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량 일행, 생기동서 짐승 잡는 구덩이에 빠져

구덩이 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무관은 조금씩 정신이 들었지만 손발이 자유롭지 못했다. 장사는 무관이 흔들자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구덩이 속에는 여러 개의 나무 독침이 고약하게 박혀 있었다. 무관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멀뚱멀뚱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정신은 있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군수님이 걱정이었다. 밖에 나갔으면 당연히 자신들을 구해주어야 할텐데 어둠이 깔려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생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사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무관은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다행히도 칼이 만져졌다.
생기동에 장정들이 모였다. 형님이란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자들의 행색을 보니 사냥이나 약초꾼도 아니고 이곳을 정탐하려 온 자들이 분명해.”

무리의 우두머리 격인 영주가 촌장님이 오시면 일을 해결하자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던 무리들이 허름한 움막으로 몸을 숨겼다.
며칠 후, 보름이면 사냥꾼들이 산중으로 발을 들여놓을 것이다. 그들은 깊은 산중을 다니면서 진기한 약초나 짐승, 짐승가죽 등을 가져가거나 산중 무리들이 장만해 놓은 물건들을 가져갔다.

그리고 산중무리들이 부탁한 물건이나 귀중품을 구해주거나 바꾸어 가는 것으로 쏠쏠히 소득을 얻곤 했다.
그러나 그들간에도 꼭 지켜야하는 원칙이 있었다. 절대로 산중 무리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자 않는 것이었다. 산중 무리들은 그런 사냥꾼들과 거래를 했고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매우 경계했으며 때로는 살생도 저질러왔다.

산중의 무리는 씨족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어떠한 사정으로 산중으로 도망쳐 오면 일단 친인척을 확인하고 받아주었다.
그리고 서열에 따라 움막을 짓고 살았다. 촌장의 위치는 확고하였다. 집안의 어른으로서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끈끈한 혈육으로 뭉친 그들 사회는 질서가 있고 자기들만의 법이 있으며 촌장의 명령은 어떠한 경우도 지키며 실행하였다. 노루도 형의 말대로 서쪽으로 와서 이곳 촌장의 친척임을 확인 받고는 받아들여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직도 기름이 채 마르지도 않은 웅담을 만져보던 영주는 용철이를 시켜서 조금 높이 걸라고 하였다. 지난 번 함정에 빠져 있는 곰을 가까스로 건져 올려 잡은 것이다.
산중의 사냥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흔히 하는 활로 쏘는 방법과 짐승이 다니는 길에 함정을 파는 것이다.

구덩이 속에 그들만이 알고 있는 약초를 발라 꽂아두면 함정에 빠진 짐승은 그 꼬챙이에 찔려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눈에 잘 띄는 천을 끊어 매달아 나무에 달아 놓으면 짐승이 빠지면서 그 천이 공중에 휘날리게 되어 그것을 보고 달려와서 잡곤 하였다.
그런데 짐승이 아니고 사람들이 빠져있으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촌장이 오면 결정하려고 준량만 묶어서 바위벽에 가두고 구덩이 속의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준량은 몸이 가렵고 부어오르더니 눈도 침침하고 따갑다. 가늘게 뜬 눈에 손의 부기가 보인다. 애써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목이 타자 조금 남은 조롱박 속의 물을 마저 먹었다. 밤이 깊어지자 날씨가 제법 시원해졌다. 준량은 찬바람에 몸을 떨며 잠을 청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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