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겨울에 제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는 어리굴젓이 있습니다. 다른 음식들과는 달리 이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짜지 않고 새콤한 그 맛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젓갈도 좋아하긴 하지만 재료를 구하고 만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것은 형편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어리굴젓은 바다에 나가 한참만 굴을 따오면 까서 담을 수 있고, 또 이삼일이면 삭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담그는 방법도 참 간단합니다.

깐 굴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 다음에 고춧가루를 넣고 잘 익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서 따뜻한 아랫목에 하루나 하루 한나절정도 놔두면 되니까요. 그러면 굴에서 나온 젓 산과 고춧가루 때문에 새콤매콤한 맛을 바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에 한 번 붙잡히면 끼니마다 한 종지씩 먹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설사 다른 맛있는 새 반찬이 상에 올라온다 해도 이것 한두 번 집어먹지 않으면 왠지 허전합니다. 다른 반찬과 밥을 배불리 먹고도 마지막에 이 맛으로 입안에 여운을 남기고 싶어서 밥통으로 또 밥 한 숟갈을 푸러 갑니다. 심지어 어쩌다 밖에서 밥을 먹은 날에는 집에 돌아와 밥 두어 숟갈에 어리굴젓으로 입안의 텁텁함을 지웁니다. 그 인공조미료 맛을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제 먹성이 꽤나 까다롭다 여겨서 여간 어디 가서 밥 한 끼 얻어먹기 힘들겠다 하시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소탈합니다. 남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느끼고 그 과정을 함께 나누는 게 어찌 보면 제 취미의 한 부분이기도 해서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를 않습니다. 단, 육류는 조금 덜 먹지만서도요. 이 어리굴젓처럼 음식도 자기 손으로 하면 더 맛이 있고 애정이 느껴지나 봅니다. 그래서 끝가지 그것만으로도 질리지가 않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저희 집에서 이 굴젓은 저만 먹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에게 맛있게 담가졌으니 맛보라고, 그 맛을 알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테니 꼭 한번만 집어보라고 사정하다시피 해도 고개를 비틉니다. 아내는 흐물흐물한 그것이 싫은 모양이고 얘들은 아직 풋것들이라 그 맛을 모르나 봅니다. 하여 한번 담가놓으면 언제까지나 저만 입맛 다시며 먹으니 다행이랄까요.

작년에는 어리굴젓을 겨우내 먹었던 것 같습니다. 초겨울부터 사월 말 무렵까지 굴이 영그는 철이 됐다 싶으면 굴젓을 담습니다. 추워서 바다에 굴 따러 가기 싫으면 잠깐 어시장에 나가 한망을 사다 깝니다. 언제나 깐 꿀이 비싸지 까지 않은 것은 비싸지 않습니다. 그걸 사다가 큰 것은 아궁이 불에 구워서 식구들을 먹이고 한 중발을 남겨서 국을 끓여 먹게 하고 나면 나머지는 젓을 담가 죄다 제몫이 되는 겁니다. 젓이 담긴 통이 아랫목쯤에 놓이는 밤이면 이게 잘 익고 있나 보려고 자다가 일어날 때마다 떠들어보곤 합니다. 술항아리와는 달라서 결코 실패할 일이 없는데도 자꾸 맛을 보면서 그 익어가는 정도를 짐작합니다. 그 모습을 누가 보면 혹 제가 식탐이 지나친 게 아닌가 싫어할 수도 있을 겁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같이 한 이불 덮는 제 아내가 그러는 걸 밉지 않게 보니 무슨 상관이랍니까.

제가 좋아하는 젓갈 중에 이와 비슷한 게 또 한 가지 있는데 바로 꼴뚜기로 담근 무젓입니다. 초겨울이 되면 이곳 서해는 물매기, 뱅어와 함께 꼴뚜기가 제철로써 귀하신 대접을 받습니다. 물매기는 술꾼들이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고 뱅어와 꼴뚜기 회 또한 어금버금하게 사랑받는 것인데 꼴뚜기는 거기에 한 가지 더해서 삼삼하게 무젓을 담가 먹을 수 있으므로 몸값이 더 나갑니다. 꼴뚜기는 너무 큰 것은 미끄러운 기운이 있어서 데쳐 먹는 게 좋고, 애기들 새끼손가락만한 것들은 손바닥에 올려놓고 잘 익은 무채김치 얹어서 주먹 쌈을 해야 제대로 먹는 것이고, 무젓을 담는 것은 중간 크기가 좋습니다. 이것은 깨끗이 씻어서 파 마늘 고춧가루 통깨, 단 것 조금,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서 그날 먹어도 좋고 이삼일 놔뒀다가 먹으면 더욱 좋은 것이지요. 주의할 것은 절대 짜면 맛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꼴뚜기 낯짝 본지가 삼년도 더 되었습니다. 웬일인지 때가 되어도 도통 그림자도 볼 수 없습니다. 이 바다에서 나오는 꼴뚜기로 무젓 한번 담가 먹는 게 소원이 되다시피 해서 어업 하는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꼴뚜기 낯을 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와도 안 드린다”고 손을 내젓습니다 그려. 새삼스레 고장 난 바다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로 하니 그립고, 생각하니 병이 날듯해서 방금도 저는 어리굴젓으로 그걸 대신 하느라 밥통 열고 그냥 손으로 밥 한번 집어 입에 넣고 정지로 가서 굴젓 한 저분 집어 함께 꼭꼭 씹습니다. 저 참 이상한 사람인가요?

십이월은 참으로 괴로운 달이어서 이런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더욱 견디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정리 못해 괴롭다고 해서 십이월이 가지 않는 것도 새달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련만 사람으로 태어나서 노릇하기에 참 힘이 듭니다. 바깥세상은 또 철도파업이다 뭐다 해서 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끓고 있지요. 그렇다고 섣불리 자기 의견을 드러내기도 어려워 무색무취의 글에도 자괴감이 없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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