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통령이 한국을 다녀갔다. 오바마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에 애도를 표하며 일면 정중동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을 거쳐 온 그의 방한 목적은 뚜렷해 보였다. 주한미군사령부를 찾아 자국 군인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으나 중국 견제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보다는 ‘자국 안보’를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한국시장의 완전개방 요구도 그렇다. 미국대통령은 나라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에서 대놓고 완전개방을 요구하지는 못했으나 실무그룹 회의로 공을 넘기고 가는 것으로 방한 목적을 달성했다. 비유하자면, ‘초상집’에 들러 세간을 빼앗아가지는 못하고 나중에 가져가겠다는 ‘차압딱지’를 붙이고 간 셈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오바마 방한 전부터 설레발을 쳤다. 그들은 자국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는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쌀 시장, 쇠고기 시장의 완전개방을 압박했다. 예컨대 ‘단계’에 대한 거론이다. 자국 쇠고기에 대해 ‘한국의 소비자 신뢰가 개선될 때까지의 과도적 조치’라는 수입제한조치를 해제할 단계라고 한다든가, 쌀 관세화유예조치가 2014년에 종료하는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다음 단계를 논의함으로써 자국 기업들이 한국시장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하는 문구는 우리를 치욕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오바마가 방한해서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을 미끼삼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완전이행’을 요구하는 등 주권독립국인 한국을 농단하고 겁박한 것은 매우 불쾌하고 분통터질 일이다. 우리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정부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그리 했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차압딱지라는 것이 참으로 가당찮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지막지한 겁박도 겁박이려니와 한국정부의 무능과 친미 사대주의, 통상전략의 부재 탓에 미국이 ‘빚 아닌 빚’을 독촉하도록 조장하고 있으니 더 통탄할 일이다. 그간 우리 정부의 협상태도가 얼마나 물렀으면 이 지경이 됐을까 싶다. 관세화가 낫다거나 필리핀 사례를 호도해 여론몰이에 나선 정부를 곱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쇠고기도, 쌀도 어느 것 하나 우리 목소리를 내고 관철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반대급부가 있다 해도 쌀만 하겠는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특히 쌀 시장은 무너져서도, 무너뜨려서도 안 되는 철옹성이라는 시각과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식량주권 수호를 바라는 일만오천 배의 국민염원이 바로 철옹성의 다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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