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제 하루를 꼬박 나무 심는데 바쳤습니다. 심을게 별로 없을듯해서 맘 놓고 있다가도 꼭 무엇이 잡아끄는 듯 튕겨 일어나 괭이 찾아들고 나무를 심습니다. 제 땅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그래도 사이사이에 어린 묘목들을 심으니 이게 점점 자라서 해마다 베어내고 파 옮기는 것이 일입니다. 나무란 적당한 간격과 알맞은 토질이 우선 고려돼야 하는데 토질은 하여간에 간격을 계산하지 않으니 묘목장과도 같아집니다. 그러나 늘 햇볕 따사로운 봄이면 나무를 심는 일이 다른 일보다도 좋아서 같은 일을 되풀이 합니다.
제가 어제 심은 나무는 엄나무입니다. 엄나무순은 옻나무 가죽나무 순과 함께 제가 참 좋아하는 것이어서 몇 년 전부터 계속 심어오던 나무입니다. 매화 분 하나를 만들려고 나무시장에 갔었는데 작년에는 있던 엄나무 묘목이 올해는 찾는 사람이 없다하여 생산하지 않았다더군요. 그래서 매실나무만 두 그루 사고 엄나무는 사지 못한 까닭에 산에 가서 묘목을 캐왔습니다. 설 쇠러 집에 내려왔다 아직 올라가지 않은 딸애를 데리고요.
엄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잎이 피었을 때 유달리 색이 진합니다. 같은 녹색이라도 옆의 나무들과는 확 구분이 될 정도로 진녹색이어서 멀리서 봐도 금방 알아채지요. 적어도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요. 그래서 어디에 엄나무가 있다는 것을 이미 다 압니다. 엄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라는 큰 키의 나무입니다. 큰 나무는 어린것과는 달리 가시가 다 사라지고 없어서 다른 나무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있는 지점에 가도 잘 모르지만, 떨어진 낙엽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찾아내면 그 주변에서 어린 묘목을 채취하는 것은 아주 쉽지요.
딸과 함께 다니며 길가 양지쪽에 핀 바람꽃 노루귀도 찾고 나무를 구별하여 알아내는 방법도 가르치며 오전엔 여덟 그루의 어린 묘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른 새끼손가락 정도의 40cm~50cm 높이의 묘목이면 최상급이어서 그보다 더 큰 것은 아예 그 자리의 주인이 되라고 놔두고 그보다 더 어린 것은 내년에 보자며 또 그 자리에 놔둡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에 걸쳐 심은 나무가 세어보니 꼭 70그루입니다.
점심 후엔 좀 누워 쉬고도 싶었는데 햇살 좋은 마루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더니 방안에 들어가기 싫고 다시 산으로 가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 또 딸을 데리고 산에 가서 묘목을 캐며 돌아다닐 만큼 실컷 돌아다녔습니다. 나무 덕분에 설 쇠고 지금껏 먹은 술독이 조금 몸에서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올해는 설이 늦은 탓에 다른 일도 늦어지는 듯합니다. 대보름까지 여기저기 굿 치러 다니며 술 먹는 일도 말이지요. 늘 겪어보지만 설 쇠고 나서 보름까지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올해 같은 때 보름 쇠고서야 일손을 잡으려 해서는 큰일 나는데 마음만 그렇지 몸은 술에 절어서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이럴 때 나무 심는 일은 참 좋습니다.
안식구도 오늘은 화단을 가꾸고 있군요. 화단의 풀들 틈에서 작년가을에 묻어뒀던 튤립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중이라 풀을 매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제 보기에 지금 화단에서 해야 할일은 작년에 베지 않고 놔두었던 검불 같은 지저분한 꽃 대궁들은 먼저 베어내서 말끔하게 하고 관상용 나무들도 꽃망울이 더 부풀기전에 손질해줘야 될 것 같은데 한곳에 앉아 바쁘지 않은 손길처럼만 보입니다. 어떻게 하던 화단은 화단인 것이지만 문제는 지금 풀이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마늘 양파 밭입니다.
웃거름이 자꾸 늦어 가는데 풀이 저렇게 우북한 상태로는 거름을 줄 수 없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풀을 잡아내야 합니다. 한 이틀 풀을 매긴 했습니다. 그때도 땅이 질어서 풀을 매기가 마땅찮았지만 땅 마르기 기다려서 풀을 매면 너무 풀이 커 버리겠지요. 얼음이 얼고 서리가 와도 저놈의 풀들은 그걸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데 거기에 또 비까지 사흘 전에 내려버려서 아내나 저나 어제 오늘 밭에 들어가지 못한 겁니다. 대신 나무 심고 화단 가꾸지 않았습니까?
되는대로 대로 해 나갈 겁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걱정해봐야 속만 좁아지고 불편하겠지요. 포기하고 말 것도 없는 것이 제 살림살이이지만 조금 더 포기하며 살기로 해봅니다. 그렇다고 하여 작년과 크게 달라질게 없을 겁니다. 특히 사람관계에서 더 많이 주장하지 않으렵니다. 올해는.
박형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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