우 돌아온 노루일행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말은 도둑에게 빼앗기고 흠씬 두들겨맞아 반쯤 송장이 되어 내려왔다. 사연은 이랬다. 목상과 보부상 일행을 죽령고개까지 호송하고 얼마 내려오지 않아 도둑을 만나 말을 빼앗기고 간신이 죽령방을 찾아 올라가 그곳 초병의 도움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일은 관에 대한 도적들의 도전이었다. 노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상의 식솔들 같습니다. 단양에 며칠 묵었던 자들과 비슷합니다.”
목상. 그들이 누구인가. 당대 최고 거부이며 장안에 웬만한 재상들은 그들의 목재를 거저 얻어 사랑채 한 채 쯤은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권력과 권세는 마치 조정의 대신들보다 더 심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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