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에 오래전에 심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것이 잘 자라서 봄이면 화사한 분홍빛 꽃을 피워 거기서부터 무릉도원의 시작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늘 또 그 나무가 수난을 당합니다. 왜냐고요? 꽃이 지고나면 다닥다닥하니 손톱만한 열매가 맺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을 일일이 알맞게 솎아주질 못하는데 그러다보니 밤톨 만씩 하게 자랐을 때 이게 꼭 개복숭아와 똑같아서랍니다.

거 왜 있잖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무엇이 몸에 좋네 하고 한번 소문만 나면 죽기 살기로 그것 찾는 것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개복숭아로 담근 술이 좋다고 소문이 난 탓에 그 참 복숭아나무의 복숭아를 그만 개복숭아로 여기고 해마다 해마다 남김없이 훑어가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라면 좋으련만 가지를 휘어잡고 부러뜨려서 수형 잡힌 나무가 그만 병신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산이나 시냇가 그러니까 물기 많은 곳에 잘 자라는 개복숭아를 누가 동구에 심어놓고 늘 풀 깎고 전지해서 관리할 턱이 없을 텐데 그리 돼있는 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나무에 우체통을 붙여놨어도 심지어 ‘이것은 개복숭아가 아닙니다’라고 써 붙여놨어도 막무가내더군요. 밭에서 일하다가 따가는 것을 멀리서보고 소리치고 쫓아가면 차로 휑하니 달아나 버리는 것은 차라리 허탈한 웃음이나 나오는데 멀뚱하게 서 있다가 임자 있는 것을 그렇게 막 따가도 되냐고 야단을 하면 복숭아 따 담은 봉지를 그냥 주고 가면 된다는 듯 그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또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으로 드문드문 몇 개씩 남겨놓고 따가서 그것이 이번에는 열매를 알맞게 솎아준 폭으로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복숭아가 금방금방 자라서 어린애 주먹 만씩 해지다가 낯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더 익기를 기다리고 오랜만에 침을 삼키며, 이건 웬 횡재나 싶었는데, 세상에 그걸 또 거의 다 도둑맞고 말았습니다.

속이 상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돌려 생각해보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내가 따서 줄 수는 없는 것인데 스스로 따가서 나의 적공을 해주니 이것 참 좋은 것이구나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아예 길옆으로 과일나무를 더 심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맘껏 따가게 하고 싶다고 아내에게 다짐을 하듯 말했는데 올해 그걸 실천 못했다가 복숭아 잃고 나서 아차 했습니다.

울안엔 조금씩 시차를 두고 블루베리며 독일 앵두며 자두가 익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좀 더 단맛이 스며들기를 기다리는데 아 글쎄 열매가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는 거예요. 땅에 떨어졌나 하고 살펴보니 그러도 않았고요. 마루에 앉아서 나무근처에 어떤 흔들림이 있기에 무심결에 돌아보았더니 새이더군요. 자주색에서 좀 더 짙은 까아만 색으로 익어가는 열매들만을 골라서 쪼아 먹고 있는 겁니다. 용케 골라내서요. 그러고 보면 새들도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나 봅니다.

이들도 사람의 밥시간과 비슷한지 아침저녁으로만 오는 겁니다. 그러려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배고플 테니 저녁 밥 먹어야 되고 밤을 지냈으니 아침밥 먹어야 낮 동안 견디겠지요. 그래 한동안 ㅤㅉㅗㅈ아도 봤다가 아서라 눈치 보지 말고 먹어라하고 모른척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들의 양식을 제공하는 것도 그리 나쁠 것 없다 생각이 들더군요.

자두도 꼭 붉게 익어가는 것만 쪼더군요. 개량자두는 크기가 큰 탓에 꼭지가 상대적으로 약한데, 그러니까 잘 떨어지는데 새들이 몇 번 찍는 과정에서 땅에 다 떨어져 버려요. 그러니 나무 밑이 상처 난 자두들로 더글더글 합니다. 이 자두는 제 아들 녀석이 학교 기숙사생활을 하다가 주일에 집에 오면 병 든 것이나 뵈게 달린 것들을 솎아내곤 해서 나무 전체에 아주 고루 풍성하고 건강했던 것들입니다. 뭔가 조처가 있어야 할듯해서 나무에 허수아비 같은 것을 만들어 달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소용없더군요. 그래 날마다 날마다 저희 집 울안이 새들의 뷔페식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그럴 수만은 없어서 비와서 일 못하는 그저께 새가 조금씩 쪼은 자두와 높은 가지에 드문드문 하나씩 남은 복숭아를 땄더니 한 바구니나 실하게 되더군요. 저희 내외야 안 먹어도 그만이고 먹는다 해도 반쪽이나 하나면 그만 이라 남김없이 들고 공동체학교로 갔습니다. 장마방학 끝나고 학교에 일하러 갔는데 정작 장마는 이제 시작이라 기숙사에서 뒹굴 거릴 아들 녀석과 학생들을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어요.

비 오는 날은 낮잠이 맛있거니와 깨고 나면 어른은 빈대떡과 막걸리 생각이 나듯이 아이들도 무언가 속이 출출할 것 아닙니까. 그 입에 갓 딴 새콤달콤하고 향기 나는 과일 바구니를 턱하니 안겨주고 저는 또 식당으로 가서 막걸리 한 병을 청해 옹골지게 먹었습니다. 비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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