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한주일 내내 그야말로 질리도록 풍물 굿만 치며 살았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깊어지면 시작하는 풍물 굿 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풍물패 단원들은 이 교육을 통해서 솜씨를 더 갈고 닦으며, 일반 참가자들은 굿을 처음 배울 수 있습니다. 잘하나 못하나 이번에도 제가 강사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라 저는 특별하게 새로 가르칠 것이 없다 생각하는데, 익숙하게 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누군가 앞에 서서 해 보여줘야 실력이 는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렇게 최근 이삼년 동안은 새로 오는 교육생 없이 단원들끼리만 연습해오다시피 했는데 올해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일고여덟 명까지 참석해서 교육이 우지끈우지끈 활기를 띠었습니다. 특히 여성이 몇 분 새로 오셔서 열심히 배우시니 참 좋았습니다. 이분들은 교육이 끝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풍물패 단원이 되어 같이 활동을 하실 테니 말이지요.

이번에는 교육장소도 저희가 임대해서 쓰는 학교강당이 아니라 마을회관이었습니다. 어업을 주로 하는 큰 마을인데 바다 일을 나다니면서 교육받기가 수월하도록 장소를 좀 옮겨서 해 줄 수 없겠느냐 부탁이 있어서였습니다. 이를테면 교육지원을 해달란 셈이지요. 그래서 그 마을엔 장소만 빌려주게 했을 뿐 난방비니 먹을 것 따위의 모든 경비는 저희 풍물패가 마련해놓은 교육예산을 썼습니다. 그래도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 전통문화를 배우고 익히겠다는데,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무얼 하려야 할 수가 없는 시골마을임을 생각하면은 새로 배우겠다는 그 분들을 업어드리기라도 해야지요.

교육은 오전 열시부터 오후 네시까지입니다. 저는 아침 아홉시 반에 집을 나서 그 마을회관에 도착하면 아홉시 오십분, 그러면 먼저 온 마을 분들이 미리 보일러를 틀어놓고 커피 한잔씩 먹고 시작할 수 있게 주전자에 물을 끓여놓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면 굿을 칩니다. 날을 거듭할수록 배운 굿 가락의 가짓수가 늘어나서 오전에는 항상 전날 배운 굿을 복습합니다. 그러나 말이 복습이지 늘 새 잡이입니다. 나이를 먹은 분들이기에 쉽게 잊어먹어서입니다. 그래도 모여서 악기를 치면 잘 치든 못 치든, 틀리건 맞건 그것으로써 흥이 나고 신명이 돋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굿을 치면 막걸리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굿 배우는 게 남 보기에 수월한 듯해도 그게 보통 힘든 게 아니지요. 시끄러워서 처음에는 귀가 열리지 않는 데다 어느 정도 가락을 알기까지는 앉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일하고 말지 굿 못 치겠다 합니다. 어깨며 목이며 굳을 대로 굳어져서 쥐가 날 지경이지요. 그러므로 짬짬이 술 먹고 풀어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조강사로 함께 굿을 가르치는 제 안식구가 눈치를 주든 말든 ‘새참 먹을 시간이 많이도 지났다’ 너스레를 떨면서 열한시 무렵에 그날 마실 술의 첫잔을 시작합니다. 앉아서 배우는 사람보다도 서서 몇 시간을 뛰어야 하는 저한테 술이 더 필요한데 술로 버티는 그 심정을 몰라주고 아내는 늘 타박이지요. 하지만 집사람 눈치 덕에 한잔이라도 덜먹게 되어선지 날마다 쓰러지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술이 한 순배 돌면 저나 배우는 분들이나 몸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정신도 맑아져서(!) 더 열심히 굿을 칩니다.

올해는 참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눈이 적은 것 같습니다. 예년 같으면 이 지역에 큰 눈이 와도 몇 바탕 왔습니다. 특히나 풍물 교육을 하는 때는 늘 설을 스무날쯤 앞에 두고 열흘에서 보름정도 하므로 그 기간에 틀림없이 눈이 오곤 했습니다. 술 한 잔씩 돌려먹고 한참 신이 나서 굿을 치다 보면 어느새 교실 창밖으로 단풍잎 같은 송이눈이 내리고 급기야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곤 했습니다. 후끈후끈 달아오른 조개탄 난로를 가운데 두고 앉아 창밖의 눈을 바라보고 굿을 치노라면 아, 이것이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구나 하는 게 느껴져서 모두들 마음이 눈처럼 깨끗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발자국눈 두어 번만 왔습니다. 하지만 밤으론 어찌나 추운지 수돗가의 물이 쩡쩡 얼어붙습니다.

저는 스무 살 안쪽에 굿을 배웠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굿을 치다가 풀어놓고 술을 드시는 때를 노려서 조금씩 쳐보느라 꼬맹이 때는 지청구도 많이 받았는데 일 년 남짓 시골을 떠나 수도꼭지를 빨고 내려오던 어느 해의 섣달 그믐날,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밟고 이십 리 산길을 걸어 마을 불빛이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저 멀리 바람결을 타고 들리던, 동네 고샅을 돌던 아련한 굿 소리에 그만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굿을 배워서 우리 동네의 상쇠가 되고 굿을 가르치느라 이젠 지겨워하기도 합니다.

올해는 단 일주일이지만 닷새째부터는 피로가 쌓이고 술에 절어서 몸이 말이 아니게 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던 아침운동도 거르게 되고 이 닦을 땐 속이 울렁거립니다. 그래도 어제 아침은 마지막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아내가 담아준 밥 한 그릇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미친 듯 굿만 치며 보내다가 오늘 정신 차려서 연필을 쥐었습니다. 이제는 설 쇨 준비를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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