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바뿐 때입니다. 모심으랴 보리 베랴 논밭으로 종종거리고 다녀야 하는 때지요 모심고 보리 벤다는 말이 바뿐 것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는데 망종 무렵의, 때는 그 때이어도 지금 바뿐 것은 예전의 반에도 못 미칠 겁니다. 우선 모는 죄다 기계로 해버리잖습니까? 논 한 필지 1200평은 이앙기가 두 시간이면 끝내 버립니다. 논 주인은 논둑에서 모판이나 들어주고 빈 모판 묶어서 정리나 하면 됩니다. 한사람이 한 오십 마지기를 짓는다 하여도 기껏 하루면 끝나겠지요. 안주인은 새참과 점심이나 해 내오면 되고요.

귀에 젖은 이야긴 줄은 모르지만 옛날에는 이와는 너무나 달랐지요. 써레질하랴 모 쪄서 논에 나르랴 놉 얻어서 심고 물 푸고, 일의 종류와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어요. 그래서 논 한 필지 모를 내려면 한 동네가 다 움직여야만 가능했습니다. 보리 베는 것도 마찬가지였지요. 낫으로 베야 했기 때문에 그 또한 놉이 많이 들지만 논과는 달리 바싹 마른데서 하려니 더위를 견디는 게 더 큰일이었답니다. 기계 나와서 그럴 일이 없어지자 세상 살기 좋아졌다고 어른들 얼굴에 주름살이 다 펴졌드랬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논밭에 쓰는 풀 약 또한 사람들의 찬탄의 대상이었습니다. 피, 방동사니, 능검쟁이, 물옥잠, 남자 농부들의 손톱을 빠지게 하던 풀들을 제초제 한방이면 말끔히 싹도 못 트게 해버리니 이 아니 살판입니까? 모내놓고 돌아서 웃거름하고 농약 통 몇 번 짊어질 요량하면 논농사 끝입니다. 밭에서도 마찬가지지요. 보리 벤 뒤에 여름 끌 갈아놓고 비라도 한번 온다 치면 그 지긋지긋하게 돋아나던 바랭이들, 이 또한 제초제 한 봉지면 깨끗했습니다. 햇빛과 땀에 삼베적삼 녹아내릴 일이 없어진 거지요. 이것은 실로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겠지요.

이것들을 마다하고 지금도 손으로 모를 내고 낫으로 보리를 베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까닭인즉슨 기계, 즉 석유로 글러가는 그것을 쓰지 않겠대서 입니다. 달리 말하면 지구의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 오염을 막는 것이라 시방 우리가 불편한 것이 후손들에게는 좋다는 뜻이지요. 이런 것을 몰라주고 사람들은 옆에서 웃습디다 그려. 누구는 편할 줄 몰라서 이겠으며 비용도 더 적게 든다는 걸 몰라서겠습니까? 다 알면서도 그럴진대 그것을 웃는 정도를 넘어 정신 나간 이상한 것으로만 보니 누가 더 셈속 빠른 것에 길들여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일입니다.

저도 여러 번 생각하다 올해는 손으로 모를 내었답니다. 제가 논을 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니 17년만인가 봅니다. 예전처럼 물못자리를 해서 모를 찌진 않았지요. 포트 묘라고 해서 어찌 보면 유기농 농법의 상당히 진화된 모기르기 방법인데 모는 그렇게 했고, 트랙터가 로터리 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모내기만 이앙기가 아닌 손모를 낸 것입니다. 사람 수 약 스물다섯명 정도가 논에 한 줄로 늘어서서 한발 한발 줄을 떼며 모를 심는데 그것도 두 시간 이상 걸리더군요.

못줄을 떼면서 나누는 온갖 재밌는 이야기들, 모뜨지 않게 잘 심어라, 네가 한 코 더 심어라, 모쟁이는 어디 갔냐, 몇 줄만 더 떼고 새참을 먹세 그려, 못 줄잽이 노래나 한 곡조 해보지 어쩌구 하는 왁자지껄 떠들썩거리는 그 신명난 기운이 두 시간 이상 제논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계산을 대 보면 이양 기는 18만원인데 제 모내기를 하면서 들인 새참 값도 18만원이었답니다. 방앗간에서 팥찹쌀시루떡 한말에 10만원, 덥다고 아이스크림 30개 3만원 술값 5만원, 인건비는 어차피 품앗이니까 따지지 말기로 하지요.

기계에는 사람들이 지어내는 이야기와 감동이 없다는 것, 결국 그것은 편리한 효율과 바꾸는 것인데 저는 이번에 바꾸기를 참 잘했다 생각이 들더군요. 내년에도 또 내 후년에 도요.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꾸리는 사람들과 바빴지만 이렇게 행복한 모내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이튿날 밭으로 내달았습니다. 양파 캐고 마늘 캐고, 할일이 태산 같습니다. 일의 양으로 보면 그리 많다고 할 수야 없는데 지금 날이 가물어서 그렇지 비라도 한번 오면 정신 못 체릴 것 같아서 그전에 거둘 것 거두느라고 바쁜 것입니다.

몇 년 만에 심은 양파는 노균병이 쓸어버려서 참 보잘 것 없습니다. 양파의 크기가 탁구공보다는 조금 크고 정구공보다는 조금 작습니다. 손에 캐 쥐어보면 직구로 다 던져 버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이런 것은 보관하기는 좋겠지만 가지고 있어보니 뭐 한답니까? 즙이라도 내서 얼른 팔아야 다만 얼마라도 손에 쥘 텐데 글쎄요, 200평 조금 못되는데 한 서른 망이나 나올까요. 양파농사 짓는 분들은 제 이야기에 사정이 짐작될 것입니다.

그래도 거두어야지요. 얼른얼른 밭을 치워내야 여름 끌을 붙일 수 있으니까요. 콩이나, 녹두 따위야 전혀 늦지 않지만 깨는 가능하면 빨리 심어서 장마 전에 어느 정도 키워 골라 세워놔야 합니다. 모르 지라오 올해는 슈퍼태풍이 올수 있다는데 깨 심어서 양파 마늘과 무엇이 다를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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