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소금 훔치는 도적 ‘속수무책’


‘강선대’에 오른 황준량 “어떻게 관(官)을 믿고 장사하나…”


단양군수는 아침부터 봉수대 점검을 위해 떠났지만 외중방을 거쳐 봉수대 도착은 점심때를 지나고 있었다. 미리 기별을 받았는지 봉수병이 중턱까지 내려와 안내했다. 봉수대 위치는 참으로 좋았다.
저 멀리 영춘과 소백산, 서남쪽에 가촌과 더 멀리 문경 땅까지 눈에 들어왔다. 서쪽으로는 장외탄과 청풍 강가까지 확 틔여 있었다.
높은 산이 앞을 막았지만 낮은 봉수대는 사통팔달 산 사이사이로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과연 나라의 위급을 알리는 길이라 한 곳 나무랄 때 없는 좋은 장소였다.

봉수대에는 정원이 네 명이었고 봉수대 옆 산을 개간하여 그 녹으로 관리하면서 대대로 물려받고 있었다.
가족이 늘자 산을 조금씩 개간하여 이제는 십여 채의 그럴싸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젊은 군수가 오자 모두 모여 인사를 청했다.
준량이 그 중 듬직한 젊은이를 관병으로 뽑자 가족 마을을 이룬 봉수대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며 기뻐했다.

봉수대 마을이 생기고 처음이었다. 봉수대를 막 나오는데 저 멀리 강에서 도적과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봉수대장의 보고인 즉 작년에도 도적이 나와 소금 배를 훔쳤는데 올해는 훨씬 더 큰 싸움이 벌어진 것 같다고 했다.
준량은 기가 막혔다. 백주대낮에 소금 배를 훔치다니 소금은 나라에서 관리하는 귀중품이 아닌가.
준량이 급히 내려오는데 관병으로 뽑힌 젊은이가 따라 나섰다. 준량의 일행이 관청에 도착하니 관리들이 장외탄 사건을 보고했다.

소금 배가 두 척 수장되고 뱃사공 두 명과 우창 식솔 두 명 등 총 네 명이 물에 빠져 숨졌다는 보고였다.
준량은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다. 전날 초병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대수롭지 않게 두 명만 보냈었는데 이런 상황인지 알았다면 십여 명 보냈을 것을 후회했다.
그 때 형방이 들어왔다. 형방의 보고는 뱃사공 네 명과 우창 식솔 두 명이 죽었고 도적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시신은 더운 날이라 바로 매장했다고 했다. 충주 관찰사에 알리는 서신까지 써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준량은 이방과 형방을 데리고 장외 강선대에 올랐다.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잔해물들이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양지 쪽 언덕에는 무덤이 두어 개 생겨났고 그 앞에는 술잔이 놓여 있었다. 죽은 뱃사공과 우창 식솔은 가족이 없어 바로 장사지냈다는 덕배의 말에 준량은 불쾌했다.
고을원인 군수가 왔는데도 책임자인 도주는 나오지 않고 그 밑에 있는 사람만이 나와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죽령을 넘어 한양에 과거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다닐 때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 강선대에 오른 준량의 마음은 착잡하고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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