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이름 한번 ‘너구리’ 하네요. 그럴듯한 것도 많을 텐데 너구리라니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어쨌거나 이 너구리란 놈 덕분에 장마 전선이 북상하여 비가 쓸 만큼 왔으니 한편은 고맙기도 합니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가니 그것도 안심이구요. 그동안 자라지 못하던 밭풀이 비 한 번에 무섭게 자라는 것은 또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서 윗날만 조금 빠끔하다 싶으면 땅이 질어서 신발에 흙이 달라붙든 말든 풀부터 뽑아냅니다. 가문 때에는 뿌리가  완강하기만 하더니 비가 와서 땅이 물러지니 힘들이지 않아도 쑥쑥 잘 뽑아집니다. 대저 무엇이든 한 가지 좋으면 한 가지는 나쁜 것이라, 그 쑥쑥 잘 뽑아지는 것도 한 재미이기는 하지만 또 뽑아 놓은 풀은 여간해서 죽지 않아 탈입니다. 그래도 풀과의 전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장마 틈탄 저 기세를 어쨌든 꺾어놔야 합니다.

큰 풀도 큰 풀이지만 콩 심은 밭에 콩은 하나도 없고 바늘 끝 하나 꽂을 데 없도록 바랭이가 올라오는 것도 탈입니다. 콩이 왜 없냐면, 그새 떡잎만 남기고 고라니란 놈이 다 뜯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어느 정도 자랐을 때는 순 집어주는 것이니까 시덥잖은데, 이건 떡잎만 남겼으니 정말 싹수가 노란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저 풀들! 안식구는 날마다 호미 들고 그것들 득득 긁어버리느라고 밭에 가서 삽니다요 그려. 저는 이렇게 멀찍이 물러앉아서 빈 땅들을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쥐어짜고요. 그러면서 고라니에게 적개심만 부득부득 키우고 있습니다. 그 뛰는 모습은 날렵하고 아름답지만 이 산속에서 제 놈의 사는 형편이 무에 그리 어렵다고 남의 것을 축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그 숫자가 늘어났다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마는, 그렇다면 잡아 죽이는 수밖에 없겠는데 이건 또 제 능력 밖의 일이니 오직 마음속에서만 그놈의 목덜미를 조이고 가슴에 화살을 쏩니다.

그러고 보면 고추라는 작물은 그런 짐승의 피해가 없으니 좋은 것인데 이것은 또 탄저병 역병 무름병 담배나방이 탈이지요. 양파는 월동 작물이라 병은 좀 덜하고 짐승들이 뜯지 않지만 이 또한 뿌리흑썩음병이 아주 치명적입니다. 대체 안심하고 심을 수 있는, 그리고 잘 팔수 있는 작물이 유기농가에게 몇 품목이나 될까요? 그래서 가만히 주변 유기농가를 보면 벼농사 위주에다 양파는 논에다만 심고, 단 호박과 옥수수 김장 절임배추 한겨울의 냉이나 시금치가 주작물이 될 수밖에 없더군요. 저는 이도 저도 아닌, 저렇게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꼭 그런 농사만 지어 헛고생을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마당 앞에 판 조그마한, 정말 조그마한 연못에 지금 한창 연꽃이 피어 온 마당이 환한 것은 그 금액이 얼 마만큼인지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제 마음이 이렇게 기쁜 것도요. 꽃대가 처음에 셋, 나중에 세 개 올라왔는데 날마다 꽃봉오리를 부풀리다가, 저는 비바람 속에서 피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며칠을 마음 조이며 그 터질 듯한 긴장을 지켜봤는데, 오늘 아침 해가 비치기 직전부터 준비를 하던 연꽃이 해가 비침과 동시에 봉오리를 열었습니다. 세 개의 연화 좌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무엇인가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정경입니다. 해가 열 시쯤으로 치닫고 날이 더워지자 이제 꽃은 다시 봉오리를 피기 전처럼 오므렸는데 황금빛 꽃술 안에 어떤 날짐승이 갇혀 고행중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다른 이야기 하나 하렵니다. 삼일 전에 저희 개가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습니다. 개고기 좋아하는 저에게 가져다 잡아먹으라고 누가 준 개인데 제가 못 보는 사이에 새끼를 뱄던 것입니다. 날은 점점 뜨거워지는데 배가 자꾸 불러오니 그것 참 걱정되더군요. 더위 견디지 못하는 어미도 걱정이지만 작으나 많으나 나중에 새끼들 돌아다니며 똥 싸고 헤집을 일 생각하면 눈앞이 노랗더라고요. 해서 새끼 밴 채로 팔아 버릴까 하다가 애 밴 며느리 집나가라는 격이겠다 싶어서 생각을 고쳐먹었는데, 자고 나니 글쎄 해산을 해놨더군요. 아침밥 줄 때가 됐는데도 밥 달라는 소리가 없어 짐작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개집에 가서 보니 알토란같은 새끼를 한 번에 여섯이나, 사람이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낳아놓고 품에 끌어안고 젖을 먹이겠지요. 그 어미의 마음이 짐승의 그것을 넘어 또 다른 짐승인 저에게까지 다가와 저는 그만 극진한 개 해산수발 어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랴부랴 개집을 좀 더 큰 데로 옮겨주고 마트에 나가 북어포 두 마리를 사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미역국 끓이는 심정으로 그걸 끓여서 첫국밥을 준비했지요. 이 대목에서 제 마음은 정말 경건해졌습니다.

저는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낳는 동안 위로 셋은 보지 못한고 아들놈만, 그것도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보았습니다. 그 황망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하늘에 높이 뜬 해를 쳐다보며 벌거벗겨져버린 인간의 가장 무력한 모습을 저에게서 확인했는데 딸에게 못 다한 마음의 끌텅이 개에게 옮겨질 줄이야, 이건 정말 몰랐습니다. 이 더위에 산고 든 저의 개 이야기, 연꽃은 그래서 피는 것일까요? 그러나 어떤 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세상 되어가는 이치는 저처럼 무식한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조물주가 잠시잠깐, 슬쩍, 어떤 것을 열어보여 주실 때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있겠거니 생각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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