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



세상이 온통 푸른빛 밖에 없는 듯합니다. 방문 열고 마루에 나서면 앞산의 저 푸른빛이 사람도 온통 빨아들여서 물들이는 것 같습니다. 아기 손바닥 같은 이파리들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흔들면 보석처럼 푸른빛이 쏟아져 반짝입니다. 푸른빛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4월은 생명의 달이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푸른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보리밭 앞에서면 왠지 까닭모를 슬픔 같은 게 밀려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해마다 오는 봄과는 달리 오지 못할 것들에 대한 회한 때문이 아닐는지요.

파아란 색은 슬픈 색이다
꽃다운 것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갔어도
봐라 봄빛은 저렇게
저렇게 싯푸러 오지 않느냐

귓가에 떠도는 너의 목소리
소리쳐
소리쳐 부르면
대답 없는 몸짓만 넘실대면서                    
-보리밭-

새삼스럽게 몇 년 전에 펴낸 시집을 다시 꺼내서 펼쳐봅니다. 떠나보내지 않아야 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가슴 저 한구석에 깊디깊은 슬픔을 묻고 사는 사람들은 생명의 전령사인 사월, 출렁이는 보리밭 앞에 서면 어떤 환청과 환영에 사로잡힙니다.

눈을 감지 않아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모습들, 그러나 더는 어찌 해볼 수 없도록 다가가면 멀어져서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으로 가득 찬 이 사월의 푸른색은 역설적이게도 슬픕니다.

다시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번 글에서도 잠깐 썼지만 이번일로 하여 일상적인 많은 일들이 멈추거나 바뀌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데에 대한 충격과 분노가 널리 퍼져서 사람들에게는 무기력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간단한 야유회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집들이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까지도 줄줄이 취소하는 분위기이니 가장 활발해야할 달에 할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지요. 사람살이라는 게 일과 놀이가 적당하게 섞여야 제대로 돌아가는 것인데 어느 한쪽이 무너져 내리니 나머지 한쪽도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 같은 사람도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방에 들어오면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를 찾고 반복되는 이야기일지라도 그 앞에만 붙잡혀 있게 됩니다. 사람이 셋만 모여도 온통 ‘세월호’ 참사 이야기뿐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고스란히 나라와 국민의 격이 드러난 것에 이르면 스스로 부끄러워져서 입들을 다물게 됩니다.

나라와 국민의 격이라고 이야기하고 나니 사월은 원래 그런 달인가 싶게끔 4.19와 5.18이 떠오릅니다. 생명 대 반생명은 시대에 따라 모양만 다르게 나타날 뿐 본질은 같아서 결국 정치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지금도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생명을 잃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갑니다만 격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권력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위공직에 있는 아무개라는 사람이 희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앞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려했다는 소식에 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국민들은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을 모으려하고 형편이 닿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참 정반대로 면면하게 이어져 오는 전통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어렵사리 마음을 내서 작년 가을이후로 쓰지 않았던 예초기를 꺼내다가 기름을 넣고 시동을 걸어봅니다. 시동 줄을 몇 번 세게 잡아당기자 이내 부르릉 시동이 걸립니다. 안심입니다. 생명 없는 무기물인 기계도 부르릉 하고 생명을 얻어 돌아가는 것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시동을 건 김에 장화신고 헬멧 쓰고 집 주변의 풀을 깎습니다.

풀이 연하여서 칼날이 스치자마자 부드럽게 베어 넘겨집니다. 이 풀들은 뿌리가 뽑히지 않은 이상 며칠 후면 다시 새파랗게 자라날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감히 베어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귀찮은 것이 어느 순간 고마운 것으로 변합니다. 세월호의 참사는 우리에게 어떤 경계를 허물어 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슬픔과 고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매 순간순간 칼로 베어지고 끊어지는 고통만이 현재형으로 언제까지 남아있을 것인데. 치유하지 못할 것을 치유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어리석은 제 삼자의 언어일 뿐이 아닐는지요.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