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유붕자원방래. 옛말 그대로 친구가 멀리서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멀리서 온 친구라니, 요즈음 세상에서야 한사람은 서울에 살고 한사람은 전라도나 경상도 촌구석에서 살아야 멀리 떨어져 산다고 할 수 있겠지만 차로 두어 시간이면 올 수 있는 지방도시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입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혹은 2년에 한번 정도 찾아오니 그것이 아주 멀게 느껴집니다. 이 친구도 집은 본래 시골이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집을 떠나서부터 선생 노릇 한다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 동안 고향의 부모도 다 돌아가시고 일가친척도 흩어져 방학이 되어도 딱히 찾을 곳이 마땅찮은 사람입니다. 이곳에는 저 말고도 그의 친구가 여럿 있습니다. 그가 이곳 읍에 있는 학교에서도 꽤 오랫동안 훈장질을 했는데 그때 맘먹기로는 아예 이곳을 평생 눌러 살 곳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러던 차에 전교조 일로 해직이 되고 또 오랫동안 복직투쟁과 교육운동을 하는 동안 친구는 동지가 되고, 동지는 식구처럼 되었지요. 저도 그 중 한 사람인데 저와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또 달리 같이 시를 쓰는 사이로 만났습니다.

이 친구가 작년 가을에 아주 오랜만에 시집을 한 권 냈습니다. 첫 시집을 내고 거의 20년만이니 과작도 그런 과작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시를 많이 쓰고 시집을 여러 권 낸다하여 유명한 시인이라 할 수 없고 평생에 걸쳐 단 한권의 시집을 낸다하여 유명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게 시인인데, 20년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어떤 이는 그를 일러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 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시집을 받아보고 정말 기쁘고 반가워서 마치 제일이라도 되는 듯 탄성을 질렀습니다. 시가 잘 써지지 않거나 시집이 나오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시집을 받아보는 건 한편으론 샘이 나기도 하는 일인데 그의 것은 전혀 그런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시집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고 해야 옳겠지요. 친구의 시적 지향이나 성취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너무도 궁금했으니까요. 물론 시집이 없어도 그의 성향을 모르는바 아니나 시로써 드러나는 것은 또 다른 것이어서 그 오묘한 감정의 결과 갈피를 저는 가야금 연주처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버릇대로 그가 보내온 시집의 봉투를 언제까지나 뜯지 않았습니다. 책상 앞에 두고 눈으로만 바라보며 저 속에 뭐가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키우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만날 신문이나 잡지 나부랭이로 제 마음을 허기지고 번잡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 한편 한편을 충분히 즐길 마음이 되면 그때 조용히 봉투를 엽니다. 가볍게 주고받는 편지도 예외가 아니어서 저는 어떤 때는 거의 한달 가까이 만지작거리기도 해봤습니다. 편지를 뜯는 순간 설렘과 궁금증은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어쨌거나, 그의 시집을 보고나서 저는 한 장의 편지를 했습니다. 술 한말 해놓고 연락할 테니 그때 보자고. 그런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도록 술을 담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누가 찹쌀 한말을 주어서 술을 담갔습니다. 담그고 나서 열흘, 술이 잘 익었다 흡족해 하며 하루이틀 사이에 연락하려 했는데 어찌 알고 그 친구가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려.

통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요? 그러나 사람이 통한 게 아니라 술이 통한 것처럼 2박3일을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이 났습니다. 놀랍게도 시 이야기는 눈곱자기만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술에 대한 찬양과 경배와 그 경배대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이해이고 공감이고 놀이인양 마음 놓고 마셔댔습니다. 여기에는 근처에 사는, 그 친구에게는 저만큼이나 친한 친구 한 사람이 함께 했는데, 그러니까 이 술꾼 셋이서 마치 연애라도 하듯 하더란 말입니다. 온몸에 술이 오르면 걸어서 바로 옆에 있는 겨울바닷가의 그 모래백사장을 거닐고, 아니면 카세트의 볼륨을 올릴 대로 올려놓고 저희 동네 근처의 경치 좋은 곳을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시장하다고 생각되면 셋이 부엌에 들어가 술꾼들만의 요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참 우스운 것이 한 가지 있는데요, 셋이 술 마시다가 누구 한사람 화장실이라도 간다고 자리를 비우게 되면 나머지 둘이서 꼭 그 사람 흉을 보며 낄낄댄다는 것이지요. 나갔던 사람이 들어와서 뭔 일로 자기 빼놓고 웃느냐 다그치면 놀리듯이 더 그러합니다. 그러다가 또 누군가 부엌에라도 잠깐 나가서 안주를 가져올라치면 나머지 둘은 또 영락없이 그 짓입니다. 아마도 여자들이 그걸 보았다면 참으로 같잖아 웃었을 터입니다.

이런 식의 놀음을 한지가 20년도 더 되나 봅니다. 처음엔 지금보다는 좀 고상하게 글 쓰는 이야기만 하고 놀았습니다. 좋다고 생각되는 남의 글은 죄다 꺼내놓고 읊어대고 한 잔, 노래하고 한 잔, 서로 쓴 것도 쥐어뜯거나 추어주며 한 잔.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그럴 때마다 늘 제 안식구는 친정나들이를 하게 되더라고요. 이번에도 어찌 그리 용케도 맞아 떨어지게 됐는지 아내가 집을 비운사이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희가 무슨 흔적을 남기고 놀아서 집에 돌아온 아내를 군일 시키게 하냐 하면 그건 사내가 할일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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