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교육에 투자해 세계 농업 ‘허브’도전

  
 
  
 
유럽농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고 있어 유럽농업에 대한 경계심도 표출된다.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여기며 농업보호에 힘을 쏟아왔다.
유럽 국가들은 한편으로 농산물시장 개방과 세계화에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을 대책 수립에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유럽 단일시장 형성에 따른 역내 소비자중심의 마케팅과 농산물유통 활성화, 산학협력과 실용교육을 통한 선진농업기술의 급속한 확산, 환경과 미래를 고려한 농업지원정책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진, 각 도농업기술원 기획연구담당자와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의 농촌현장을 찾았다.
유럽농업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몇 가지 키워드로 3회에 걸쳐 현장탐방기를 게재한다. [편집자의 말]

“Small country, Great partner.” 네덜란드 농업 영상홍보에 여러 차례 반복되는 ‘표어’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작은 나라, 훌륭한 동업자’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에는 네덜란드인들의 농업에 자부심이 나타난다. 국토의 4분의 1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아 늪 같은 땅이 많은 데다 극히 적은 일조량 등 열악한 기후조건에도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농업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 강점 살리는 농업…선택과 집중
네덜란드의 시설농업은 세계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이들이 5대 시설농업작물로 꼽고 있는 야채와 과일, 꽃, 구근, 정원수는 네덜란드의 수출농업을 주도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파프리카 재배기술 수준은 우리 농업인들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이다.

열악한 농업환경을 딛고 시설농업 강국으로 발돋움한 데는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는 이들의 탁월한 능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이다. 일조량이 적은 만큼 유리온실 설치로 돌파구를 찾되 소비자 밀집지역, 수출이 용이한 해안 쪽에 집중함으로써 그 효과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네덜란드는 일찌감치 농산품 포장규격을 통일해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고 유리온실 시설도 표준모델을 개발함으로써 재배농가는 물론 전후방 산업체까지 생산비를 절감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 같은 저변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농업진흥정책도 한몫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평범한 전략이 성공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가 유럽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화훼산업은 ‘선택과 집중’의 좋은 예가 된다.

네덜란드는 유리온실 재배기술로 생산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갖췄지만 유통부문에 집중함으로써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전세계 꽃의 집산지로 총면적이 181헥타르에 달하는 알스메어(Aalsmeer) 꽃 경매장이 네덜란드에 있는 까닭을 짐작케 한다.

◇ 교육기관이 농업발전의 허브

네덜란드 농업의 강점은 여러 곳에서 포착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실용교육과 산학협력 체계가 확립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네덜란드 주요 지역별로 다섯 곳에 위치한 전문교육기관 피티시 플러스(PTC+, Practical Training Centre plus)는 사실상 네덜란드 농업발전의 주역이라고 할만하다. 농업인과 어린 이, 학생을 대상으로 농업실습교육을 진행함으로써 표준농업기술을 보급하고 후계인력까지 양성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곳이다.

특히 자동차, 기계, 전기 등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실용교육이 이뤄짐에 따라 각계 기술이 농업으로 집약될 수 있다는 점과 참여업체들이 자연스레 스폰서(후원자)가 된다는 점에서 피티시 플러스는 네덜란드 농업의 허브(hub)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피티시 플러스의 전신인 ‘피티시’는 1955년에 국가기관으로 설립돼 실업계 전문교육을 전담해왔으며 40년만인 1995년에 민영화되면서 ‘플러스’를 붙여 불렀으며 1998년부터는 정부지원이 전혀 없이 운영되는 사설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피티시 플러스는 여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과정이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철저히 실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생과 농업인의 트랙터 운행연습 코스가 있는가 하면 농기계 제작업체에서 의뢰한 성능시험, 온실 쿨링(냉장) 시스템 가동 실습이나 전기회로 설계, 농산물 포장 실습과 포장디자인 과정 등 개괄적인 교육과정보다는 구체적인 세부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시설농업 피티시 플러스’의 아드리안(Adrian vanden Bosch) 교수는 “피티시 플러스는 농업실습생이나 실습에 참여하는 농업인들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교육을 수료한 농업인들이 기관 대의원이 되고 농업인, 업체, 조합원 등으로 이뤄진 자문기구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드리안 교수는 실습장 곳곳을 소개하면서 ‘표준화’를 역설했다. 아드리안 교수는 “피티시 플러스의 교육장은 농가의 시설과 똑같다”며 “네덜란드는 이미 포장규격이 전국단위로 통일됐으며 온실이나 포장기계도 규모만 다를 뿐 일정한 표준체계를 확립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드리안 교수는 “생산농가의 시설이나 포장이 표준화되지 않으면 유통이나 수출이 어렵고 그 비용도 절감할 수 없다”며 ‘전 농가의 스탠다드 시스템’과 ‘지역이 아닌 국가별 표준체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영화하긴 했으나 피티시 플러스는 지금까지도 정부나 기업, 학교와의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정(커리큘럼)이나 예산 운용에서 상호협력 시스템이 확고히 자리잡은 덕분이라는 자체평가도 있다.

