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봄 가뭄이 너무 심합니다. 아니, 겨울부터 계속된 가뭄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겨울에 보통 두세 번은 큰 눈이 오는데 지난겨울은 큰 눈은커녕 발자국 눈만 서너 번 내렸을 뿐입니다. 동해안은 사정이 다릅니다만, 추위마저 예년만 못해서 농사짓는 분들은 조금 걱정들을 합니다. 눈이 많이 오고 그 눈 녹은 물이 꽝꽝 얼어붙어야 병충해가 덜하다는데 그게 없는 겨울이었으니까요. 날이 따뜻하면 눈 대신 비라도 내려야 하는데 비도 오지 않았습니다. 온다는 일기예보야 자주 있었지만 5밀리미터 미만이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한두 방울이거나 흐리기만 할뿐 시원스런 비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양파밭 마늘밭에 물주는 게 요즈음 농사짓는 분들의 일인 듯합니다. 그것도 지하관정이 있는 동네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겨우내 냇물이 말라있고 저수지의 물은 내려 보내는 때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웃거름을 해놨어도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으니 거름발이 나질 않습니다. 거름발은커녕 작물들의 끝이 노랗게 말라가고 있는 실정이지요. 오지도 않을 놈의 비 예보가 엊그제 또 있었습니다. 그것도 5밀리미터 미만이라네요. 하지만 그 예보가 제발 덕분에 좀 틀려서 50밀리미터가 오면 좀 좋을까요. 해서 저도 그 전날 저녁 늦게까지 마늘밭에 거름을 주었습니다. 마늘 세 두둑인데 뭔 밤일이냐고요? 다름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사는 아무개가 구들방을 하나 놔달라고 해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왔거든요. 거름을 뿌려야 하니 내일 한나절은 구들방 일을 쉬자 하고 왔는데 비가 아침부터 내리면 비 맞고 거름을 뿌리게 될 것 같아서 그냥 무리인줄 알면서 어스레한 저녁에 일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겠고 내일 아침은 빗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따뜻한 아랫목을 파고들며 늦잠을 즐f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종일 일한 탓에, 거기다 막걸리도 몇 잔 걸친 탓에 몹시 힘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긴 오려고 그러는지 꾸무적한 바람마저 불어대서 포대 거름을 뿌리는데 최대한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순간 예미럴, 하면서 삼태기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까짓 마늘 세 두둑에서 내가 무슨 상덕을 보겠다고 밤늦게까지 이 지랄인가 하는 마음이 더럭더럭 생겨났습니다. 그러다가 흠칫, 꼭 제가 무슨 불경한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서 놀라고 죄송했습니다. 이까짓 마늘 세 두둑이라니, 그래도 이걸 지어야 일년간 양념을 하고 서운한 사람들에게 마늘접이나마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땅과 하늘의 수고로 농사가 되는 것을 어리석은 인간이 모르고 오직 제 수고만 수고인양 알아서 욕지기를 뱉어냈으니 이들이 알면 농사를 온전히 못되게 하시겠지요. 그래,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이 있지, 마음을 다독이고 어찌어찌 겨우 거름주기를 끝냈습니다.

새벽 잠자리에서 들리던 그 달콤한 빗소리는 꿈이었습니다. 속옷 바람으로 문을 열고 나와 마당에서서 하늘을 쳐다보니 별만 초롱 했습니다. 조금 있던 비구름을 어젯밤 바람이 어디론가 다 몰고 가버리고 그 자리에 또 중국발 미세먼지가 날아오는지 공기만 탁했습니다. 틀리기만 바랐던 일기예보가 저의 바람과는 백팔십도 다르게 틀려버렸습니다. 비도 오지 않을 것을 가지고 밤에 미련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일 한 가지는 끝냈으니 그 미련도 미련만은 아닌 셈입니다. 방에 들어와 다시 잠자리에 누워 저는 속으로 빌었습니다. 비여, 비여! 저로 하여금 제발 당신의 그 후덕함과 자애로움을 찬미하고 경배하게 해주소서.

구들일도 끝내주지 못한 상황에서 그 이튿날은 종일 굿을 쳐야했습니다. 조류독감이 퍼지는 것을 막는다는 핑계로 사람 많이 모이는 행사를 군에서는 줄곧 막아왔는데 그것이 정월 대보름에 하는 줄다리기와 당산제도에도 간섭이 미쳐서 포기하거나 미뤄둔 동네가 많았습니다. 닭을 키우지도 않는 시골구석까지 알뜰히 행정이 간섭을 해대니 생각있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았는데 날이 너무 가무니까 기우제 겸 당산제를 해야 한대서 삼일절이자 토요일을 택한 것입니다. 사실 용줄을 꼬아 암수를 결합시키는 행위 자체가 비 오기를 바라는 주술이어서 정월대보름의 줄다리기는 풍년을 비는 기우제인 것인데 그것을 하지 않았으니 비가 올 턱이 없지요. 적어도 시골의 나이 드신 어른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입니다. 저희 굿패도 꼭 해야 할 동네에서 줄다리기를 하지 않아 섭섭하던 것이라 마음껏 굿을 쳐 드렸습니다. 저 위에서 봤을 때 아래세상이 비 때문에 저렇게 소란스럽구나 하고 판단을 해야 비를 내려주실 것이기에 경건하고 조용하기보다는 불경하더라도 최대한 시끄러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곧 잔치인 것이니 먹고 마시고 춤추고 싸우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렇게 굿을 치면서 저도 술을 나수 먹었던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천만 다행스럽게 집에까지는 멀쩡하게 오고 그 뒤부터는 소위 필름이 끊겨서 저녁도 먹지 못하고 쓰러져 잤다는군요. 아침에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데 아내가 나와서는 어젯밤에 누가 왔다갔는지는 기억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래 속으로 꿈속에서 비님이 왔다 간 것은 알지, 하며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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