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어젯밤 명절이라고 고향을 찾아온 친구들과 만나 늦게까지 과하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줄 모르겠더니 지금은 연년이 변해가는 모습만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가 몰라보게 세인 사람,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진 사람, 아파서 겨우 걸어 다니기나 하는 사람, 술에 빠져 사는 사람처럼 겉모양도 많이 변했고 생각들은 더더욱 달라져서 술자리가 예전만 못했습니다. 생각이 다르면 예전엔 우김질도 나고 때로 주먹다짐도 했지만 이내 다시 한자리에 앉아서 서로 사과하고 이전보다 더 친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다 싶으면 그냥 입들을 다물어 버리고 술자리는 버성깁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피하기 위해서 옛날이야기만 주로 합니다. 앞바다에서 멱 감던 이야기, 뒷산에서 풋나무 하고 겨울이면 토끼 올무를 놓던 이야기, 닭서리 수박 서리하러 이웃동네로 밤이슬 맞고 다니던 이야기, 국수추렴 찐빵 추렴하던 이야기, 서로 더 먹으려고 드잡이 질하던 이야기, 연애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해도 해도 재미가 지고 다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도 뒷맛은 허무하게 끝납니다. 고향에 오지 못하는 친구들 때문이기도 하고 먼저 밥숟갈 놓은 친구들 때문이기도 하고 돈 버는 맛에 빠져서 고향과 친구들은 생각지도 않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명절날 고향에 머리 두르고 오는 사람들은 제가끔 먹고사니즘으로 힘든 사람들, 아주 아주 보통 서민들인 듯합니다.

어젯밤에도 저는 고구마 밭둑의 감나무 아래에서 야영을 했습니다. 멧돼지 때문이지요. 그저께 아들 녀석이 뒷마당 화장실에서 밤뒤를 보는데 일도 다 끝내지 못하고 놀래서 달려왔습니다. 멧돼지가 바로 옆에서 꾹꾹대더니 냇가 쪽으로 내려들 가더란 겁니다. 그 말 듣고 들입다 쫓아가서 멧돼지 있음직한 곳에 마구 돌질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그새 또 어디로 갔는지 기척이 없어 적개심만 불태웠고요, 이제 고구마가 밑이 굵어졌는데 하룻밤 야영을 안 해서 다 멧돼지 아가리에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 어제 아침에 냇가를 건너 형님네 뒤뜰 쪽으로 가봤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마지기나 멧돼지가 갈아 놨더군요.
저 자는 쪽으로는 사람 냄새가 나서 그런지 후레쉬 불을 시시때때로 휘둘러 대서 그런지 감히 오지는 못합니다. 한 이주정도만 더 있다가 조금 빨리 고구마를 캐 버리려 마음먹지만 그러나 추워서 늘 힘이 듭니다. 이불을 겹으로 덮어도 새벽이면 몸이 오그라 붙어 무겁습니다.

 초저녁부터 밤중까지는 어찌어찌 술김에라도 잠이 드는데 한 숨 자고 나면 거의 깨서 새우곤 하지요. 어젯밤은 과했던 술 덕분에 새벽까지 곯아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마을에 사시는 큰형님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는데 입맛이 깔깔해서 밥도 겨우 먹고 음복술은 더더욱 입에 대일수가 없었습니다. 조카며느리에게 커피 한 잔을 청해서 마시고 조카들 대리고 성묫길에 올랐습니다. 뒷산 중턱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셔서 거기까지 올라 성묘를 드리고 나서야 조금 속이 정리 되는 듯하더군요.

추석 전까지 신나게 바쁘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고요합니다. 망중한이군요. 성묘 마치고 나니 갑자기 아무 할 일이 없어져 버린 듯이 마음에 적막감마저 일어납니다. 이런 순간을 기다렸지만 날이 이렇게나 좋은데 방문 열어두고 가만히 바라만보고 있노라니 날씨가 참 아깝군요. 그래도 조상님들 덕분에 이렇게 편히 하루라도 쉴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제 집 앞은 낯선 차들로 북적일 겁니다. 외지에서 오는 성묘객들의 차들 말입니다. 제 사는 곳의 뒷산 날등 한 곳이 이름만 대면 금방 알만한 이곳 국립공원의 팔 명당 중 한 곳이랍니다. 그래서 그 곳엔 어찌나 묘가 촘촘하게 박혔는지 일 년에 한번은 저희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지요.

남의 마을 산에 묘를 써두고 성묘를 하는데 제 집이 꼭 그 길목에 있고 차는 제 집 앞에까지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의 아니게 문지기를, 아니 명당지기를 하는 덕분에 일 년에 한번 통행료 삼아 그들의 인사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것이더군요. 조상을 많이 위하는 사람들일수록 문지기에도 공손한 인사를 건네는데 조금 덜 위하는 사람들은 누가 굳이 통행세 내라는 것도 아닌데 피해 다니더란 겁니다. 제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은 이야기 하나 할 테니 들어보십시오.

옛날에 남의 동네에 시향 묘를 모신 사람들은 일 년에 한번 시향을 모시고 나면 준비해온 음식들을 남김없이 그 마을 사람들에게 풀어먹입니다. 떡이야 술이야 전이야 고기 따위 아주 귀하고 고급한 것들이지요. 자기들 입만 생각하여 되 싸들고 가서 그 동네 사람들 기대했던 마음을 저버리고 서운한 감정이 생기게 하면 일 벌어집니다. 다음에 시향 전날 그 동네 청년들 몇이 그 묘지에 가서 “너 이놈들 작년에 그랬지! 올해 제사 잘 지내나 어디 두고 보자”며 똥을 싸서는 장화신고 묘지 주변과 상석에 이개 바르는 겁니다. 그 다음 사정은 이제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명절은 그나마 옛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는 끈인 듯도 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