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00년 역사 간직한 국내 최대 왕릉군

동구릉(東九陵)은 ‘도성의 동쪽에 있는 아홉 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태조부터 문조까지 7명의 왕과 10명의 비가 안장된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군이다. 능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1855년(철종 6년)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잘 보존된 숲의 면적이 191ha에 달하고 숲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사계절 산림욕과 산책을 함께 할 수 있다.



■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군 - 동구릉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이 42기이고, 원이 13기, 묘가 64기다.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그리고 왕비가 되지 못한 왕의 친어머니의 무덤, 묘는 폐위된 왕과 그 외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이다. 그 중 동구릉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9개의 능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최대의 왕릉군으로 경기도 구리시에 소재하고 있다. 서울 동쪽의 구리시와의 경계에 위치하여 수도권에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동구릉 입구의 홍살문을 통과하면 길옆으로 기울어진 소나무와 갈참나무 군락들이 맞이한다. 좌측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이 있는데 산책객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준다. 매표소를 조금 지나면 보이는 홍살문은 왕릉의 입구를 알려주는 표시로 이곳을 지날 때는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고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졌는데, 동구릉에서는 안쪽 각 능의 앞에 다시 아홉 개의 작은 홍살문이 한번 더 설치되어 있다.

■ 조선 건국의 시조가 잠든 건원릉


조선 제1대 왕인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은 동구릉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동구릉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수릉(綏陵,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 현릉(顯陵,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다음으로 볼 수 있다. 건원릉은 조선 왕릉 조성의 기틀이 된 곳이다. 조선 초기 능제는 국조오례의에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조선 건국 후 조성한 정릉(貞陵, 태조의 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 건원릉, 제릉(齊陵,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의 능. 북한지역에 있는 조선왕릉 2기 중 1기.)을 통하여 차차 정착되었다.

그리고 그 기본 형식은 조선시대 전시대를 통하여 이어졌다. 능의 홍살문 앞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하는 금천교 아래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는 박석을 깔아 놓았는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神道)라고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御道)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건원릉의 정자각에서 뒤편 능을 보기위해서는 머리를 조아려 허리를 굽혀야 볼 수 있다. 사후에도 숭배 받을 수 있도록 실로 오묘한 경관배치를 한 것이다.

건원릉의 제수진설도를 보면 유교식 진설과는 사뭇 다르다. 전과 포 등 육류와 어물을 제수로 사용하지 않고 불교의 제례에 사용하는 제수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건원릉 조성 후 사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능 아래 사찰을 두었으며 이런 영향으로 제수진설도 불교식을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건원릉에는 두 가지 국가지정문화재(보물)이 있는데 정자각과 그 뒤편의 신도비가 그것이다. 정자각은 조선왕릉 조성제도에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물로 보물 제17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도비에는 조선의 개국 과정과 태조의 생애, 업적 등이 담겨 있으며 보물 제 18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왕릉의 능침은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건원릉의 봉분은 푸른 잔디가 덮여 있지 않고 한동안 손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억새풀이 무성하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는 위업을 이루었지만, 그 후 왕자들이 형제간의 살육을 마다하지 않으며 벌이는 권력 다툼을 겪는 등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은 채 말년을 보냈다. 승하하기 전 태조는 왕 이전의 한 사람으로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 땅의 흙과 풀 아래 잠들고 싶은 마음을 유언으로 남겼으며 태종이 태조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에 심었다고 한다.

■ 동구릉의 숲 : 목릉 서어나무 군락지와 소나무

건원릉의 동쪽에는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이 있다. 건원릉 입구에서 갈림길을 따라 목릉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도시 주변에서는 드물게 서어나무 군락이 분포하고 있다. 이 서어나무 군락지는 동구릉 탐방 안내서에도 소개될 정도로 짙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날 정취를 돋운다. 서어나무는 수피가 회색이고 근육모양으로 울퉁불퉁한 특징이 있다. 본래 산지에서 자생하고 공해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 도심지 주변에서는 생육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 동구릉에서는 서어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도심 근교의 넓은 숲속의 나무들이 서로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다른 나무들보다도 유독 소나무를 아꼈다. 중국 신선 사상에서 유래한 십장생 중에도 소나무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조선 왕릉의 뒤편에는 항상 큰 소나무들이 주위 경관과 어울리며 사시사철 푸름과 강직함을 더하고 있다.

■ 조선 왕릉 숲 보전을 위한 노력

동구릉은 조성 전 부터 산으로 에워싸인 곳이었지만 왕릉 조성 후 능침 주위에 소나무 등의 나무를 조림하여 관리하였다. 해충이 발병하는 시절에 맞추어 인근 주민들을 동원해 능 부근 20리(8km)까지 송충이 등의 벌레를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왕릉의 산림관리를 철저히 했다.

왕릉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는 산불에 취약한 나무이기도 하다. 산불의 피해를 막기위해 조선왕릉의 주변으로는 방화선(화소(火巢))을 만들었다. 화소란 글자 그대로는 불길이 머무는 곳이란 뜻으로 능 바깥에서 발생한 불길이 능 구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이 화소 구간에는 산불을 막기 위하여 울타리 밖에 있는 나무나 풀까지 모두 제거했다. 불쏘시개가 될 만한 것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산불을 예방한 것이다.

수백 년에 걸친 보존과 관리로 조선 왕릉은 42기 능 중 어느 하나 훼손되지 않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 특유의 자연친화적인 공간배치와 독특한 장묘 문화, 예술적 독창성, 조상숭배의 전통이 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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