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방주의 주변에 쌀쌀한 냉기가 돌다

동방 방주 엄홍을 따르는 추종 세력은 한밤이 지나는 것도 잊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도담 강가에 백여 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다행히 이탈자는 없어  보였다. 아침을 간단히 끝낸 일행은 각자 끌고 온 나룻배나 말, 나귀 등을 끌고   하방리로 향했다. 해지기 전에 도착을 해야 우창에 등록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서류 정리 및 개인 상거래 내용을 총 마무리 지어야 했다. 동방 방주, 엄홍이 제일 앞에 큰 배에 올라탔다.

 관행대로 각 지역 방주 서기가 이삼일 전 미리 가서 보부상을 등록하면 보수상들은 자기 이름을 확인하고 서명한 다음 바로 회의에 참석하면 되었다. 그리고 간단한 설명을 듣고 도주를 뽑으면 일정이 끝나는 것이었다. 단지 도주 후보가 두 명이면 보부상이 자기편을 종이에 써서 내면 되는데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지라 이번 도방회의는 매우 어수선했다.

 동방 방주는 일찍 우창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극진한 대접과 함께 우창 도주가 자신을 상석으로 앉히었는데 이번에는 동방 방주의 주변에는 쌀쌀한 냉기가 몰아쳤다.
동방 방주를 따르는 무리는 고작 동방 방주 관할 정선 북부와 평창, 동해뿐이었다. 하진포구 임시 막사에는 낯선 무리들이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핏 보아도 보부상이 아닌 무사 같았다.

 동방 방주는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 우창의 낌새를 알아차린 다른 지역의 보부상과 짐꾼들은 우창이 마련한 막사로 모여들었다. 감시당하는 동방의 막사에 비해  우창 쪽의 막사는 술과 고기가 넘쳐 났다. 그에 반해 동방 방주는 이미 돈이 바닥난 상태였다.

예상대로라면 정선의 재산을 모두 처분한 돈으로 보부상들이 외상물품 대금을 지불해도 돈이 남아야했지만 이번에 우창에서 적용하는 이자가 너무 높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상당수의 동방을 지지하는 보부상들이 외상물품을 갚을 수가 없어 그들의 대납을 해 주다보니 더 이상 지원을 할 여유 자금도 없었다.

 각지에서 온 보부상의 처지도 딱했다. 우창을 지지하는 쪽은 어지간하면 우창에서 외상을 탕감해 주거나 인정하는 듯 넘어갔지만 동방을 지지하는 쪽은 우창의 모든 외상을 정리해야 했다. 물품 값을 갚지 못한 동방 추종자는 우창이 고용한 무사들의 참담한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해동 쪽과 경상도 쪽은 왜적이 출몰하고부터는 수입이 떨어지고 장사의 폭도 좁아졌다. 자연히 불만이 쌓이고 자신들에게 별다른 이익을 주지 못하는 우창 도주 대신 다른 도주로 바꿔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동방 방주를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죽령을 넘다 산적을 만나 몇 명이 죽고 나서부터, 그것이 우창의 협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보부상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우창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창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보부상에게 값싼 이자로 물품 값을 계산하자 열이면 열, 우창으로 몰리게 된 것이었다. 우창 도주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동방 방주의 숨통을 완전히 조여 놓은 것이었다.
글=조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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