피티시 플러스의 벤 (Van vanden Blink) 홍보매니저는 “회사나 학교에서 이만한 시스템과 교육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교육자체가 형식적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에 농업분야는 물론 산업 전 분야에서 위탁교육을 신청하고 있다”며 이 기관이 학교, 기업 등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실용기술의 허브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전문성으로 세계농업의 허브 ‘도전’

벤 씨는 이어 “피티시 플러스는 네덜란드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요에 따른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지의 위탁교육과 현지컨설팅을 소개했다.

벤 씨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파프리카 교육참가자들이 많고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의 농업인들 참여도 늘고 있는 추세. 특히 농업개발이 더딘 아프리카의 연수생은 꾸준히 증가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피티시 플러스 같은 농업전문교육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벤 씨는 “피티시 플러스는 1995년에 민영화하면서 운영방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1997년까지 3년간은 운영예산의 절반(half service)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았으나 1998년부터는 외부지원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예산규모나 부문별 수입비중은 밝히길 꺼렸지만 벤 씨는 “연간 예산의 절반 정도는 학생 위탁교육, 절반 정도는 해외연수 유치나 현지 컨설팅 등을 통해 충당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기관의 전문성을 살려 해외에서 컨설팅사업을 적극 벌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는 피티시 플러스가 네덜란드 내 농업발전의 허브 기능을 하는 것은 물론 세계 농업의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Small country, Great partner.’라는 이들의 구호가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다.
실제로 피티시 플러스는 해외 농업컨설팅사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벤 씨에 따르면 최근 인도의 한 주에서는 8천명 수용이 가능한 에이치티시(HTC, Horticultural Training Centre)를 설립해 파인애플 농가들을 중심으로 고수익 농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피티시 플러스가 인도 주정부와 공동으로 6년간 준비한 사업이다. 피티스 플러스 측이 현지 트레이닝 센터 교육담당자들을 양성하고 교육시설과 온실 설치 전반에 걸쳐 컨설팅을 수행했다. 벤 씨는 에이치티시가 현지 주정부 관내 약 5천만 명의 주요경제기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에서도 두 나라가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있는 가운데 피티시 플러스는 올해 우간다 정부와 200만 유로(약 26억원) 상당의 용역계약을 통해 교육기관 설립과 장미 온실재배 컨설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티시 플러스가 2년간 120명의 장미재배 매니저(우간다인)를 양성하고 이들을 우간다 정부가 고용하는 방식으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 피티스 플러스 측은 이를 위해 2년간의 커리큘럼을 작성해 우간다 정부에 제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피티시 플러스는 농업전문교육을 이미 ‘비즈니스’로 다루고 있으며 그 강점을 살려 해외 컨설팅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과의 박정운 박사는 “직접적인 경제효과와 함께 이후 네덜란드의 농업모델이 세계로 전파될 경우 간접적인 효과까지 따지면 이들의 한 발 앞선 ‘교육 비즈니스’ 마인드는 배울 만하다”고 평가했다.

◇ 산학협력이 세계적 ‘푸드밸리’ 조성

철저한 현장중심의 교육과 함께 네덜란드를 농업강국의 반열에 올리는 요인 중 하나가 긴밀한 산학협력체계라는 지적이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의 김행란 박사는 “우리도 정부와 연구기관, 학계, 산업체간 협력사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네덜란드의 산학협력체계에서 배울 게 있다”며 네덜란드 와게닝겐(Wageningen) 지역의 ‘푸드밸리(food valley)’를 소개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푸드밸리’는 적극적인 정부지원을 토대로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식품 클러스터로 성장한 곳으로 와게닝겐대학과 연구개발(R&D)기관, 식품관련기업들이 집중 포진해 있다.

와게닝겐대학의 쿠텐 교수는 “대학 연구소와 기업체가 공동연구를 진행한 것이 ‘푸드밸리’의 시작이 됐다”며 “처음에 기업체가 연간 1천만 유로를 내놓고 필요한 연구를 수행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쿠텐 교수에 따르면 현재 ‘푸드밸리’에는 50∼60여 관련업체가 들어와 있으며 네슬레, 하인즈 등 세계 유수의 식품업체들은 이곳에 지사나 연구소를 두고 있다. 쿠텐 교수는 “최근에는 6개 종자회사가 합작해 설립한 ‘키진(Keygene)’이라는 업체가 ‘푸드밸리’에서 성공적인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며 “‘푸드밸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한 곳”이고 덧붙였다.

한편 김행란 박사는 이태리의 푸드 클러스터, 칠레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 클러스터, 덴마크와 스웨덴 양국에 분포한 오레슨드 클러스터 등을 성공적인 모델로 소개하면서도 와게닝겐의 ‘푸드밸리’를 으뜸으로 꼽았다.
김 박사는 “인프라구축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연구소와 글로벌 기업간 협력체계나 클러스터 내 연계 전담기관 운영 등이 성공요인”이라며 “최근에는 식품안전, 식품영양, 식습관, 제약·의료분야와의 제휴 등으로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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