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진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연구사


돼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산과 풍요, 복과 부를 상징하는 동시에 사나움과 탐욕스러움 등 부정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동물이다. 동양 문화 속에서 12간지의 열두 번째 동물로 등장하는 돼지는 재물과 복을 상징한다. 신통력을 가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돼지가 나오는 꿈을 길몽으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이 먹고, 퉁퉁한 몸’의 특징을 지닌 탓에 탐욕스럽고 게으른 동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특징은 서양을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서 돼지는 풍요를 기원하는 신성한 동물로서, 농사와 관련된 주요 행사에 상징과 제물로 등장하지만 종교적이나 생태적, 미적 차원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동물 중 하나다. 이렇게 돼지가 인류의 문화 속에서 다양하면서도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돼지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의미다.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찍이 가축화된 돼지는 수많은 이야기와 속담, 지명 등에 등장하며 이슬람 문화권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즐겨먹는 육류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돼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 없고 저렴한 식재료로 취급하고 있다.

돼지의 품종은 세계적으로 100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약 30여 종이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양돈 산업에서 돼지는 단일품종 그 자체로 이용되기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교잡시켜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교잡형태는 랜드레이스종, 요크셔종 및 듀록종의 특성을 살린 3원 교잡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돼지고기의 대부분이 이 교잡방식에 의해 생산된 것이다. 일부 글로벌 종돈회사는 자체 교잡프로그램을 가지고 더 세부적인 교잡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중요한 회사의 전략으로 작용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양돈 산업은 규모화, 계열화를 통해 빠른 속도의 성장을 이어왔다. 우리나라 양돈 산업 생산액은 총 농업생산액의 약 11.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에 견주면 농업 총생산액이 2.5배 증가하는 동안 양돈생산액은 4.4배가 증가했다.

이와 같이 빠른 속도의 양적성장을 이어온 우리 양돈 산업은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서 단순히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이라는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형 돼지품종을 개발해 활용할 뿐만 아니라 저지방 부위 이용 확대 등을 통해 맛있는 돼지의 개발과 균형 잡힌 돼지고기 소비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축산물 위해요소중점관리제 도입과 항생제 사용절감 및 질병예방을 통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청정축산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생산성 제고 일변도에서 벗어나 동물복지와 환경을 생각하는 자연 순환의 개념을 도입해 양질의 돼지고기 생산과 생태계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한 첨단 생명공학기술과의 융?복합을 통한 생명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연구도 다각도로 수행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돼지의 친숙한 이미지를 활용해 문화와 결합하는 캐릭터 산업, 애완동물 산업과 더불어 관광관련 산업으로도 영역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를 꾀하고 있는 우리 양돈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환경에 맞는 씨돼지를 개발해 종자 주권을 확보하는 한편, 양돈 산업의 영역을 식품에서 환경, 문화, 관광 등으로 넓혀 새로운 가치사슬을 구성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우리 돼지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믿음과 농가소득을 동시에 확보해 나가야 한다. 양돈 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한돈을 찾을 수 있도록 안전과 건강을 더한 생산 및 유통체계를 조기에 확립하고, 품질 차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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