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시인의
감성편지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이 독이 되어서 아침에 그만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밥상 차려내온 안식구 얼굴 보기 미안하여 밥 한 그릇을 억지로 비웠지만 설거지 끝낸 아내가 조카네 일하러 나가자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한숨 푸욱 자고나면 좋겠는데, 속이 부대끼는 통에 잠도 잘 오지 않더군요. 어찌어찌 겨우 얕은 잠 한숨을 자고 시계를 보니 열 시, 마당에 해놓은 나락못자리판에 물을 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햇빛이 더워서인지 몸이 좋지 않아서인지 물 몇 초롱 주는데 어지럼증이 나면서 이마에 진땀이 났습니다. 머리도 빠개질 듯 아프고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또 방에 기다시피 들어가 눕고 말았습니다.

그놈의 지방선거가 화근입니다. 아니, 지방선거 때문이 아니라 투표의 결과 때문입니다. 개표상황을 지켜보느라 선거 날은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새벽까지 티브이 앞에 올빼미처럼 앉아 있었는데, 결과가 바라는 대로 나왔다면야 밤새운 것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만 정반대 상황이 되고 마니 몸에 이상이 와버린 것입니다. 결과를 보고 기분 언짢아할 사람들 모아서 또 다시 다음날 밤새며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이 지경이지는 않겠지만 어찌 그게 맘대로 됩니까? 당선인들의 앞날을 한껏 비틀어 축하하면서 연거푸 건배를 했으니, 그러는 우리가 되려 저주의 술을 마신 셈이지요.

선거결과로만 놓고 보면 세상 사람들은 저만큼 앞서서 멀리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우리만이 옳다고 그 길을 고집합니다. 다수결의 결정이 다 옳은 것 일수야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편협한 자기세계에만 갇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서 자책의 마음 또한 없었다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선거 때마다 왜곡되는 정치판의 저 신물 나는 ‘구시대스러움’이라니! 지역구도, 기성과 신인, 권모술수와 책략, 족벌 금권 지연 따위. 우리가 언제 제대로 된 선거 한번 치러봤나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 술 탓만도 아니라 여겨집니다. 하긴 이긴 쪽에서야 제대로 된 선거였다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열 번 싸워 열 번 이기는 승률 백 퍼센트의 짓거리라 할 때, 큰 선거나 작은 선거나 결국 근대사회가 만들어낸 있는 자들만의 제도일 뿐 달리 무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열두 시께까지 누워 있다가 머리가 조금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진 듯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기는 시간이 어중간하여 시원하게 몸도 좀 씻을 겸해서 막걸리 엎질러진 제 옷 몇 가지 챙겨 샘가에 앉았습니다. 가삿일이 다 그렇습니다만, 특히 청소 끝내고 마지막으로 빨랫거리 모아서 빨래를 하는 일은 조금 특별한 것 같습니다. 쓸고 닦는 것도 때를 빼는 일이지만 빨래는 때를 빼는 일의 상징처럼 느껴져서 빨래를 하다보면 마음의 찌꺼기까지 빠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옛 여인네들의 빨래 방망이질에 어떤 이야기를 끌어다 붙이기도 하는데, 세제가 좋은 지금이야 방망이질까지 필요치 않지요.

특히 남자는 여자에 비해 손아귀 힘이 세니까 비누질 한 번 하고 빨랫돌에 힘껏 몇 번 주무르기만 해도 청바지 따위도 금세 빨아집니다. 둥둥 걷어 부친 발에 가끔 시원한 물을 끼얹어가며 그렇게 빨래를 하고나니 이제 몸이 완전히 정상이 된 듯합니다. 빨래 줄에 빨래를 단정하게 널고 나니 눈부신 유월의 햇빛에 집안이 오히려 고즈넉합니다. 어느 때인가도 썼습니다만 전혀 아무소리도 없는 것은 적막이 아닙니다. 텅 비어버린 공간에 간간하게 새소리가 있어야 그게 적막인 것입니다. 이 바쁜 철에 웬 적막이냐고요?

어느 한순간 바쁜 속에서도 그것은 찾아오기 마련이어서, 마당에 펼쳐진 아직 심지 않은 푸른 모판도 오늘은 아무 바쁨도 잊은 듯 순간 적막을 보탭니다. 제가 이렇다고 느끼는 것은 울안과 집 주변에 있는 오디나무 몇 그루와 보리수며 앵두나무 몇 그루가 누구 따먹을 이 없는 속에 까맣고 새빨갛게 익어있는 게 아프게 눈에 들어와서입니다.

식구 많은 옛날이야 과일나무도 부족했지만 식구 적은 지금은 되려 이런 것들이 넘쳐납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주전부리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러 과일 나무를 갖춰 심어놨지만 붉게 익어 땅에 쏟아져도 누구하나 옆에 붙어 손대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지째 꺾어 가곤 하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잠깐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과일나무들을 내년에는 저 한길까지도 한 이삼십 그루 심어볼까 하는 것 말이지요. 그래서 임자 없음을, 따 가는 게 주인임을, 삼삼오오 혹은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길을 가다가 그 과일나무 아래서 즐겁게 과일을 따며 사랑하도록 하자는 것 말이지요. 그러면 그 것의 진정한 임자는 누구일까요?

내년에 꼭 그래야겠습니다. 투표결과가 술을 부르고, 술이 후회를 부르고, 후회가 빨래를 부르고, 빨래가 적막을 부르고, 그 적막이 이런 즐거운 상상을 불렀고, 이제 그 적막도 물러갔습니다. 점심 먹고 저녁때부터는 다시 활기차게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결국 선거라는 정치행위가 또 한 번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규정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치적인 일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사는 면에서 당선된 군의원의 선거 홍보물을 버리려고 마루에 내 놨다가 다시 챙겨서 방안에 던져둡니다. 그에게 앞으로 귀찮은 일이 조금은 더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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