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하는 계절이 됐습니다. 하지만 요즈음도 아침엔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물이 얼어 버립니다. 서리가 많이 내린 날일수록 날은 맑고 푸근합니다. 오전 10시 무렵이면 방안에 있기가 미안할 정도로 햇빛이 좋습니다. 사실 지금은 방안에 들어 앉아 있을 때가 아니죠. 가볍게 챙기고 나와서 논밭 둘레를 한 바퀴 둘러봐도 좋고 하다못해 복수초 노루귀 피어난 화단가에 서 보기라도 하면서 이봄에 우리 몸을 대 보아야 합니다.

저는 어제 하루를 꼬박 나무 심는데 바쳤습니다. 심을게 별로 없을듯해서 맘 놓고 있다가도 꼭 무엇이 잡아끄는 듯 튕겨 일어나 괭이 찾아들고 나무를 심습니다. 제 땅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그래도 사이사이에 어린 묘목들을 심으니 이게 점점 자라서 해마다 베어내고 파 옮기는 것이 일입니다. 나무란 적당한 간격과 알맞은 토질이 우선 고려돼야 하는데 토질은 하여간에 간격을 계산하지 않으니 묘목장과도 같아집니다. 그러나 늘 햇볕 따사로운 봄이면 나무를 심는 일이 다른 일보다도 좋아서 같은 일을 되풀이 합니다.

제가 어제 심은 나무는 엄나무입니다. 엄나무순은 옻나무 가죽나무 순과 함께 제가 참 좋아하는 것이어서 몇 년 전부터 계속 심어오던 나무입니다. 매화 분 하나를 만들려고 나무시장에 갔었는데 작년에는 있던 엄나무 묘목이 올해는 찾는 사람이 없다하여 생산하지 않았다더군요. 그래서 매실나무만 두 그루 사고 엄나무는 사지 못한 까닭에 산에 가서 묘목을 캐왔습니다. 설 쇠러 집에 내려왔다 아직 올라가지 않은 딸애를 데리고요.

엄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잎이 피었을 때 유달리 색이 진합니다. 같은 녹색이라도 옆의 나무들과는 확 구분이 될 정도로 진녹색이어서 멀리서 봐도 금방 알아채지요. 적어도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요. 그래서 어디에 엄나무가 있다는 것을 이미 다 압니다. 엄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라는 큰 키의 나무입니다. 큰 나무는 어린것과는 달리 가시가 다 사라지고 없어서 다른 나무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있는 지점에 가도 잘 모르지만, 떨어진 낙엽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찾아내면 그 주변에서 어린 묘목을 채취하는 것은 아주 쉽지요.

딸과 함께 다니며 길가 양지쪽에 핀 바람꽃 노루귀도 찾고 나무를 구별하여 알아내는 방법도 가르치며 오전엔 여덟 그루의 어린 묘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른 새끼손가락 정도의 40cm~50cm 높이의 묘목이면 최상급이어서 그보다 더 큰 것은 아예 그 자리의 주인이 되라고 놔두고 그보다 더 어린 것은 내년에 보자며 또 그 자리에 놔둡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에 걸쳐 심은 나무가 세어보니 꼭 70그루입니다.

점심 후엔 좀 누워 쉬고도 싶었는데 햇살 좋은 마루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더니 방안에 들어가기 싫고 다시 산으로 가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 또 딸을 데리고 산에 가서 묘목을 캐며 돌아다닐 만큼 실컷 돌아다녔습니다. 나무 덕분에 설 쇠고 지금껏 먹은 술독이 조금 몸에서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올해는 설이 늦은 탓에 다른 일도 늦어지는 듯합니다. 대보름까지 여기저기 굿 치러 다니며 술 먹는 일도 말이지요. 늘 겪어보지만 설 쇠고 나서 보름까지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올해 같은 때 보름 쇠고서야 일손을 잡으려 해서는 큰일 나는데 마음만 그렇지 몸은 술에 절어서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이럴 때 나무 심는 일은 참 좋습니다.

안식구도 오늘은 화단을 가꾸고 있군요. 화단의 풀들 틈에서 작년가을에 묻어뒀던 튤립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중이라 풀을 매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제 보기에 지금 화단에서 해야 할일은 작년에 베지 않고 놔두었던 검불 같은 지저분한 꽃 대궁들은 먼저 베어내서 말끔하게 하고 관상용 나무들도 꽃망울이 더 부풀기전에 손질해줘야 될 것 같은데 한곳에 앉아 바쁘지 않은 손길처럼만 보입니다. 어떻게 하던 화단은 화단인 것이지만 문제는 지금 풀이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마늘 양파 밭입니다.

웃거름이 자꾸 늦어 가는데 풀이 저렇게 우북한 상태로는 거름을 줄 수 없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풀을 잡아내야 합니다. 한 이틀 풀을 매긴 했습니다. 그때도 땅이 질어서 풀을 매기가 마땅찮았지만 땅 마르기 기다려서 풀을 매면 너무 풀이 커 버리겠지요. 얼음이 얼고 서리가 와도 저놈의 풀들은 그걸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데 거기에 또 비까지 사흘 전에 내려버려서 아내나 저나 어제 오늘 밭에 들어가지 못한 겁니다. 대신 나무 심고 화단 가꾸지 않았습니까?

되는대로 대로 해 나갈 겁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걱정해봐야 속만 좁아지고 불편하겠지요. 포기하고 말 것도 없는 것이 제 살림살이이지만 조금 더 포기하며 살기로 해봅니다. 그렇다고 하여 작년과 크게 달라질게 없을 겁니다. 특히 사람관계에서 더 많이 주장하지 않으렵니다. 올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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