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값 인상…축산농가 ‘시름’ 깊어져

그 동안 쌀의 자립도에 자위하며 무덤덤히 지켜봐왔던 국제 곡물시장의 폭등에 국가 경제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사료용 곡물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농업계의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
최근 몇 년사이 국제 곡물시장은 기상이변에 따른 작황 부진과 미국과 유럽연합, 브라질 등을 중심으로 하는 바이오원료 개발에 따른 수요 증가가 큰 원인이다. 또한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폭발적인 소비증가도 한 몫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산이 수요를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20년 사이 곡물 재고율 ‘반토막’
원료곡이 되는 옥수수와 밀, 대두 등은 최근 10년 이래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하고 있다. 농경연의 ‘9월 세계 곡물가격 동향’에 따르면 밀(소맥)의 경우 캔사스상품거래소(KCBOT)에서 9월물 인도분이 지난달 14일 현재 톤당 296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68%, 한달 전과 비교해도 21%나 높은 것으로 지난 1996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옥수수와 대두 가격도 폭등세다. 같은 시점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9월물 옥수수와 대두는 각각 톤당 132달러, 346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대비 34.7%와 72.1%나 급등한 가격이다.
2005년 이후 계속되는 곡물 가격 강세는 옥수수 등 곡물을 이용한 바이오원료 개발의 본격화와 관련 있다.
또 자원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증가를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05년 에너지법을 제정해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농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옥수수 생산량의 18~20%를 에탄올 생산에 투입할 계획이다.
내년엔 그 비중이 25%까지 높아진다. 이에 따라 미국내 옥수수 가격은 지난 6개월 동안 70%나 급등했다.
또한 유럽연합도 2010년까지 휘발유 사용량의 7%를 바이오 연료로 확대할 방침이다. 중국과, 브라질, 캐나다 등도 2010년까지 바이오디젤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4륜구동 차량 한 대당 옥수수 200kg정도가 필요하다. 이는 한 사람이 일년간 먹을 양식이다.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한 곡물의 막대한 수요가 가격을 자극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이상 기후와 美 중부지역의 서리와 홍수 등으로 곡물 수급 여건은 더욱 나빠졌다. 지난 1986년 35%에 달했던 전 세계 곡물 재고량은 올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5%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밀가루식품 인상 ’도미노’
지난달 28일 CJ제일제당은 국내 밀가루 제품의 출고가격을 13~15% 인상했다. 20kg 기준으로 강력분은 종전 1만2천760원에서 1만4천410원, 중력분은 1만2천30원에서 1만3천640원으로 13%씩 인상했다.
주로 비스켓이나 튀김 등에 사용되는 박력분은 1만1천360원에서 1만3천60원으로 15%나 인상했다. 대상(주)도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전분가격을 10%이상 올렸다.

이에 따라 밀가루를 주요 원료로 하는 면류와 제과, 제빵 등의 ‘줄줄이’ 인상이 대기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CJ가 밀가루 가격을 7~10% 인상하자 관련식품의 가격이 덩달아 뛴 전례가 있다. 농심의 경우 같은 시기 상당수 라면값이 50~100원 인상됐다. 다른 식품업체들도 기존 제품의 용량을 줄이거나 리뉴얼 제품에 원가 인상분을 반영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격을 올렸다.

◆배합사료 25% 이상 ‘급등’
국제 곡물시장에서 급등한 옥수수 값은 축산농가들을 깊은 시름에 빠뜨리고 있다. 옥수수 대부분은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현재 주요 가축의 생산비에서 사료값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우(비육우) 27.1%, 돼지(비육돈) 45.6%, 젖소(우유)는 53.2%나 된다.
국내 사료업체 가운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애그리브랜드퓨리나코리아가 9월 초 품목별로 평균 4.5%를 인상했다. 대한제당도 지난달 10일부터 평균 5% 인상했다.

농협사료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도 1㎏당 20~24원씩, 품목별로 5~6%씩 가격을 올렸다. 배합사료 가격은 이미 올 들어서만 세 차례나 올랐다.
작년 11월 인상분까지 포함하면 1년도 안된 사이에 25% 이상 뛴 것이다. 현재 비육우 한우용 배합사료(25㎏)는 8천600원이다. 연초 6천880원에서 무려 1천720원이나 급등한 가격이다.

우리나라의 축산업은 배합사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국내 소 사육농가의 경우 전체 사료 중에서 배합사료의 비중이 67%를 차지한다. 이는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의 52%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국내 조사료 생산기반이 줄고 있는 현실에서 농가입장에서는 배합사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 곡물시장의 유동성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사료 작물의 생산기반 확충과 사료가격 안정기금의 출연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사료값이 40% 이상 인상됐다.
하지만 축산농가들의 실제 사료 구입비는 5~6%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와 달리 사료가격 안정기금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료가격안정기금은 정부와 생산자단체, 사료업체 등이 기금을 모아 인상분의 일정부분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 같이 사료값 인상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축산농가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가격안정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있다.
전국한우협회 장기선 부장은 “축산농가의 경우 생산비의 40~60%를 사료값이 차지하고 있다”며 “그러나 소, 돼지의 산지 가격에서는 사료값 인상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 부장은 “사료값이 오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생산농가가 떠 안아야 한다”며 “정부 기금을 출연해 사료값 인상분을 흡수하는 사료값 안정화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곡물 메이저의 ‘식량독점’
세계 곡물 시장은 이미 카길이나 ADM과 같은 메이저 곡물 회사들이 쥐락펴락 하고 있다. 카길과 ADM 두 회사의 점유율만 75%를 차지할 정도다. 이 밖에 콘아그라, 루이드레퓌스, 분게 등이 이른바 5대 곡물 메이저다. 옥수수의 경우 상위 3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1%가 넘는다. 콩과 밀은 각각 65%와 61%다.

카길은 우리나라 수입곡물의 60%를 독점하고 있다. 카길의 부사장 대니얼 암스태츠는 WTO협상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유무역이 확산되면서 곡물 메이저 업체의 식량독점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식품 시장을 장악하고 가격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역전된 2005년 이후의 상황은 가격 인상을 위한 좋은 빌미가 되고 있다.

◆식량안보를 지켜야
OECD(경제개발국기구)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곡물자립도는 29.3%다. 1천979만톤 가운데 1천399만톤을 수입한다. OECD 30개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쌀 523만톤을 제외하면 자립도는 5% 밑으로 줄어든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8일 옥수수 가격 급등에 대한 각국의 상황을 보도했다. 올해 초 멕시코에서는 옥수수 가격이 급등하면서 주식인 또르띠야의 가격이 올라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가격 상한선까지 설정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한 상태다. 이탈리아 상점들은 급등하는 파스타 가격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파키스탄은 음식 가격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밀 수출도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빵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농산물시장 개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국내 곡물시장이 국제시장의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경연 성명환 연구위원은 “세계 각국은 필요한 식량의 확보를 위해 수입국간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다가올 식량확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은 높은 국제 곡물가격에 대응해 국내 곡물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경쟁력은 농업여건과 농업기술에 좌우되는 만큼 균일한 품질관리, 안전성 제고, 브랜드화를 통해 외국산과의 차별화를 높여 우리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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