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참 좋은 명절이지요. 물론 추석 명절도 좋고 설 명절도 좋지만 그런 큰 명절은 아무래도 걱정도 함께 따르는 것이라 제 생각엔 백중이 더 허물없게 느껴집니다. 백중은 불가에서는 여름안거가 끝나는 날이어서 나름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 의미 있는 명절이라는데, 마찬가지로 농사꾼에게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있다 여겨집니다. 힘든 여름농사가 거의 다 끝나서 일손을 쉬게 되는 때니까요.

백중이 돌아오면 동네마다 모정잔치가 벌어집니다. 들에 나가 일을 하느라고 낮 동안에나 잠시 사람이 어른거리는 모정은 이날부터 당분간은 많이 북적입니다. 닭을 삶던 개를 잡던 고기를 장만하고 지짐이 부치느라 기름 냄새를 풍김은 물론 새 김치를 담그고 술을 마련합니다. 장원례라 해서 옛날엔 농사 잘 지은집의 머슴을 소등에 태우고 풍악을 앞세워 마을을 돌다가 그 주인집으로 가서 하루 종일 먹고 놀았답니다. 호미씻이라고 해서(여기서는 물에 호미를 씻는다는 얘기가 아니고 김매는 일을 마쳤다는 뜻의) 술멕이와 풍악이 역시 함께 따랐고요.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을의 공동기금을 쓰거나 잘사는 집의 곡간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 사람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 하룻동안 지난여름의 수고를 달래면 되는 것입니다.

비와 바람이 고르고 알맞았던 옛날엔 저저금의 농사도 거의 다 비슷비슷해서 풍년이 들건 흉년이 들건 곡식 자라는 품세나 거둠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물론 농사 많이 짓는 사람 적게 지어서 소작을 하는, 사람 기름진 땅 메마른 땅이야 왜 구분이 없으리요마는 티 나게 게으른 사람도 술주정뱅이도 도둑도 없던 시절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어서 지금의 모습을 비춰보게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시방 삼 년째 백중잔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백중이란 게 아무래도 농사짓는 사람들, 적어도 농경문화가 한 사회의 가치를 규범 짓고 있던 때의  의례인지라 지금의 저희 동네처럼 관광지가 다 된 곳에서는 지켜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농사를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 농사라는 게 이제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져서 보기조차 민망합니다. 농사꾼 역시 5~6명에 불과 하고요. 그러니 술맥이를 하자는 말이 제 입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얼마 전까지 이어져오던 풍습인지라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올해는 어찌할 란지 기대도 하지 않고 물어볼 뿐입니다.

백중에 기대어 이런 말하는 게 참 남 우세스럽습니다만 동네가 한번 변하기 시작하자 정신이 없습니다. 농사짓고 고기 잡던 시절이 지나가고 개발의 바람이 밀려와 해수욕장이 생기고 관광지가 되자 사람들은 네 편 내편으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드러나게 이익이 서로 갈리는 개발사업이 있어서도 아닌 것을 생각하면 그저 남 잘사는 꼴을 배 아파해서 만들어낸 편들인 것입니다. 마을의 회관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던 향약의 그 좋은 말들 앞에 서면 그만 얼굴이 무색스러워집니다. 옛날처럼 호랭이 무서워서 동네 이루고 사는 게 아닐 진데 위함은 어디가고 헐뜯음만 있습니다. 남을 위함이 결국 자기를 위함이라는 것은 옛 성현의 말일뿐 지금은 그 반대여야 살아남는 세상이라는 듯이 말하고 행동합니다. 저도 이 쯤 해서 고만 말하렵니다.

백중날 저는 제 논이 있는 마을에 갔습니다. 농어촌 후계자 자금을 받아서 산 논의 원금 상환이 작년에 마무리 되어서 저는 그 홀가분한 마음을 기념 삼는 셈으로 작년부터 그 동네 백중잔치에 술 짝이나마 가져다 드렸는데 한번 시작하면 그런 일은 멈출 수 없는 것이라 내 동네인양 여기고 이번에도 술을 사들고 찾아갔습니다. 어쩌면 사실 제 동네보다도 더 제 마음의 정서가 잘 맞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정월 대보름날, 우리 동네서는 오래전부터 하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는 곳이라서 굿패와 함께 굿을 쳐드리는 것도 그 동네요. 논에 간다는 핑계로 우리 동네에 내려가는 것보다도 더 자주 들락이는 게 그 동네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낯익고 반갑습니다. 그 동네는 들이 커서 저처럼 그곳에 땅 사서 농사짓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건만 제 아는바 이런 시골의 정서와는 많이 동 떨어진 사람들인지라 이런 잔치에 얼굴 들이미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사라도 하러오는 사람은 군의원이거나 면장 조합장이 다입니다. 그러니 그 동네 사람들이 혹 내가 나중 군 의원 조합장이라도 나오려고 술 사들고 찾아오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도 하겠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치한 제 짐작일 뿐 찾아가면 모정에 앉아 술을 자시는 어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다시피 반갑게 손을 내밀며 저를 반겨해 주십니다. 모정아래 나무그늘에는 여자노인 분들이 다 나와 앉아계시고요. 친정 동네에 간 듯 저는 일일이 가까이 안부를 묻고 멀리 눈인사를 건냅니다.

그리고는 술 한 잔씩을 받고 또 술 한 잔씩을 권합니다. 그게 무려 10여잔이 넘어가고 훨씬 더 합니다. 그러다가 올 백중엔 이런 소리도 들었습니다. 가장 좌장격인 어른에게 술을 드렸더니 받으시면서 ‘자넨 이제 우리 동네 사람이여, 집에 있으면서도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디 이렇게 먼디서까장 와주니 참 고맙네 그려.’ 그러고 보니 그 동네잔치도 참 많이 빈자리가 보여 헤성헤성 거립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