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더럽게 바뿐 한 달이었습니다. 농사일로 바빴다면 먹잘 것이나 있겠지만 농사 아닌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지나간 과거형으로 말했으니 다가온 12월은 바쁘지 않겠다? 마찬가지일겁니다. 먹잘 것 없이 더럽게 바빴다니 부정적의미가 있어 뵙니다. 저는 적당히 게으른 사람이어서 어쩌든 간에 10월안에 농사일을 마무리해버리고 다가오는 겨울 석 달은 푸욱 쉬어서 썩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여 가능하면 농사일을 앞에 쌓아 놓지 않고 미리미리 하곤 하는데, 그래서 농사일은 간간 마음의 여유가 있는데 다른 일은 그렇질 못합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쓰잘머리 없는 일이 늘어만 갑니다. 모두다 사람과의,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일입니다.

관계는 관계를 불러오고 일은 또 다른 일을 불러와서 언제나 서로 톱니처럼 물려있음을 확인하고는 몸부림칩니다. 그것이 체면치레용 거품일 뿐일지라도 지역사회에서는 과감히 생략해버리지 못합니다. 그런 일들이 11월 초순 넘어가서 양파도 심고 나락도 베고 나면 한꺼번에 쏟아지지요. 금년에 좀 이상하다싶게 가을 들어서도 청첩장은 오지 않는다싶었는데 그것도 다 까닭이 있었더군요. 윤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11월도 하순에 접어들어 윤달이 비끼자 연달아서 쏟아집니다. 젠장 맞을 놈의 것! 나는 받아먹을지 말지도 모르고 우리 애들 결혼식은 청첩장 내는 일은 당최 하고 싶지가않은데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마치 비행기에서 낙하산 떨어뜨리듯 청첩장을 떨어뜨립니다. 가야할지말지 결정하기 애매한 사람들한테서 온 것은 짜증도 납니다. 물어 볼 것 없이 여긴 간다. 여긴 안가! 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곳이라면 차라리 마음이나 편하죠.

여러 번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이곳 면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풍물패의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풍물패는 일 년에 한번 일 다 끝내놓고 차 불러 타고 멀리 나들이를 가는데 조직의 장이 되고 보니 놀러가는 것도 하나의 일이 되더군요. 회의를 해서 장소를 선정하고 준비할 것들을 챙겨보고 갈수 있는 회원들을 파악해보고 차에 올라타서는 회원들이 그날 하루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상황에 신경 써야 합니다. 갔다 와서는 술 먹고 놀다온 그 돌아보기 싫은 뒤처리와 맥주박스 나마 실어준 후원자들에 대한 인사, 노는 것도 이렇게 되면 노동 중에서도 상노동이어서 되레 스트레스 받더군요.

이럴 때일수록 집 앞에 있는 저의 잘 정리된 밭과 푸른 보리 양파들이 위안입니다. 아침저녁 아니면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다가도 잠시 방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그리고 외출했다가 간혹 열 받아서 돌아올 때면 저 밭의 푸름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안정을 안겨줍니다. 비록 쌀을 다 팔지 못해서 기약 없이 쌓아두고 있을망정 마음속으로는 텅 빈 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시 또 옆구리로 빠지는 이야깁니다만 농민들에게 조금만 더 지금보다도 나은 세상을 살게 한다면 세상에 농사꾼처럼 순박한 종족이 없을 겁니다. 그러지 못하는 세상이니 때로 이렇게 불만이 쌓이고 모든 일이 쓰잘머리 없다 여겨집니다. 원래 11월 12월은 그런 달이 아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음력으로는 10월 달, 달이 밝기 그지없는 상달입니다. 달이 밝아서 상달이기도 하지만 일 년 내 힘든 농사가 다 지나가고 추수가 끝난 풍요로운 달, 조상들에게 시향을 바치기 좋은 달이어서 상달이며 축제를 벌이기에 좋은 달이어서 상달입니다.

시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옛날에는 시월 달되면 시향 바치지 않은 씨들이 없었습니다. 동네에서나 그 근동에서 5대 이상을 산 씨족들이라면 의례하는 일이었지요. 일가들이 종손 집에 모이거나 아니면 차례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서로들 모여 술 빚고 떡치고 전 부치고 실과 장만하여 대광주리 소광주리 지게 발채에 석작에 이고지고 선산에 찾아가서는 정한자리 펴고 진설하고 너푼너푼 절을 하고 모두 둘러앉아 조상들의 음덕을 기리고 칭송하며 술잔을 돌려 음복을 합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동네 꼬맹이들은 남의 집 제사라는 건 상관치 않고 줄줄이 그 뒤를 따라가지요. 떡 얻어먹으려고요.

 시월 보름은 첫 추위가 닥쳐오기 마련이어서 시향은 대게 보름 전에 날을 받아서들 하는데 겹치는 씨족들도 있지만 거의 사흘 도리로 먹는 잔치 생기는 게 10월입니다. 시월은, 그러니까 지금의 11월은 원래 그런 달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시골에 지금 시향 모시는 족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도시로 솔가해버린 집들이 많아 아예 성씨받이가 없어진 데가 많습니다. 남아있다해도 노인들 지키는 한 두 집일뿐이니 예전부터 해오던 것을 눈 번번히 뜬 생전에 그만 막고 닫아버렸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니 뭐니 하면서 어께를 으스대는 모양인데 고도의 압축성장은,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됐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농업의 붕괴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가장 심각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편안한 사회, 노동하는 사람들이 더럽다 여기지 않는 사회여야 모두의 입에 밥숟갈이 편안히 들어가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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