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유 호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공학과장


차를 타고 다니면서 들녘을 보면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시기다. 녹색 파도가 일던 논은 어느 듯 황금물결로 변해 있고, 농촌 마을 어귀에서는 참깨를 터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게 보인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곡식이 일시적으로 수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농부의 손이 모자를 것을 걱정한 자연의 배려인지 곡식별로 수확 시기가 다르다. 6월부터는 마늘, 양파, 감자를 수확하기 시작하여 8월에는 고추와 참깨를, 10월이면 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곡식을 수확하고 늦어도 11월 초에는 모든 농산물을 수확한다. 기계 속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착착 맞아 떨어진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아직도 수확 이후 관리 소홀로 버려지는 농산물이 30%나 달한다고 한다. 여름 뙤약볕에 힘들게 키운 농작물이 관리 소홀로 버려진다는 게 얼마나 억울하고 허망한 일인가. 그래서 ‘수확후 관리’를 제2의 생산 활동이라고 부르나 보다.

농산물의 대부분은 생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가공, 건조, 저장을 해서 다음해에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까지 먹는다. 1년에 한 번 수확하니 적어도 10개월 이상은 잘 보관해야 하는 것이다.

오래토록 잘 보관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시기와 장소 상관없이 농부들이 마음 놓고 농산물을 보관할 수 있을 것이다. 수확후 관리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절실한 이야기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란 말이 있지 않는가. 같은 값이면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의 상품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 현대인의 소비 패턴이 옛날과는 다르게 우수한 품질과 안전한 농산물을 찾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영농과학 기술서에는 품목별로 가공, 건조, 저장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물론 기계장치에 대한 것도 많이 나와 있다. 양파는 수확과 동시에 예건(Curing)을 해야 한다. 표피를 건조시켜 수확 중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저장 중 호흡량을 억제시켜 신선도를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고추는 수확후 세척하고 건조기에 넣어서 건조한다. 이때 건조온도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는 고온(70℃)에서 3~4시간 유지하다가 이후에는 60℃ 정도에서 13%가 될 때까지 건조한다. 이와 같이 작물별로 건조방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제시한 방법대로 건조하지 않으면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10월 중순부터는 수확이 시작되는 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그러나 수확후 건조시설이 넉넉하지 않아 소규모 농가에서는 자연건조하기도 한다. 자연건조는 온도, 함수율(수분)관리가 쉽지 않아 가능하면 권장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자연건조와 대비되는 방법인 인공건조방법은 온도 조절과 매시간 수분을 측정해 최종수분까지 건조시키는데 거의 정확하게 관리되어 품질관리 측면에서 오히려 낫다고 할 수 있다. 벼 건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건조온도이다.

고온에서 건조하면 빨리 건조할 수는 있으나 건조 중에 벼에 금이 갈 수 있어 도정했을 때 싸라기가 생기고 건조효율(열에너지 투입 대비한 건조비용)이 떨어진다. 특히 이듬해 종자용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건조온도는 더욱 낮춰야(45℃ 이하) 한다. 이와 같이 사용목적에 따라서도 건조조건이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생산자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고품질 유지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를 더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농산물을 어떻게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여 수확후 손실로 1년 농사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수확후 관리 기술의 발전이 우리 농업의 선진화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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