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태동지 준경묘·영경묘… 그리고 금강소나무숲

삼척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永慶墓)는 조선 왕실 역사를 시작한 곳으로 여겨질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주변의 금강소나무숲은 원시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나이도 100년이상이 되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숲이다.

또한 보전이 필요한 숲과 동시에 특히 조선 시대 건축 문화재를 보수를 할 때 필요한 금강소나무 목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도 같이 갖고 있다. 이러한 목재 공급기능은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을 위해 두 아름이 넘는 소나무를 20그루 벌채를 하여 공급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역사적, 생태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고, 문화재 보수용 목재 공급원 기능 등을 발휘하는 금강소나무숲의 생태적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왕실의 뿌리이자 최고의 묘(墓)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인 ‘준경묘(濬慶墓)’와 부인 평창 이씨의 묘인 ‘영경묘(永慶墓)’는 조선 왕실 최고의 묘다.
양무장군의 능묘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어머니인 ‘평창 이씨’의 능묘는 하사전리에 있어 준경묘와 4㎞ 떨어져 있다. 태조 이성계는 삼척군을 목조 이안사의 외향(外鄕)이며 선대 묘가 안치된 곳이라 하여 군(郡)에서 부(府)로 승격시키지만, 목조인 이안사가 함경도로 이주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묘를 찾지 못했다.

이에 태조를 비롯한 태종, 세종 등 역대 왕들이 묘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 세종 때 이르러 묘를 찾았으나, 묘의 진위를 놓고 논란을 겪었다.많은 우여곡절 끝에 고종때인 1895년 묘역을 정비하고 ‘준경과 영경’이라는 묘호를 내리고 묘지기·산지기를 두어 주변 숲을 보호·관리하기 시작했다.
현재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6.5ha 규모의 준경묘·영경묘 구역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524호로 지정되었고 문화재청 소유의 국유림으로 국가의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다.

■ 준경묘를 보호하고 있는 금강소나무숲

활기리 마을에서 준경묘는 2㎞정도로 걸어서 가기에 적합한데 금강소나무숲 입구 좌우로는 금강소나무가 가지를 마주 대고 자라고 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골짜기가 넓어지면서 뜰과 같은 넓은 공간이 나타나고 그 뒤로 준경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또 봉분의 좌우를 감싸고 도는 줄기와 뒷산 그리고 앞은 모두 금강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늘씬하고 곧게 자란 붉은 빛의 금강소나무가 근위병처럼 묘역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봉분 옆으로 난 조그만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금강소나무숲 속으로 들어서면 굵기가 60㎝가 넘는 금강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30m이상 크게 자라고 있는데 이렇게 큰 금강소나무들은 나이가 100〜150년이 되고 일부는 200년 정도로 나이가 많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송진 채취를 하여 줄기의 아래 부분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정이품송과 결혼한 준경묘 미인송(美人松)

준경묘로 들어서는 입구 오른쪽 비탈에 키가 크고 늘신한 금강소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데 이중에 한그루의 금강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로 선정이 된 ‘미인송’이다. 이 미인송은 산림과학원이 노쇠해가는 충북 보은군의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보존을 위한 배필 소나무로 찾아낸 금강소나무다. 이 나무는 산림과학원이 10여 년에 걸친 연구와 수형(樹形), 건강도 등을 고려해 간택한 나이 당시 95살, 키 32m, 가슴둘레 2.1m의 소나무이다.

쭉 뻗은 소나무는 조금의 뒤틀림도 없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데, 수피는 거북등 껍질같이 갈라졌고, 나뭇잎은 푸르고 건강한 전형적인 미인송(美人松)이다. 특히 이 미인송은 속리산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준경묘역에서 세계 최초의 소나무 전통혼례식을 가졌다. 2001년 5월 8일 주례 산림청장, 보은군수가 신랑 혼주, 삼척시장이 신부 혼주가 되어 결혼식이 거행되어 한국기네스북에 올랐다. 이래서 얻은 2세 소나무 200여 그루가 충북 보은에서 자라고 있다.

■ 숨은 듯 자리 잡은 영경묘와 금강소나무숲

이양무 장군의 부인 평창 이씨의 묘인 영경묘는 사전리 마을회관 앞 산길로 200m쯤 오르면 나타나는데 영경묘의 금강소나무숲은 입구에서 시작이 되어 홍살문까지는 소나무들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금강소나무의 틀을 갖춘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제각 주변의 금강소나무는 마치 제각을 보호하듯 자라고 있다.

제각에서 묘까지 가는 중간의 금강소나무는 경사가 심한 비탈에 자라서인지 줄기는 비교적 곧고 붉은 수피를 보이며 자라고 있지만 일부 소나무는 계곡쪽으로 기울며 자라는 모양을 보이고 있어 준경묘의 금강소나무와 외형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외형적으로 이런 차이가 나는 것 이외에는 나무의 자람이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 숭례문을 복원하는 준경묘의 금강소나무

준경묘의 금강소나무는 조선시대 건축물을 짓는데 많이 이용이 되어 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선 말기 경복궁 중건, 그리고 1961년 숭례문 중건에도 이용이 되었다. 이 때 가장 큰 소나무였던 ‘장수 솔’을 대들보로 사용하였다. 또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소실되고 복원이 시작이 되자 봉향회와 주민들이 3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20그루의 금강소나무를 벌채를 허락하여 2008년 12월 10일 준경묘에서 20그루가 벌채되었다.

소나무들의 수령은 100년에서 250여 년사이 굵기가 두아름이 되는 큰나무 였다. 시범적으로 베어진 금강소나무는 키 32m, 지름 74cm의 곧게 자란 110세였다.
특히 첫 번째 나무를 벌채 할 때는 “어명이오!”라고 고하고 벌채될 소나무의 영혼을 달래는 고유제, 산신제 등의 벌채의식을 지낸 후 벌목을 했다. ‘어명’을 고하는 것은 임금의 명에 따라 궁궐 재목으로 쓸 나무를 벤다는 것을 알려 나무를 달래주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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