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
국립농업과학원 농업환경부 유기농업과장


지난 세기 농업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세기 초반 단위면적 당 밀 생산량은 전 세계 평균 헥타르(ha) 당 1톤에 불과하였지만 21세기 초에는 2.6톤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쌀 생산량도 1.7톤에서 3.6톤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 같은 생산량의 증가는 비료와 농약의 덕분인데, 같은 기간에 질소 비료의 공급이 2천만 톤에서 8천만 톤으로 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수량을 높일 욕심에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비료와 농약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 농산물의 안전성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반 만 년 동안 전통적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물론 비료나 농약 없이 농사를 짓다보니 작물의 모양새도 볼품없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적 농업이 환경이나 식품 안전에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식량 증산을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환경이나 먹거리의 안전을 농사의 편리함이나 생산성과 맞바꾼 셈이 되어버렸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질소수지가 가장 높고, 농약 사용량도 일본에 이어 2위로 농약과 비료의 과용이 심각한 실정이다.

  유기농산물은 일반농산물보다 가격이 높은 편이다. 이에 대해서 유기농 가격 프리미엄이 포함되어서 그런 것이냐,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데 왜 유기농산물이 더 비싸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유기농산물이 비싼 이유는 유기농산물이 부자를 위한 프리미엄 제품이라서가 아니다. 유기농산물 재배에는 환경과 먹거리의 안전을 고려하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보다 더 환경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 농산물 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환경과 식품의 안전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싼 값에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이나 식품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여긴다면 유기농 가격 프리미엄이 있다고 하기보다는 비싼 것이 원래 정상가격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값싼 농산물 가격은 환경오염에 대한 비용을 제외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유기농업은 토양,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농업생산 체계이다. 유기농업에서는 사람이나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비료나 농약 같은 외부물질을 농장에 투입하지 않고, 농장내부의 생태적 과정, 생물다양성과 자원의 순환을 통해 농작물을 생산한다. 또한 유기재배 농가는 생태계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환경을 보전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공정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농법을 추구한다.

최근 소위 ‘가치 소비’를 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여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농부들의 노력에 대해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자, 난방이나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도록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을 소비하는 소비자, 공정 무역을 통해 저개발국가의 생산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소비자, 가축의 복지에 동의하고 생물다양성 보전에 기여하는 소비자 등 모두가 가치가 있는 곳에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가치 소비자이다.

환경에 대한 비용을 치르지 않는 대신 싼 가격에 농산물을 사먹는다고 생각하니 돈을 아꼈다는 기쁨보다는 버스에 무임승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미안함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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